평범한 날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롭고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K가 사라지기 전까지는요. 사건의 첫 목격자인 문체부 행정관 A씨는 그 기묘하고도 섬뜩한 장면을 아직까지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소처럼 야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보고서에서 'K'자가 스르륵 사라졌다는 겁니다. 하나, 둘, 마치 귀신에 씌인 것처럼 'K'라는 글자만 쏙 빠져버렸다는 거죠. 그러다 마침내 컴퓨터 자판기의 'K'마저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K가 있던 자리를 두들겨 봐도, 공허한 'ㅏㅏㅏㅏㅏㅏㅏ'만 반복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A씨의 입에서 그와 같은 "아아아아아악!!!" 소리가 터져나왔을 땐, 그가 밤새 쓴 보고서가 휴짓조각이 됐단 걸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조사와 접속사, 그리고 사라진 K의 흔적을 암시하는 대쉬- 만이 외로이 커서 앞에서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실로 K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다음날 세종시는 쑥대밭이 됐습니다. 모든 행정관, 사무관, 비서관은 집단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K없인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미 국빈 방문에 연설할 대통령 연설문도, 새 법안 발의안도 쓸 수 없었죠. 공무원들은 '요모조모'와 '톺아보기' 사용 금지 조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충격이라며 무력감을 토로했습니다. 대통령은 급히 국무회의를 열어 영어 국호를 'Korea'에서 'Corea'로 바꾸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원래 우리가 쓰던 국호는 Corea였는데 일제가 C가 J에 앞선다는 이유로 K로 바꾼 것이라며, 일제의 잔재를 타파하는 의미로 있을 거라는 뚱딴지같은 설명을 덧붙여서요. 정치인들은 찬성표를 던졌고, 헌법 개정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그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들은 극심하게 반발했습니다. 특히 트위터에서 한바탕 난리 굿이 펼쳐졌는데요. 익명의 트위터리안들은 Corea가 되면 케이팝을 C-Pop이라고 해야 할텐데, 그러면 중국인들이 분명 그걸 자기네 것이라 우길 거라고 우려했습니다. 대신 차라리 '코리아'의 유래인 '고려'로 이름을 바꿀 것을 제안했습니다. 케이팝도 'G-Pop', 'Goryeoh Pop'으로 부르자며 '#G-Pop', '#Save Goryeoh Pop' 해시태그 달기 운동이 실시간 순위를 달궜습니다. 물론 "쥐팝은 쥐가 부르는 팝이냐", "조팝나무냐"는 조롱성 댓글도 만만치 않았지만요.
하지만 무엇보다 K의 상실로 가장 큰 슬픔을 겪은 이들은 우리의 평범한 이웃 "Kim"씨 들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성을 잃고 정체성을 상실한 이들은 '성희롱도 이런 성희롱이 없다'며 국민 청원을 신청했습니다. 이젠 "내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잃은 채 Kimchi도 못먹는 슬픈 한국인'의 초상은 온 나라를 끝없는 슬픔에 잠기게 했습니다. 스스로를 K- 직장인, K- 대학생으로 정의하며 매일 아침 K-지옥철에 치여 K-성질머리를 갖게 된 우리의 한국인들은 나를 나라고 말하지 못하는 집단 실어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우울증 발병률이 50%에 이르자 대통령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잃어버린 K를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평생 연금 50억을 주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누구도 사라진 K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Corea와 Goryeoh 사이에서 분열하고, 갈등하고, 두 쪽이 난 채 인터넷 난투극을 벌이다 출생률 0.1%를 찍고 지구에서 사라졌습니다. 최후의 한국인이 숨을 거두기 전, 그는 황폐한 들을 떠돌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버려진 민가에 들어간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떨리는 손으로 더러운 찬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환희에 가득 찬 얼굴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스페셜 K...."
그것이 최후의 한국인이 남긴 마지막 한 마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