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는 연습
삶의 균열 앞에서 나를 돌보는 연습, 박재연 작가의 <조용한 회복>을 만났다.
가족, 사랑, 일, 죽음 4가지의 영역에서 어떤 문제와 회복이 있었는지 작가와 여러 인물들의 스토리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가족이 그리울 때, 가족이 힘들 때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나의 관계를 하나로 묶지 않았다. (부모님은 전혀 그러지 못하셨지만) 나와 부모님은 각자이며 다른 인격체이고 심지어는 나를 고려하지 않아도 될 그들만의 인생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이혼가정'이라고 조심스레 고백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우리 부모님이 이혼하시길 원했어.’라고 얘기해 왔다.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기만처럼 들릴 수도, 위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보통 나의 지인들은 위로로 들어주었다.) 내가 이 말을 한 이유는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이유인데, 첫 번째는 상대에게 ‘이혼가정‘이라는 것이 불행이 아님을, 나같이 이혼을 바라는 자식도 있다는 내 식의 나다운 위로를 보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나는 나의 부모님이 가정을 지켜야 한다며 그들의 삶을 희생하길 정말로 바라지 않았다. 각자가 더 행복한 길이 있다면 가정을 지키지 않아도 당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고 우리가 당신의 자녀라는 것은 변치 않을 거니까.
죽기 살기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지옥을 오가며 평생을 끊어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그 또한 존중한다. 가정을 유지하려는 것이 그들이 꼭 지키고픈 가장 큰 가치일 수 있으니까.
요즘 그냥 나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 하는 잣대나 판단을 과감히 내려놓았다. 내가 그들이 아닌 이상 그들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고는 그들이 하는 선택에 단 하나도 왈가왈부할 수 없다.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도, 과감히 끊어내는 것도 둘 다 큰 용기이며 희생이고, 아프다.
주기만 해도 행복하다 생각했는데, 사랑이 고플 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먼저 이별을 택했던 청년과 다시 마주 앉았을 때,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과 상대에게 조금만 솔직하면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고, 각자 다른 우주를 사는 우리는 솔직함을 통해 관계의 안정감을 만들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인간관계에 솔직함과 투명함은 꽤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사람을 볼 때도 늘 '아무렴 어때~'하던 내가 이제는 솔직하지 못한 게 느껴지면 마음을 잘 열지 못한다. 누구나 상처받는 건 두렵다. 하지만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 이별을 선택하고 끝까지 솔직하지 못한 채 멀어진다면 그만큼 불완전한 결말이 있을까. 그만큼 불안전한 나를 마주하는 게 아닐까. 깊이 사랑하고 싶다면 그 깊이만큼 솔직하고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솔직할 수 있는 건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내가 마주하고 부딪혀 키워나가야 할 힘이다.
일도 삶도 어긋났다 느낄 때
꿈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자잘한 감정의 파동으로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파동을 따라가며 아주 천천히 자신을 알아간다. 그러니 지금의 일이 시작이든 끝이든 혹은 잠시 머무는 지점이든, 그것은 여전히 내 진로의 일부일 수 있다. 마닐라 선생님들의 고백처럼 나 역시 돌이켜보니 모든 경험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 해 보는 것은 멋진 일이며 가치 있는 일이다
졸업을 하고 나는 아는 지인의 학원에 강사로 일한 적이 있다. 경험을 쌓는다는 명목하에 일한 열정페이였다.나는 그 일을 하는 내내 내 월급에 대한, 직장 환경에 대한 불만이 없었다. 그 너머의 비전을 바라봤다. 지금의 월급과 환경의 부족함을 보기보다 지금 내가 배울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이 경험들이 결국 '나의 일'을 하는 데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엄청난 자산가가 된 누군가 그랬다. '나는 내가 청소부일 때조차도 그 일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라고. 보면서 부끄러웠다. 열정페이하던 시절의 나는 근성이 있고 비전을 바라보고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조금만 불편해도 중단하고 싶어 하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일이란 나에게 무엇일까. 나는 내 일은 진득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일까. 나의 꿈이 무엇이었나. 이런 질문들이 요즘 내 머릿속을 자주 어지럽힌다.
