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세요?

증명사진

by 아이리스 H

얼마만인가?


주민등록증을 어림잡아 30년~ 넘게 지니고 다녔다. 운전면허증과 여권이 있으니 주민등록증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동사무소가 주민센터로 이름이 바뀐 지 좀 되었다. 볼일이 있어 갔다가 직원의 권유로 주민등록증을 갱신하기로 했다.


너무 오래되어 주민등록증 사진 속 내 모습은 희미해져 나도 나에게 물을 정도이다.

"누구세요?"간혹 깜짝 놀란다.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며칠 전 사진을 찍으러 오랜만에 사진관에 가게 되었다. 나를 증명하는 사진, 전보다 사진이 커졌다. 여권사진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갱신하려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던 주민등록증을 지갑에 넣고 다른 날보다 머리도 화장도 꼼꼼하게 신경 썼다. 바르고 두드리고 다시 바르고 두드려 조금이라도 '나이야 가라' 모드로 섬세한 터치를 했다.


"누구세요?"


립스틱을 바르고 나름 만족한 미소를 날린다. 입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무표정, 웃는 모습을 거울 속 나를 보며 표정을 잡아본다. ㅎㅎ 거울도 나를 보며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어느새 세월이 이리 갔을까?


열정 가득했던 젊은 날, 증명사진이 어느새 텅텅 비어 있을 정도로 세상에 도전장을 내밀며 살았는데... 그녀는 어디로 가고 낯선 아줌마가 곱게 단장하고 피식 웃고 있다.


내가 걸어온 삶의 길목에 나를 증명하기 위한 사진들이 자격 증속에 여러 개 있고, 증명사진은 언제나 내 작은 수첩 속에 한두 개쯤 있었다. 어느새 나의 발자취가 되어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 사진관에 도착하자 앞 손님이 계셨다. 나이 지긋한 노신사 분이다. 양복을 입으셨고 여권을 갱신하러 오셨단다. 흰 머리카락이 세월에 훈장처럼 있다.


"어허! 외국인들에게 잘 보여서 뭐하냐?"며 호탕하게 웃으셨지만 살짝 보정을 마친 사진이 맘에 드셨는지 만족스럽다며 계산을 마치고 나가셨다. 이제 내 차례다. 어젯밤 잠을 설쳤다. 증명사진이 뭐라고?


실제 젊음은 지나갔지만 사진만이라도 젊음을 붙잡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 남아있다. 오늘 같은 날이 또 언제일지 모르니 일단 최대한 잘 찍어주시길 바라며 의자에 앉았다. 조명을 켜지고 잠시 긴장한 나에게 말하신다.


자, 찍습니다!


눈 크게, 턱 살짝 내리고 앞으로 빼란다. 어깨에 힘 빼고 가슴은 활짝 펴고 바르게 그리고 무표정, 살짝 웃고, 활짝 웃고, 몇 장을 찍으시고는 컴퓨터에 바로 연결하시더니 맘에 드는 사진을 고르란다. 생각보다 잘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니트가 환해 보인다. 좀 더 예쁘게 보정을 하신다. 점점 나아 보이지만 난 그만요! 을 외쳤다. 중국 여행 중 여권 검색대에 걸렸었다. 대충 화장하고 머리 지끄덩 묶고 귀국하다가 예쁘게 머리 풀고 찍은 여권사진과 내가 다르다는 것이다. "후아유?"


내가 아닌 듯 예쁜 사진 말고 넘 생얼에 리얼한 사진도 아닌 그저 조금 보정하고도 내 모습과 비슷한 사진이면 된다. 서비스로 손바닥만 한 사진도 주셨다. 10분 완성이었는데 20분 후 완성되었다. 여권사진용으로 바뀐 주민등록 사진 겸용은 2만 원이다.




주민등록증 갱신!


손때 묻었던 주민등록증을 반납했다. 전화번호를 적고 따끈따끈 한 증명사진을 내밀었다. 어찌나 기분이 새롭던지? 잠시 후 스캔을 뜨고 사진을 돌려받았다. 보라색 니트 입기를 참 잘했다. 훨씬 밝아 보인다.


오래된 주민등록증엔 검은색을 입고 있었다. 늘 주민등록증을 볼 때마다 살짝 어두웠었다. 2주가 걸린단다. 긴 시간 함께했던 주민등록증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새 주민등록증을 기다리는 마음이 벌써 설렌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지만 예전 같은 기분은 아니다. 코 시국으로 모두가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올해는 남편과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이 또한 추억이 될듯하다. 분주하고 바빴던 크리스마스가 이제는 서로에게 휴가처럼 편안해졌다.


증명사진을 바라보며 또 얼마의 시간이 흘러 찍게 될지... "누구세요?" 묻지 않도록 겉모습과 속마음을 잘 관리하는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내 지갑 속에 새 주민등록증을 넣고 당당히 사는 날까지 파이팅!!


크리스마스라고 서울에서 아들이 내려왔다.

선물은? 계좌이체 ~~메리크리스마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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