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회사는 소문과 풍문이 많은 곳이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예외가 아니다. 누구는 이렇다더라, 누구는 저렇다더라 하는 식의 뒷말을 식사자리에서, 술자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나라고 예외는 아닐 터. 피할 수 없는 험담이라면 나에 대한 평판은 이렇게 회자되었으면 한다.
걔, 일은 잘하는데 싸가지는 없어!
정시 출, 퇴근은 자존심이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초과근무는 지양하는 것이 회사를 다니며 지키고 있는 기본 태도이다. 한 때는 야근을 해야만 일을 잘하는 사람인 것처럼 인정받는 분위기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리한 야근은 몸의 피로를 누적시켜 결과적으로 정상 근무시간의 업무의 효율을 낮춘다. 근무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초과근무를 하지 않기 위한 나만의 노하우는 단순하다. 첫 번째는 근무시간에 자리를 이탈하지 않을 것(때로는 담배를 태우기 위해 자리를 이탈하는 직원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어쩐지 공식적으로 쉬는 시간을 인정받는 것처럼 느껴진달까.), 두 번째는 관련 지침은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숙지할 것. 필사적으로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 나를 향해 가끔씩은 '일이 없으니 그렇지.' 하고 낮잡아 보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은 절대로 같은 시간 안에 나와 같은 양의 일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들이 뒤에서 나, 또는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그 시간 동안에도 나는 묵묵히 일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승진보다는 내 만족을 위해서 일한다.
일 욕심과 승진 욕심은 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전에 썼던 <현실과 이상의 갭(gab)차이>라는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일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승진에만 욕심이 있는 경우에 비극이 시작된다. 사내 정치가 시작되고, 윗선에 줄을 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며 그들의 사탕발림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나에게 승진이란 '여우의 신포도' 같은 것이다. 서른둘에 그것도 9급 공무원으로 입직을 하였으니 사무관까지 승진해야지 하는 마음은 애당초 없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이니까,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고, 내가 하지 않으면 옆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으니까 한다. 되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그건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함이고, 승진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회사 생활이 조금 편해진다. 나에 대한 뒷말에 너그러워질 수 있고, 회식 자리에 굳이 참석하려 애쓰지 않으며 회식에 빠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권해지는 술을 정중히 거절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승진이 싫다는 얘기는 아니다. 승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는 것일 뿐 적당한 때에 알아서 승진시켜준다면 그저 고마운 일이다.
MZ세대 입니다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요즘 세대'의 '낯선' 성향은 <90년생이 온다>*와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 일조하였고, 어른 세대에게 젊은 세대는 공부를 해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과 다른 사람들이 되게 만들었다. 82년생인 나는 '요즘 것들'의 대표인 MZ세대(1980년대 초~2000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이라고 해설한 자료들을 참고함)의 초입에 걸쳐있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좋은 게 좋은 거다'처럼 뜨뜻미지근한 표현은 좋아하지 않는다. 육아시간**을 사용하는 직원에게 본인은 아기 낳고 3개월도 채 못 쉬고 출근했다며 요즘은 좋은 세상이라고 "라떼는"을 시전 하며 눈치를 주는 동료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아이 한 명 더 나으시라고 농담인 듯 진담을 건넸다. 상대가 같은 직원이 아닌 교수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연말정산을 앞두고 아파서 자리를 비운 담당자를 대신해 전화를 받았다. 기본적인 안내사항이 아닌 구체적이고 세세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여, 담당자가 아니라서 답변이 힘들다고 말했더니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 그 직원 한 명뿐이냐며 끌끌 혀를 차는 것이 아닌가? 들끓는 마음을 차갑게 식힌 후 교수님이 아프다고 해서 다른 교수님이 교수님 수업을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냐며 이해를 바란다고 했더니 그건 그렇다며 자신의 언사가 부적절했음을 시인하였다. 싸움닭이 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자신이 교수라고 해서 타인에게 무례한 사람들에게 무례하다고 말을 할 뿐이다.
내가 바로 그 꼰대라니!
윗사람들에게 때때로 '버르장머리 없는' 아랫사람이었던 나였건만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내가 바로 그 '꼰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최근 경험에 기인한다. 신입 직원이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어렵사리 꺼낸 말 끝에 결국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해요"라는 날 선 답이 돌아왔을 때 알았다, 그는 내 말에서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으며 나의 말은 그저 '꼰대'의 말에 불과해 허공으로 흩어졌다는 것을. 단지 내 기분에 관한 문제였다면 나는 쓴소리 대신 그와 거리를 두면 그만이었다. 그의 힘든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고 힘들다는 이야기에 맞장구 쳐주며 함께 마신 커피 잔의 수만큼은 신뢰가 형성되었다고 판단했다. 주저함 끝에 용기를 내었건만 꼰대가 됨에 있어서 진심이나 의도는 중요하지 않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그의 이기주의를 꼬집은 것인데 그는 자신의 개인주의를 침해받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본인 자리에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아 다른 동료들이 전화를 당겨 받게 하는 것, 간식이나 도시락을 함께 먹는 자리에서 매번 준비와 정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모른 체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겼어야 했던 걸까? 나는 바쁘고 힘드니까 이해해 주겠지, 라는 생각은 이기심이다. 직장에서는 동료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기어이 꼰대라 부른다면 나는 기꺼이 꼰대가 되고자 한다.
사실은 엄청나게 싸가지 있고요, 여려요.
"샘, 뭐 하나만 물어보려고?" 회사에서 내게 걸려오는 대부분의 전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네, 알마든지요!" 웃으며 답한다. 여비 지침이나 계약 관련 법률에 관해 묻고 싶어 졌을 때 상대가 나를 떠올렸다는 것이 기분 좋고 뿌듯하다.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이 중요한 마인드 컨트롤이지만 어쩐지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기분이라면 나를 잘 아는 동료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비로소 두 발을 굳건한 땅 위에 디디고 있는 느낌이 든다. 잘 모르는 부분을 질문해 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찾아보며 능력치가 +1 이 되기 때문이다. 일도 잘하면서 성격까지 좋은 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조직 내에 그런 사람은 흔하지 않다. 일은 잘하지만 대하기에 어려운 사람은 불편하고, 일에 대한 평가는 배재된 채 무작정 좋은 사람이라는 말도 듣고 싶은 나는 아니다.(일도 못하면서 성격도 안 좋다는 말은 최악이다.) 내가 다다를 수 최선은 일은 잘하는데 할 말은 하는 사람 정도가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엄청나게 싸가지가 있는 데다 속은 여린 사람이니까.
*<90년생이 온다>, 임홍택, 웨일북, 2018
**육아시간: 만 5세 이하(생후 72개월 이전까지)의 자녀를 가진 공무원은 24개월의 범위에서 1일 2시간의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절규> 뭉크,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