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다른 방식
고전 문학을 읽고 싶다는 얘기가 나와서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핸드폰을 켜 다음 책은 뭘로 할지 정해보았다.
네이버 검색 중에 고전소설 ’백야‘를 추천한다는 블로그 미리 보기만 보고 ‘백야 어때요?’ 물어보니 모두가 좋다고 하며 빠르게 결정되었다. (짧아서 좋았던 건가요?)
간단히 백야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는 한 청년과 한 여인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그린 중편소설이다. 주인공인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거리를 홀로 방황하는 외로운 청년이다. 그는 네 번의 여름밤 동안 나스첸카라는 젊은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나스 챠는 그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데, 그녀는 1년 전 하숙생이었던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 남자가 1년 후 자신을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고 한다. 청년은 나스첸카 위로하고 그녀에게 깊은 애정을 품게 된다. 나스첸카 역시 점점 그에게 마음을 여는 듯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네 번째 밤, 그녀가 기다리던 남자가 결국 나타나고, 나스첸카 기쁜 마음으로 그를 따라가며 청년과의 관계를 끝낸다. 이별 후, 청년은 깊은 상실감에 빠지지만, 나스첸카 보내온 짧은 편지에서 그와의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말을 읽고 슬프지만 따뜻한 감정을 느낀다. 소설은 주인공의 덧없는 사랑과 외로움을 담담히 보여주며 끝난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찐-따 남자와 미련걸의 만남은 이렇게 성사되었다.
인간의 찌질함을 가장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작가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정말 최고다. 찌질하게 표현할수록 인간답기도 하고, 사실은 인간이 이렇게나 찌질하다는 것을 잘 표현해 준 것 같다.
책모임에서 어떤 질문과 나눔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막상 책을 읽으니 그다지 나누고 싶은 주제도 아니었고, 굳이 들춰내고 싶은 이야기도 없었느니 말이다. 인간이 이렇게나 찌질한데 그만큼 내가 얼마나 찌질한 사람인지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읽다 보니 달갑지는 않은 나눔일 것 같았다.
표현력이 짙은, 저 인간의 마음 구석 가라앉은 불순물이 있는 곳까지 살펴보니 위에 언급한 문장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나 생각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다.
드라마, 영화, 책, 릴스, 누군가의 경험담에 따라 나의 사랑과 이별, 삶의 순간순간을 정의할 수도 없고 같다고 보기도 어렵다.
전에 쓴 ‘미키 7’ 책의 글에서도 무언가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는 고백이 사실 이런 것들을 의미한다. 나는 어쩌면 저런 것들과 내 안에 나를 두렵게 만들고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고 회피하게 만드는 소리들에 너무 귀 기울이지 않았나.
내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불순물들이 다시 내 마음을 더럽히고 엉망으로 만들도록 내버려 두고만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넘어서고 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데 어떨 때는 정말 병적으로 그 불순물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동안 그것이 그러도록 내버려 두는 때도 있다. 괴로워하고 서글퍼하고 힘들어하며.
왜 세상이 하는 소리에 그토록 예민한 걸까.
내 인생은 이토록 다르고 소중하고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말이다.
인생의 선배와 지혜자들의 말을 참고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만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절대적인 것은 나와 내가 쌓아온 시간과 내가 그 사람과 지켜온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말이다.
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자신의 방식을 터득하고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마음과 감정과 생각을 믿어줬으면 좋겠다.
나눔 질문
• 소설에서 ‘고독’과 ‘사랑’은 어떻게 묘사되었을까?
• 주인공은 왜 나스첸카 그렇게 쉽게 빠졌을까? 단순한 외로움 때문일까, 아니면 더 깊은 이유가 있을까?
• 나스첸카 청년에게 정말로 마음이 있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위안으로 여겼을까?
• 주인공과 나스첸카 관계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가?
• 나스첸카 약속한 연인을 기다려야 했을까, 아니면 새로운 사랑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까?
• 만약 나스첸카 주인공을 선택했다면, 그들의 관계는 행복했을까?
• 이 소설에서 ‘백야(하얀 밤)’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chatgpt에게 질문거리를 만들어주기를 부탁했는데 아주 세세하고 깊은 질문들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줬다.
특히 나는 ‘만약 나스첸카가 주인공을 선택했다면, 그들의 관계는 행복했을까?‘라는 질문이 궁금했다.
요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가 핫하다.
거기서 아이유가 사랑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과의 현실적인 문제로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는 내용이 있다.
결국 맺어진 인연이 그 사람에게 꼭 맞는 인연일까? 아니면 어떤 인연이든 내가 노력해 끝내 지킨 그것이 내게 꼭 맞는 인연이었다 할 수 있는 걸까.
드라마에서는 감성적인 요소들이 많이 첨가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결국 이루어진 인연이 진정한 인연인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런데 세상이, 사람 사는 인생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특히 우리의 기성세대 부모님들은 보면, 어쩌면 서로보다 더 맞는 사람이 있을 텐데 왜 이리 싸우고 지지고 볶고 안 맞는 걸 맞추지 못해 안달이실까. 많이들 생각해 보았을 것 같다.
관계가, 사랑이 그렇게 획일적이지도 않고 fit 하게 정의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려운 거고 그래서 더 큰 노력이 필요한 거다.
정답이 없는데 사람들은 자꾸 정답을 찾으려 하다 보니 괴로워지고 결국 포기하게 된다.
내가 선택한 것이 정답이다.
그 선택을 지켜내려고 노력하고 일구어가는 게 신이 우리에게 주신 ‘운명’을 방치하거나 잃게 내버려두지 않고 이루는 일이 아닐까.
신이 우리에게 여러 개의 운명의 선택지를 주신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지 앞에서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선택한다. 가장 어려운 걸 선택한다. 포기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니까.
나는 사랑도 경제와 가정배경 못지않게 수준이 맞는 사람끼리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와 비슷하고 정서적 깊이와 이해와 생각, 대화, 용서, 관계의 정의, 가치관, 사랑의 수준이 비슷한 사람이 이상형이 되었다.
늘 이상형을 이야기할 때 어려웠는데 명확한 무언가가 생겼다.
나스첸카와 주인공도 어쩌면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천천히 마음을 주고받고 시간을 가졌더라면 그들의 선택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것이 운명인 것 아닐까.
사랑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흔들림 없이 그 사람과 함께하는 선택들을 해야겠다. 아쉬운 게 있고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을지라도 함께하기를 ‘선택’하고 끝까지 지켜내는 사랑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