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살아봠수꽈?

태풍과 택배와 제주살이의 고뇌

by 달콤달달
태풍으로 서평단에 당첨된 책의 배송이 늦어짐을 알리는 문자

이럴 줄 알았다. 이놈의 태풍이 결국 나에게 다가오고 있던 많은 기쁨(=택배)을 막아서는구나. 사실 책이 문제는 아니다. 추석맞이로 주문해 놓은 선물들들도 줄줄이 육지를 벗어나지 못해 나는 애가타면서도 ‘그래, 태풍이 큰 피해없이 잘 지나가기만 해도 다행이지.’ 했다가 금방 ‘아오..’ 울컥하고만다.


제주살이를 결정한 것은 어쩌면 가장 단순한 이유였다.


-남편의 고향이 제주

-남편 직장이 제주

-남편의 아파트가 제주에 있음


어쩌다 제주 토박이를 서울(내 고향도 서울이 아니긴 마찬가지지만)에서 만나 6년의 장거리 연애를 결혼으로 마무리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내 삶을 통째로 제주로 옮기는 것이었다.

운명이었을까.

내가 결혼과 함께 제주로 이주하려던 2016년은 스몰웨딩부터 화제가 되었던 (당시)소길댁 이효리님의 영향으로 제주살이(한달살이)가 핫하던 때였는데 나는 모두의 부러움 속에서 의도치 않게 하지만 꽤나 자연스러운 모양새로 그 시류에 편승할 수 있었다. 애월바다의 일몰처럼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조금은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서른 다섯의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도 현실파악이 덜 되어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제주에 홀렸’던 것 같다.


처음 얼마동안은 예상한 것처럼 좋았다. 오늘은 서귀포에서 폭포를 보고 중문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도 마시고 내일은 오설록 녹차라떼를 마시기 서쪽으로 내달렸으니 말이다. 회사에서는 그런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고 서울에서는 어딜 가려고 해도 한 시간 이동은 기본이니까, 어깨를 으쓱. 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제스쳐를 해보이기 일쑤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상황이 급반전 되기 전까지. 아이를 차에 태워 다니는 부담감 및 아이의 컨디션 상황으로 인해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졌고 자연스럽게 외출을 삼가게되었다. 부부 둘 다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극도로 조심하는 성격이다 보니 아이를 데리고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조차 쉽지 않아 그냥 편하게 집에서 먹는 날이 많아졌고 아이가 조금 더 컸다고 바로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회사-집-회사-집을 루틴으로 하는 평범한 삶이 제주에서도 이어졌다. 그렇다, 사람 사는 곳인데 제주라고 퍽 다르랴.


아이가 네 살 정도 되니 해뜰날이 찾아왔다. 대소변을 완벽히 가리게 되었고 아이와의 외식이 수월했으며 때떄로 “엄마, 우리 드라이브 갈까?”하고 주말에 늘어져 있고픈 우리 부부를 초록빛 가득한 절물 산책로로, 바라만봐도 시원한 바다뷰 카페로 이끌어주기도 했다. 이제야 제주에 사는 맛이 난다고, 이게 바로 제주살이라고 송악산 둘레길을 걸으며, 선인장 군락지에서 풍차와 바다와 노을을 감상하며 감탄했었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덮치기 전까지 말이다.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아니 서울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확진자가 나오고 있을 때만 해도 제주는 ‘청정’하다며 다소 안심을 했었다. 그런데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제주로 이어지고 제주와 육지를 분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제주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나는 처음으로 제주도에 살고 있는 것이, 섬에 살고 있는 것이 겁이 났다. 육지와 단절되는 것은 아닌지 여기 제주에 고립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제주도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면, 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큰 병원이래봤자 몇 군데 안되는데 비행기로 이송은 가능할 것인지, 당국이 코로나 초기의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제주도를 봉쇄하는 것은 아닌지 공포와도 같은 생각들이 포도송이처럼 연달았다. 다행히도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그런 일은 내 머릿속에서만 하루에도 몇 번씩 재생되었을 뿐 불안과 안전 사이에서 줄을 타면서도 일상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wirh COVID19.


태풍이 밤 사이 제주도 가장 가까이를 지나 17일 새벽이 고비라고 하는데 아직은 비만 내릴 뿐 바람은 잠잠한 편이다. 해마다 태풍으로 바싹 긴장을 하게 되는 것도 제주도에 살면서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이다. 추석 전에 태풍이 오는 것이 오히려 감사할 정도라고 동료들과 농담도 했다. 추석 때 태풍이라면 오랜만에 가는 친정행도 무산될 뻔했으니까.(부모님은 2차접종 완료, 우리 부부도 1차는 완료, 오빠네는 만나지 않게 일정을 잡았다) 퇴근 후에는 태풍으로 내일 정상출근이 불가능할 경우 연가 및 유연근무 등을 활용하라는 총무과 문자메시지도 받았다. 제주에 살면서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만 지금은 그저 태풍이 예상과 달리 조용히 지나가주길 바라는 수밖에 방도가 없다. 그래야 지금 육지 어딘가에서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나의 서평을 위한 책들과 명절 선물들이 곧 나에게 닿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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