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면서

승마와 골프와 바다수영에 관한 동상이몽

by 달콤달달

다섯 살 된 아이가 아빠 팔 베개를 하고 잠이 들었다. 꿈나라에서도 건담 삼총사와 칼싸움을 하고 있으려나. 머리맡에 건담 프라모델들을 총총총 놓아둔 모습이 귀여워 사진에 담았다. 남편과 아이가 10시 전후로 잠이 들면 나의 글쓰기가 시작된다.


6년의 연애기간 중에서 절반 정도는 나는 서울에, 남편은 제주에 있었다, 바로 그 유명한 장거리 연애. 우리의 연애를 결혼으로 끝맺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적당한 거리두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하고 직장문제로 4개월 정도 또 떨어져 있었다. 그때는 하루라도 빨리 제주도로 가야 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생각한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했어도 좋았겠다고.


제주에서도 동쪽 끝에 남편의 본가가 있다. 그렇다, 나의 시댁.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제주도 풍습에 첫인사 자리에서는 물도 내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로 커피 한 잔도 얻어 마시지 못했다. 어색한 공기에 짓눌려 얼굴에서도 쥐가 날 것 같았던 그 자리에서 어머니가 “우리 집은 제사가 두 번 있어.” 하고 새침하게(?) 말씀하셨던 모습이 인상 깊은 영화_이를테면 실미도에서 안성기 배우가 내뱉었던 “날 쏘고가라!_의 한 장면처럼 자주 반복 재생된다. 그때 그 말의 의미를 알았더라면. 내가 몰랐던, 당신이 아직도 모르는 제주의 찐 이야기는 아직도 많다. 집안의 첫제사를 치르고 다음 날 앓아누워 출근도 하지 못한 이야기는 아쉽지만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제주에 산다는 건 비행기나 숙소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언제든 어디든 삶이 곧 여행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사람들이 제주살이를 꿈꾸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로망에 숨은 진실 하나는 사람 사는 곳이 제주라고 다르지 않다는 것. 출근하는 길에 짙초록 한라산이 수평으로 내달린다고 해서 매주 한라산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한라산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퇴근하는 길 저기 보이는 푸른빛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해서 매 주 바다 뷰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지도 않는다. 회사-집, 육아-일이 연속인 매일이 단조롭지만 불만스럽지도 않은 그들이 사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 여기에도 있다.


그런데 그건 나의 삶이고.


아이가 사는 제주는 좀 더 특별했으면 좋겠다. 5분만 차를 타고 나가면 파도소리가 설레는 바다가 있고, 10분만 차를 타고 나가면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말들이 천지삐까리다. 15분을 운전하면 골프장 푸른 잔디가 하늘색과 어울려 청량하다. 그래, 나 제주에 살지! 옆자리에 앉은 아이에게 묻는다.


-서율아, 이번 주말에 바다에 물놀이 갈까?

-아니, 나는 물에는 안 들어가고 모래놀이만 할게.


-서율아, 너 지오형 알지, 천율이 형이랑 같이 골프 배운대. 너도 같이 가볼까?

-아니, 나는 로봇 가지고 놀래.


-서율아, 할아버지 친구 순종이 삼춘 알지, 지난주에 할아버지 집에 갔을 때 만났잖아. 그 삼춘 집에 말들 엄청 많아. 한 번만 태워달라고 해볼까? 승마. 엄청 재밌을 걸?

-아니, 말은 보는 것만 좋아. 가까이는 말고. 무서워.


아이가 어린데 엄마가 극성일 수 있다. 영어 유치원도, 주입식 교육도 관심 없지만 뭘 꼭 배워야 한다기 보다 다양한 경험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다 어려서 했던 즐거운 경험들이 아이가 살아가는데 밑거름이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로봇 박사가 되는 게 꿈인 아이와 제주에서 그 ‘흔한 로망’을 실현하고픈 나의 동상이몽은 오늘도 계속된다. 올 해 아니면 내년에라도 내년 아니면 내후년에라도! 우리는 제주에 살고 있으니까!(그래도 너가 싫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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