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서 감정을 배제할 수 있을까?

직장인의 감정노동

by 달콤달달

일을 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로봇이 인력을 대신하기도 하겠지만 그 로봇을 만들고 프로그램화하는 작업도 결국은 사람의 일이다. 일을 일로서 대하는 것이 직장인이 가져야 할 기본적 소양이겠으나 불끈. 울화 같은 울분이 가슴팍에서 솟구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전 우주적으로 봤을 때, 이 지구가 처한 상황들_전쟁, 가난, 기아, 차별, 온난화 등등_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한데 회사에서 그(그녀)가 던진 말 한디가, 업무 지시사항이 뭐 그리 큰 의미를 가지랴마는 오늘도 몸의 열기로 온 세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갈 정도의 화가 끓어올랐다. 그나마 겨울을 마중하는 중인 서늘한 바람을 맞으니 조금 차분해졌다. 하늘이 아직 나를 어여삐 여기고 계심이다. 하마터면 터져버릴 뻔했다.


지난주 업무협의 과정에서 감정이 상하는 말들이 오간 일이 있다. 협의를 하겠다고 찾아온 A는 말이 ‘협의’이지 사실상 ‘해!’‘하는 강압의 말투로 시종일관 대화에 참여했다. 요는 이러했다.

- 내가 뭘 좀 하려는데 부서장은 이미 오케이 한 상태야. 그래도 너네랑 예상 집행 관련해서 협의를 하라고 하더라. 그런데 부서장 너머 넘버원이 하라고 하면 해야 하는 거 알지? 넘버원한테까지 가기 전에 좋은 말로 할 때 하는 게 좋을 거야.

사업에 공모하고 수행하는 그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모르겠으나 행정을 모르는 사람임은 분명했다.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점에 대해 지침과 원칙을 근거로 말하고 있는데 그는 융통성과 재량에 관한 문제로 받아들였고 결국 ’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라 단정 지었다. 팽팽하게 맞선 평행선처럼 대화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 A는 화가 나서 ‘이 회사에서 이 업무를 처리할 사람이 ㅇㅇ주무관뿐이냐? 다른 사람 보내달라고 해야겠다' 고 말했고,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나는 다른 부서에 가면 그만이다, 그래 주면 오히려 고맙다.‘ 고 대거리했다. 협의를 가장한 협박 가득한 대화의 절정이었다. 중간관리자는 내일 다시 이야기 하자며 자리를 정리했고 나는 거듭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다음 날은 원래 휴가였지만 급여이체도 해야 했고 마무리되지 않은 ‘협의’를 매조지하기 위해 출근을 했다. 중간관리자에게 부서장을 만나 입장을 정리해야겠다고 말하니 중간관리자도 동의했다. 사실 그 사업이 꼭 필요한 사업이고 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중간관리자를 부서장 방으로 불렀겠지 협의를 하라고 사절단(전 날 찾아왔던 A)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사실상 불가능) 점에 대해 A에게 했던 말을 부서장에게 그대로 옮겼고, 말을 하다 보니 A와 다소 격한 말들이 오간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부서장은 가만히 듣더니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었고, 본인도 그런 우려 때문에 협의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A에게는 이번 사안의 어려움을 직접 말하겠다 했다. 그러면서 업무를 할 때(협의도 업무의 한 면이기에) 감정은 배제하고 팩트만 가지고 말을 하면 서로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고 덧붙였다. 아니, 부서장님, 그게 아니고요! 말하고 싶었지만 이야기만 길어질 것 같아 말을 삼켰다. 일단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퇴근 아닌 퇴근을 하는 게 더 중요했다. 이미 소중한 휴가 절반이 날아간 뒤였다.


감정을 배제하라고? 그런데 어떻게? 집에 와서도 ‘일에서 감정을 배제하라’는 그 명제가 머릿속을 맴돌며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사람들과 부딪히며 소통하지 않으면 진행이 어려운 것 투성이인데 사람이 하는 일에 어떻게 감정이 개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나는 지극히 감정적인 사람인데! 물론 회사에서 사사건건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기분과 태도를 동일시 하는 건 직장인이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특히 부정적 감정일 때는 더욱. 대부분의 날들에 내 감정은 긍정을 향한다. 일도 힘든데 사람까지 힘들면 회사 자체를 다닐 수 없지 않겠는가? 중간관리자가 이상한 데 꽂힐 때, 그 이상함이 선을 넘지 않는다면 동조하고 맞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 조교가 말도 안 되는 기초적인 질문을 해도 최대한 친절히 설명해주고 관련 규정과 지침을 안내한다, 다시 같은 질문을 하지 않도록. 문제는 내재되어있는 수인 한계치를 넘을 때이다. 나의 기준으로 A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고 나는 참지 않았을 뿐이다. A는 나의 거취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거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감정을 빼고 ‘네, 알겠습니다. 그다음은요!’ 했어야 했을까? 나의 내공이 부족한 것일까?


‘협의’라는 과정에는 어느 한쪽의 ‘수용’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사무분장에 명시된 사안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므로 협의 자체를 전제하지 않지만 새로운 사업(일)의 경우 그 주체가 '나' 혹은 ' 너'라고 하면 내가 될지 네가 될지에 따라 없던 업무가 생기고, 그에 따르는 책임이 동반되므로 쉽게 결론이 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업무를 '핑퐁 친다’는 말이 생긴 것 같다. 밖에서 봤을 땐 쉽게 핑퐁 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업무의 양, 더 나아가 삶의 질과 직결되어있는 문제이고 나의 운명, 때로는 부서의 운명이 달려있다. 그러므로 협의에서 필요한 건 강압과 협박이 아니라 배려와 이해이고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때에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수용과 포기 사이의 줄다리기이지만 어느 한 쪽이 승자, 다른 쪽이 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속한 조직의 구성원은 이중적이다. 크게 교수와 행정직 공무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교수가 다수인 집단이다. 이중적이라는 건 단일화된 조직보다 갈등 요소가 많을 가능성이 있다. 사무국을 제외한 모든 부서장이 교수들이라서 그런지 보통 업무 협의를 하다 보면 교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많다. 부서장은 객관적 위치에서 업무를 판단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가재는 게 편이라고,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는 행정직들은 최대한 원칙을 지키려 하고 교수들은 편의성을 앞세우려 하기 때문에 종종 마찰이 생긴다. 교수와 행정직 사이에서만 갈등이 있을 리 없다. 교수와 교수, 행정직과 행정직 사이에서도 치열한 눈치 싸움이 있다. 주먹만 오가지 않을 뿐이지 살벌한 말싸움이 일기도 한다. 공산당이 아니고서야 모두 한 마음 한 뜻일 수는 없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이 갈등 상황을 얼마나 현명하게 대처하느냐가 기술이자 능력이 될 수도 있다. 부서장의 말처럼 일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다만 일에서 사람을 빼는 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과 비슷한 수준의 정신 수양을 요할 것으로 보인다.





keyword
달콤달달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공무원 프로필
팔로워 867
이전 06화’행정‘은 경력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