P1) 불편한 상황에서의 대화 연습
저자는 화를 내거나 못되게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 말이다. 이 부분이 꽤 흥미로웠다.
나 또한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을 남발하는 사람들 앞에서 얼어붙는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나 또한 그들처럼 분노할 것만 같아서. 그리고 이런 이들과는 애초에 대화라는 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경험하고 살아서 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화를 내고 못된 말이라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것들은 이들의 의중이라도 파악할 수 있지, 오히려 숨기고 돌려 말하고 핵심 내용을 자꾸 회피하려는 대회 방식을 가진 이들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진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짜증을 내고 화내고 표현하는 게 더 건강한 관계구나 , 우리의 베이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정확하게 표현하고, 대화하고, 때로는 수치스럽더라도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나는 네가 이럴 때 이런 감정을 느껴.', 서운하고 속상하고 밉고 관심받고 싶다고,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표현하지 못하고 솔직하지 못한 건 무능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도 말한다. 불편한 대화를 할 때 실행 기능 executive function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실행 기능은 전두엽에서 담당하는 인지 능력으로, 충동을 조절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며 감정을 다스리는 역할을 한다.
이 기능이 활성화되어있지 않으면 내가 관계에서 그만큼 대화할 수 있는, 표현할 수 있는 스킬이 부족하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 아닐까. 그것만큼 무능하지 않은 게 없지 않은가.
삶의 유한함을 때 닫게 될 때
또 죽음학을 공부하면서 삶의 유한성을 더욱 자주, 깊게 체감했다. 이 과정에서 소중한 삶의 시간 동안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난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지 깨닫기도 한다. 삶의 시간이 찰나처럼 짧게 다가올 때면 더욱 현재에 집중하고 싶어진다. 타인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내 삶을 바라보고, 지금, 이 순간 누리고 있는 것들에 집중할수록 마음속에는 평온함과 감사가 피어오른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유언장이 있는데, 아버지의 유언장이었다.
최근 아버지는 요양원을 설립하고 싶다는 비전이 생기셨고 이를 위한 학부 과정을 밟고 석사준비를 하고 계시다. 학부 과정 중 유언장을 쓰는 시간이 있었다. 나와 동생은 알 수 없었지만 엄마가 공유해 주어 아빠의 유언장을 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와 마주하는 시간이 너무 힘들고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체벌이 심하셨고 아빠의 심기를 건드리면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셨다. 오죽했으면 (내 기억으로는) 7살 즈음에 아빠에게 '처음 잘못했을 때 때리지 말고 내가 같은 잘 못을 두 번 하면 그때 때려.'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체벌은 중학교 올라가면서 멈추셨지만 화가 난 사람을 다루는 법을 몰랐던 나는 소통이 아닌 회피를 선택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나에게 아버지에 대한 벽이 생겼고 커가면서는 아버지께 대항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나는 아빠의 유언장을 읽는 순간 마음에 담고 있던 미움과 분노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유언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와 자식들에게 보내는 '사과'의 내용이었다. 정말로 미안하다는 말 밖에 없었다. 꽤 긴 유언장이었는데 그 안에는 이제껏 아빠 본인께서 무엇이 미안했는지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그 때 삶의 유한성을 실감했다.
죽음 앞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나는 죽음 앞에서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나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싶을 것 같다. 감사했지만 표현지 못한 이들에게, 정말로 용서를 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나는 그렇게 내 마지막을 미안했고 결국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더 미안하지 않게 현재를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소중한 시간 동안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삶을 살기보다 가능하면 용서하고 더 사랑하려 노력하면서 살아야겠다. 그것이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메멘토 모리', 늘 죽음을 기억하며 현재에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며 살다 보면 언젠가는 타인뿐만 아니라 나의 상처와 아픔, 가시 돋친 모습까지도 사랑할 수 있으리라.
그런 멋있는 인생을 모두가 선택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