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 찌르찌르 곤충들이 우는 소리, 하하호호 아이들이 웃는 소리, 시시콜콜 우리들의 이야기 소리가 밤새 귀를 간지럽혔다. 짙은 안개처럼 시간을 겹겹이 둘러싼 여운이 흐려질 때쯤 언제나처럼 쨍하게 날은 밝았고 다시 집이다.
- 아...엄마, 캠핑 또 가고 싶다. 하룻밤은 너무 짧아... 이틀, 아니 아니 삼틀 자고 오면 좋겠어!
현관문을 막 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가 말했다. 아이에게 이토록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면 적어도 하나의 목적은 달성한, 성공적인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네가 좋았다고 하니 엄마도 더 좋아!
내게 주어진 삶은 겨울이면 따뜻하게 온기를 전해 줄 온열 시트도, 밤하늘에 달빛을 드리워줄 파노라마 선루프도 없는 기본만 갖추고 출고된 '깡통' 자동차와 같았다. 가족들이 정답게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도, 달뜬 마음으로 손가락 접어가며 기다렸을 가족여행의 설렘도 선택할 수 없는 옵션일 뿐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망설였다. 내가 느꼈던 결핍을 아이가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99를 가진 사람이라면 100을 채우기 위해 1의 결핍을 연료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겠지만 1을 가진 사람은 99를 채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1마저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이다.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고군분투는 내 부모님의 새끼인 나로 족하다.
결혼과 함께 내가 고른 차는 값비싼 외제차는 아니지만 우리 부부에게 필요한 몇 가지 옵션들을 갖추었다. 덕분에 아이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자동차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 물려줄 금수저는 없지만 심으면 뭐든 잘 자랄 양질의 흙은 충분하다. 그 안에 무엇을 심어 싹을 틔울지는 아이가 고민할 문제이다. 거저 살아지는 삶이 없듯, 아이는 흙에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검질도 매고(잡초 정리 등을 한다는 뜻의 제주어), 관심도 기울여야 땅 속에서 생명이 움튼 다는 것을 자라며 배우게 될 것이다. 아이가 애쓰며 살았으면 좋겠다. 흘리는 땀방울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다만, 물속에서 아무리 발을 내저어도 땅이 발에 닿지 않고, 터널 속을 아무리 걸어가도 빛이 보이지 않는 아득함 혹은 절망감까지는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의 추억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렸다.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공백을 메워주기 위해 아이의 친구 가족과 1박 2일 캠핑을 가기로 했다. 사실, 흔히 생각하는 캠핑은 아니지만 작은 잔디 마당에서 바비큐와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어서 아이들은 캠핑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친구와 함께 뛰어노는 지금 이 순간일 뿐 캠핑이든 아니든 형식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커다란 비눗방울이 톡톡 터질 때마다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마당에 차곡차곡 쌓였다. 뛰어가는 뒷모습에도 즐거움이 보였다. 특별히 무얼 하지 않아도 좋았다. 얼굴만 보아도 웃음이 났고 하늘만 보아도 마음이 맑아졌다. 코로나19로 갇혀 있던 시간 동안 우리가 잃고 지냈던 것들은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라 이토록 평범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시간의 한 꼭지를 잡아 채 매어두어도 좋겠지만 우리의 밤도 낮만큼이나 아름다울 것을 알기에 흘러가는 시간도 아쉽지만은 않았다. 집 안에서는 소파와 한 몸처럼 지내는 남편들이지만 집 밖으로 나오니 숯불을 능숙하게 피우고, 고기는 타지 않게 노릇노릇 구워내는 능력자가 되었다. 한 손에는 집게를, 다른 손에는 가위를 들고 불판 위를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사뭇 느름 해 보이기까지 했다. 뛰어 노느라 바빴던 아이들은 이제 먹느라 바빴다. 함께 놀 형제, 자매가 없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만나 서로를 의지하며 지낸 지 4년이 넘었다. 남편들이 동향이고, 건너 건너 아는 사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된 후 더욱 친해지긴 했지만 아이들이 만날 때마다 투닥거리거나 둘 중 하나는 우는 일이 빈번했다면 부모들 사이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만남이 지속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인 부모들보다 서로를 더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안다. 만나면 반갑다고 안아주고 헤어질 때는 아쉬워서 또 안아준다. 재고 따지는 것 없이 순수하게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아직은 저녁 바람이 쌀쌀했지만 모닥불의 온기로, 서로의 체온으로 공기는 한층 따뜻해졌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 세우니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 누가누가 잘하는지 서로 경쟁하듯 우렁찬 목소리로 마당을 가득 채웠다. 무릇 '갬성 캠핑'이라면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어디든 좋으니 나와 가줄래..." 하고 감미로운 목소리의 노래가 들려야 할 텐데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니! 낭만과는 거리가 먼 현실 육아 앞에서 '불멍'이라는 야무진 꿈은 사그라드는 불꽃과 함께 사라졌다. 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모두 숨었길래 어디 갔나 했더니 두 아이들의 눈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봄밤, 우리들의 밤이 깊어져갔다.
덧, 편안한 밤 보내세요 :)
https://youtu.be/Mz031oU0Xf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