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당신이 모르는 제주

부신랑과 1년 만에 받은 레디백

by 달콤달달
(좌)1년만에 돌려받은 레디백 (우)레디백 안을 가득채운 과자들


작년 10월쯤에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 결혼식이 있었다. 스물대여섯쯤 경찰 시험에 합격해서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날의 새신랑은 남편이 취준생 일 때(남편은 5년 여의 직장생활에 쉼표를 찍고 현재 다시 취준생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밥과 술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남편을 응원했던 은인이기에 남편은 두말할 것 없이 부신랑으로 새신랑을 축하해주기로 했다. 부신랑인 남편을 위해 나는 기꺼이 새 양복을 맞추도록 카드를 내주었다. 육지에서는 친구 결혼식이라도 해서 특별한 뭐가 없지만 제주도는 조금 다르다. 결혼 준비로 바쁜 신랑과 신부를 위해 각자의 가장 친한 친구가 부신랑_부신부가 되어 웨딩촬영 같은 결혼식 준비와 당일 거사를 돕는다. 가장 큰 역할이라면 바로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챙기는 일이다.


제주도 결혼식에는 축의금을 받는 테이블 없다.


육지의 결혼식에 참석하면 예식이 시작하기 전부터 식장 문 좌우로 신랑 측, 신부 측 축의금을 받는 테이블이 있고 보통 친척들이 앉아 명부를 받아 적은 후 식권을 나누어준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하는 결혼식에는 이런 광경을 보기 어렵다. 그럼 축의금을 누구에게 내는가? 바로 부신랑, 부신부에게 낸다. 그래서 부신랑 부신부는 보통 보조가방 같은 걸 하나씩 들고 신랑 신부 근처에서 동행한다. 친지 및 지인들에게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신랑 신부를 대신해 축의금을 받고 답례로 상품권을 챙겨주기도 하고 손님맞이도 한다. (혼주들은 각자 부좃돈을 받는다)


제주도의 결혼문화에 대해 조금 더 보태보자면,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제주도는 결혼식 전에 잔치를 한다. 결혼식 전에 하면 전날잔치, 당일에 하면 당일잔치가 된다. 아주 더 예전에는 정말로 돼지도 잡고 일주일씩 잔치를 했다고 한다. 남편의 작은아버님께서도 일주일 동안 잔치를 했다고 하니까 그렇게 옛날 일도 아니다. 지금은 많이 간소화돼서 결혼식 당일잔치를 많이 한다. 결혼식 당일 잔치이기 때문에 예식장에서는 하루 종일 한 팀만 받는다. 한 식장에 보통 2시간 정도 시간대별로 예식을 보는 육지스타일과는 완연히 다르다. 그래서 급한 볼일이 있거나 참석해야 할 결혼식이 겹쳐도 큰 걱정이 없다. 여기에 갔다가 후에 저기를 가면 되니까. 그리고 말 그대로 잔치이기 때문에 손님이 한 번만 왔다 가도, 여러 번 왔다 가도 상관이 없다.


나는 결혼식 전 남편의 전날잔치에 인사차 참여했다가 점심에 오신 분이 오후에 또 오신 모습을 보고 “자기, 저 사람 아까 왔는데 또 와서 밥먹어;;;;” 라고 말했는데 식권을 받아서 한 번만 식사를 하는 육지식의 결혼식과는 다른 생경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잔칫날 자리를 빛내주러 오는 거라서 몇 번을 와서 밥을 먹건 고맙게 생각하지 밥값을 먼저 계산하지 않는다. (결혼식뿐 아니라 장례식도 마찬가지이다. 3일장이면 동네 분들은 3일 내내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장례식장에서 드시며 자기 일처럼 일을 돌봐주신다,) 제주도만의 의 ‘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편은 이 부신랑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침 일찍 아디다스 보조가방을 하나 매고 나갔다. 나와 아이는 예식 시간에 맞춰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 집에서 쇼핑백 큰 거 하나 가지고 와줘. 가방이 작아.

-쇼핑백? 일단 알았어.

요즘은 인터넷 쇼핑을 주로 하기 때문에 집에 마땅한 쇼핑백이 없어 뭘로 가져갈지, 책가방을 가져갈지 마음이 분주한 때에 바로 여름에 받은(엄밀히 내가 받은 건 아니고 새언니가 받은 걸 선물로 받았다) 스타벅스 레디백이 생각났다. 코로나 시국이라 제대로 된 여행 한 번을 가지 못해서 레디백(인터넷 상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바로 그)을 받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삥’이었는데 이렇게 쓰이는구나 싶었다. 이 가방이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오는데 1년이나 걸릴 거라고는 그때는 당연히 생각지 못했다.


신혼여행 다녀온 후 신혼집에 우리 가족을 초대하겠다고 했고(그때 가방도 돌려받을 수 있겠지) 신혼부부란 무릇 결혼 이후 양가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고, 결혼생활에 적응도 해야 해서 바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란 걸 잘 알기에 금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초대는 지금까지 받지도 응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결혼식이 있었던 10월까지만 해도 제주도는 코로나의 맹공격을 잘 방어하던 때였는데 12월쯤부터 급격히 확진자 수가 늘어나 4인 이상 모임 제한이 생겼고 그 상황은 무기한 연기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주말 남편의 또 다른 친구의 결혼식이 있고 이번에 신랑은 부신랑은 아니고 1호차(신랑 신부가 타는 차) 운전사의 역할을 맡았다. 남편이랑 연애 6년, 결혼 5년이 넘다 보니 남편의 친구들, 그들의 여자친구였다가 아내가 된 이들과도 10년 지기가 되는 셈이라 예전 같으면 다 같이 만나서 결혼을 축하해주고 왁자지껄 재미난 시간을 가졌겠지만 아쉽게도 남편만 청첩장을 받으러 갔다 왔다. 돌아온 남편의 손에 들려온 레디백. 하하하. 웃음이 났다. 사실 나는 어느 순간 이 가방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빌려준 것도 이 가방이 나에게 있었다는 사실도. 받아 든 가방이 묵직했다. 응? 뭐지? 아이와 함께 가방을 열었더니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과자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나도 기분이 좋고 그 가방의 주인공이 될 아이는 말해 무엇하랴. 신나서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아이와 과자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어 ‘이렇게만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방을 더 빌려줄 수도 있다고, 언제든 말만 하라’고 남편의 휴대폰을 빌려 카톡을 보냈다.


별 것 아닌 일이,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큰 기쁨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레디백을 빌려주었을 뿐인데 1년 후에 선물이 되어 돌아왔다. 과자가 들어있지 않았어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10년 후에 받았다면 더 큰 선물이었을까. 하하하. 괜히 실없는 생각과 웃음이 멈추지 않는 밤이다. 제주에는 아직도 이렇게 ‘정’이 흐르고 종종 넘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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