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들고 나는 일
사무실 동료 중 두 분이 12월 31일 자로 공로연수*에 들어가신다. 그중 한 분은 무려 42년**하고도 몇 개월이 더 되는 경력의 소유자인데 고등학교 졸업 전에 입사를 했으니 그야말로 대학의 역사 안에 한 개인의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때로 말할 것 같으면, 지출서류를 천장 높이로 쌓아놓고 일일이 수기로 실장님 도장을 받았다거나, 학위 증서를 하나하나 손으로 써서 만들었는데 물을 엎지르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거나, 월급 주기 전 날에는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십원 자리까지 손수 세고, 봉투에 하나하나 담아 금고에 넣어두었다거나, 그 월급날이 되면 외상값 받으려는 술집 주인들이 사무실 앞에 줄을 섰다거나, 하는 선생님이 해 주시는 생생한 ’ 라떼‘이야기들은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며칠 전 실장님께서 요즘 심장이 두근두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상한 증세를 겪고 계신다고 했다. 스트레스받는 일 있으셨냐, 병원에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간단한 응대를 하고 말았는데 오늘 다른 동료들과 점심을 먹다가 실장님이 곧 있을 인사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신 것 같고, 빈자리에 누가 올지 걱정하시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수긍이 갔다. 내가 인사이동 해당자일 때는 인사철이 다가오면 어느 부서로 갈지, 어떤 사람들과 일 하게 될지, 상사는 어떤 분일지 걱정과 기대로 밤 잠을 설치는데 상사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부하 직원이 와서 무사히 적응할지, 맡은 업무는 차질 없이 해낼지 신경이 쓰일 수밖에.
현재 우리 사무실 상황은 이러하다. 12월 말일 자로 공로연수를 가시는 두 분에 이어 내년 2월 말이면 나도 출산을 위해 사무실을 떠날 것이고 다른 동료 선생님도 건강 상의 이유로 명예퇴직이 예정되어 있다. 한두 달 차이로 사무실 직원 절반이 나가게 될 것은 확정적인데 그 자리를 누가 채울지, 회사 내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보니 혹시 공석이 생기는 건 아닐지 불안이 기대보다 더 큰 상태인 것이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후임이 누가 오는지에 따라 마음 편히 출산 휴가에 돌입할 수도, 매일 걸려오는 업무 전화에 시달릴 수도 있다. 사람이 들고 나는 일이 중요하고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틀리지 않음이다.
인사철이 되면 총무과 인사팀 문턱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한다. 총무과장님 방 문이 닫히면 열에 아홉은 인사고충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내가 인사 업무를 해 보지는 않아 정말 궁금한 점 하나는,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실제로도 적용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여태껏 인사발령 관련으로 누굴 찾아가거나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써 본 적 없이 가라면 가라는 대로 짐 싸들고 다녔는데 가만히 있는다고 가마니로 보는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떠나온 이전 조직에서는 전보 계획을 세우면서 인사고충 특별 상담기간을 공식적으로 운영한다고 하니 우리 회사에서도 적용하면 좋을 것 같아 건의를 해 볼 생각이다. 마침 회사에 제출할 정책연구 과제의 주제이기도 하니.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인사발령은 없다. 그래서 인사업무가 어려운 거고 쉽게 욕먹고 드물게 인정받는 자리라고 생각된다. 바람보다 가볍고 멀리 날아다니는 게 소문인지라 입도 무거워야 할 것이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 만큼 안목도 있어야 한다. 새삼 지금 인사업무를 하고 있는 담당자와 팀장님의 노고가 느껴진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내 후임은 누굴 보낼지 고민하고 있긴 한 거죠?’ 마음의 소리이지만 괜히 한 번 크게 외쳐본다.
강사 일을 10년은 했으나 같은 학원에 3년 넘게 다닌 적이 없다. 3년쯤 되었을 때마다 연봉을 높여 다른 학원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고 10년쯤 되었을 때 강사 일에서 아예 손을 뗐다. 새로운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지 아직 10년이 되지 않았다. 퇴직을 해도 받을 연금이 없다는 뜻이다. 10년을 다 채운다고 해도 예전처럼 직장을 훌훌 털어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예전과 달리 자금은 곰 같은 남편과 토끼 같은 자식 그리고 언제나 존재감이 빛을 발하는 빚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20여 년을 더, 정년까지 할 수 있겠냐 스스로에게 묻는 다면 그것도 장담하기는 어렵다. 아직 햇병아리 수준의 공무원인 나는 40여 년을 한결같이 출퇴근한 선생님들의 근면성실함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연말이 다가오고 인사철이 다가온다. 모두의 연말이 따뜻하기를, 모두의 '인사'가 안녕하기를 바랄 뿐이다. 소원 을 편지에 적어 머리맡에 놓아두기라도 해야할까? 산타할아버지는 다 알고 계시겠지!
* 공로연수: 정년퇴직 예정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응 준비기회 부여 및 기관의 원활한 인사운영을 도모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제도
**대학회계직(무기계약직)으로 입사
*** 커버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