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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아이리스 h
Mar 16. 2022
상담하러 갔다가?
당황했다.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내 마음에도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6년의 해외살이에 대한 후회와 애씀이
남편의 병으로 이어져 상실감이 컸다.
나 괜찮아~ 난 씩씩해~
애써 나를 포장하며 눈물을 참았다.
다행스럽게 큰 병은 아니었지만
남편은 병원 치료 후
마음에 불안증이 생겼다.
원래 건강염려증이 조금 있었지만
그런가 보다... 넘겼다.
심장에 응급처치약을 처방받아
안주머니에 품고 다니게 될 줄이야~
얼마나 놀랬으면 저럴까?
분명 의사 선생님은 혈관 하나가 막혔고,
두개의 혈관이 튼튼하게 버티고 닜으니
심장은 괜찮다고 이제 괜찮다고 했는데...
남편은 여전히 불안해한다.
바람에게 나를 맡겨봐~~
괜찮아질 거야~
지금은 쉬어가라는 신의 뜻이야
나는 무작정 그렇게 말해주었다.
한국 온 지 한 달이 되었다.
하노이로 돌아가야 하는데...
남편은 잠시도 나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어딜 가도 함께 가려하고
가까운 곳을 다녀오려 해도
함께 가길 원한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병원 진료도 보호자로
나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슈퍼를 가도, 약국을 가도
어디든 함께 가려한다.
음식쓰레기를 버릴 때도,
재활용을 버릴 때도
동네 한 바퀴 운동을 가도 함께라니...
사랑인지? 집착인지? 불안감 인지?
남편이 다른 사람인 듯 어색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환자니 돌봐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남편의 이상한 행동도 이해했다.
하루하루 땀내며 열심히 살았던 날들
바쁘고 힘겹게 살아왔던 날들
누구보다 씩씩하게 날 보호해주었고
가족을 지켜주었던 남편이... 약해졌다.
어린아이의 퇴행 현상, 분리불안 증세와
혹시나 죽음에 대한 생각과
살고 싶다는 강박증? 마음 한구석이
휑~ 한 느낌이다. 난 남편에게
상담을 통해 마음을 치유받기를 권했다.
2022년 3월 14일 오후 12시 30분~
5년 전,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 하노이 가시던 부부를 만났다.
그 후 한국에 올 때마다 인연의 끈을
근근이 이어갔다.
나의 글
(하늘이 맺어준 인연) 속에
언니가 있다.
시인이며 상담학 박사로
늦게까지 공부를 하신 언니의 열정과
삶을 응원하며 나도 글을 쓰게 되었다.
이런 우연의 일들을 나누고자
난 삶의 에세이를 쓴다.
미리 선약을 잡았고
남편의 컨디션을 살폈다.
날씨가 잔뜩 흐리더니 봄비가 왔다.
우리는 딸기와 청포도를 사고 가래떡도
사서 차에 싣고 언니가 살고 있는
전원주택으로 달려갔다.
언니는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기며
" 어서 오세요. 여기까지 잘 왔군요"
남편과 초면 인사를 가볍게 나누었다.
왈왈 짖어대던 강아지도 손님맞이를
거하게 하더니 멈추었다.
먹이를 주며 이름을 불러주었더니...
금세 조용해졌다.
나와 남편이 함께 간다고 했더니
언니와 형부도 스케줄을 조정하셨단다.
잡채랑 된장찌개를 맛나게 끓여두고
아침도 건너뛴 채 기다렸다고 했다.
에구야~ 이런 회까지 준비해 놓았다.
어찌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봄비 오는 창밖을 보며
맛있게 점심식사를 했다.
입맛 없다던 남편은
어느새 밥 한 공기를 싹 비웠다.
정성스러운 밥 한 끼와 맛난 요리로
남편은 이미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소파로 가서 차 한잔을 하는 동안
언니와 식탁을 정돈하고 설거지를 했다.
어허~~ 틀어놓은 올드 팝송을 듣다가
소파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럴 수가...
상담을 하기로 했는데...
많이 당황스러웠다.
해 뜨는 집, 추억의 올드 팝송은
남편의 취향저격했다지만
남편의 이런 모습 처음이다.
노련한 언니는
" 그냥 두어라 잠시 쉬어가게... "
왔다 갔다 하던 강아지도
식탁 밑에 조용히 앉아있다.
둘이서 다시 식탁에 앉아
소곤소곤 내 삶을 풀어냈다.
환자보다 보호자의 심경고백이랄까?
학창 시절 내가 좋아했던 올드 팝송이
배경음악이 되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힐링을 받았다.
남편은 한동안 낮잠을 잤다.
이럴 수도 있다. 하하
상담보다 낮잠 이라니...
과일과 차 한잔을 건네며
짧게 상담이 시작되었다.
남편의 말에 고개 끄덕여주며
들어주고, 호응해주며
눈 마주침을 해주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며
마음을 토닥여 주신다.
차분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위로와 조언을 해주신다.
남편은 처음 간 곳에서 잠을 자다니
놀랍다. 본인이 더 놀라운 반응이다.
상담이라기보다 마음의
힐링 그리고 편안함 그리고 봄비에
올드 팝송은 그 어떤 상담보다
남편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것 같다.
다들 그런 시간을 견디어 내는 거다.
마음의 근육을 키워가는 것
애씀과 수고를 후회하기보다는
이제 좀 더 쉬엄쉬엄 그렇게 가라 한다.
잘 먹고 잘 쉬고 건강을 되찾으면
마음은 따라온다며 힘내라고 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
절망 속에 사로잡힌 삶
진퇴양난의 삶
그럼에도 다시 삶의 끈을
부여잡고 가야 하는 인생길
온몸이 흠뻑 땀으로 젖을 만큼
몸을 쓰는 것도
답이 될 수 있다고 권한다.
의욕이 사라진 남편이 해맑게 웃는다.
해외살이로 떨어져 지낸 만큼
이제부터는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한다.
불안함을 떨쳐버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언제든 오라고
그런데 참 신기하다. 상담 후,
귀찮고 힘들게 느껴졌던 일들이
행복함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남편도 나도 좀 괜찮아졌다.
상담하러 갔다가
남편은 낮잠을 자다 왔고
난 수다만 떨다 왔는데...속이 편안하다.
남편을 바꾸려 했던 내가 변했다. 하하하
상담은 내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그때 마음의 근육을
잡아줄 누군가가 곁에 있음은 행복이다.
지금 많이 힘들다면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를 보듬어 안아준
언니와 형부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좋은 날 또 뵙기를 바란다.
비가 오는 창가 3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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