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우동 맛집을 잃어버린 이유는
아이들이 한창 어릴 땐 끼니를 제때 챙기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출근한 날은 점심 시간이 있지만, 집에 있는 날은 애들 등교시키고 집안 일 챙기다 돌아서면 하교할 때가 된다. 그날도 하루종일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어, 허기로 정신 몽롱한 날이었다. 시간을 쪼개서 집안 일이며, 애들 학원 상담이며 저녁까지 챙겨놓고야 밤 8시 넘어 학부모 모임에서 밥그릇을 마주할 수 있었다. 뜨끈한 온기가 필요한 날이라 동네 우동 맛집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처음 갔을 땐 선술집인가 싶었는데, 소주 안주로 시킨 우동이 그만, 딱 내 스타일이었다. 직접 뽑은 면발은 굵지도 얇지도 않고 중면보다 살짝 도톰한 식감. 면치기 때마다 딸려오는 국물 맛은 소주 안주로도 훌륭했지만, 끼니로도 손색없었다. 따끈한 한 끼의 위로가 필요할 때 알맞은 메뉴였다. 숨 가쁘게 일상을 살던 그날에 꼭 필요한 뜨끈한 한 그릇이었다.
가장 늦게 도착한 내가 앉자마자 주문한 우동이 나왔다. 속을 찌르르하게 울리는 소주 한잔 후 첫 젓가락을 뜨는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기괴한 풍경. 볼 것도 없지만, 결코 그런 장소에서 봐서는 안 될 남자의 엉덩이였다. 옷을 입은 실루엣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바지를 내리고 볼품없는 엉덩이를 깠더란 것이었다. 당황과 동시에 불쾌함. 그 와중에도 뒷모습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저씨, 지금 뭐하는 거에요!!!”
당시 가게 안엔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동네 맛집이라 종종 저녁을 해결하러 온 사람들도 많다. 이해나 용납은 둘째치고, 성적 봉변을 당했으니 자동발사로 목소리가 커졌다.
나의 고함에 사람들이 일제히 계산대 앞을 쳐다보는데, 이미 만취의 아저씨. 짧은 혀로 해롱대며 말했다.
“아줌마~ 왜 그래요? 왜 화를 내요??”
아~놔~~ 저런 개똥쥐빠귀 같은 물건이 다 있나.
“아저씨가 지금 바지 내리고 엉덩이 깠잖아요!! 애들도 있는데 뭐하는 거에요!!!”
후다닥~
놀란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고, 동시에 나의 일행이 더 불같이 화를 내며 벌떡 일어섰다.
“CCTV 어딨어?? 사장님, 여기 CCTV 보여주세요! 이런 인간은 콩밥을 먹여야 정신을 차리지.”
나보다 더 발끈하는 사람, 그날 처음 봤다.
문제를 제기한 내가 더 놀랐지만, 알 수 없는 통쾌함과 한패(?)가 있다는 든든함에 기세등등하게 대거리를 했다.
직사각형으로 좁은 가게 안은 양쪽으로 테이블을 한 개씩 길게 늘어뜨린 구조였다. 길어봤자 입구에서 주방까지 한쪽에 4인용 테이블이 고작 3~4개씩이었으니까, 주방 앞에 바로 계산대, 그 계산대와 나의 테이블은 고작 200m쯤 떨어져 있었을까.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가게 안. 계산을 하던 사장님은 마치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노출남과 우리 일행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사장님 왈, CCTV는 없으며 일단 싸움은 밖에서 하란다. 엮이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어필이었다.
‘와지끈’
오후 8시부터 만취상태였던 노출남 일행의 갑작스런 폭력사태. 가게 앞의 작은 울타리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경찰이 출동하고, 흥분상태인 우리 일행도 동네 파출소에 가서 조서를 꾸몄더랬다. 노출남은 무슨 짓인지도 모르고 바지를 벗었네 입었네 하며 횡설수설했고, 결국 그날의 모임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그 뒤로도 신고자인 나는 지역거점 경찰서까지 가서 참고인 진술을 했으며, 술이 깬 뒤 자신이 한 짓을 부인하던 노출남은 우리 일행이 촬영한 영상을 근거로 아마도 벌금형 정도 받은 것 같다.
또 괜한 오지랖이었나, 나 하나 못 본 척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까. 상황이 이렇게 되면 늘 드는 죄책감이지만, 그날만은 함께 분노해주는 일행 덕에 든든하기도 더 당당할 수도 있었다. 집단 최면이 이런 걸까.
5년쯤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우동집은 가지 못한다. 경황없는 와중에도 사장님은 멀어져가는 우리에게 “이제 우리 집에 오지 마세요!” 했던 말이 뇌리에 남아서다. 나는 잘못한 것 없이 우동 맛집 하나를 잃은 셈이니 약간 억울하긴 하지만, 동네 장사 하는 사장님의 고뇌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점심 일행이 시킨 우동 한 그릇에 문득 그날의 해프닝이 떠올랐다. 그깟 우동, 그날 이후 집에서 해 먹지만 오늘처럼 비오는 토요일 소주 한잔에 뜨끈한 국물이 살짝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나저나, 든든했던 그 엄마는 요즘 뭐하나, 안부전화라도 넣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