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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Jul 11. 2022

폭우가 내리던날 추억속으로...

외박 합리화 ?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그녀가 다가왔다.


향긋한 꽃향기가 내 코에 전해졌다. 예쁜 눈매에 날씬한 몸매 그리고 환한 웃음을 띤 그녀는 나에게 이름과 전화번호 집주소를 상세히 적어주었다. 그렇게 그녀와 나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미씨족 (아이를 낳고도 여전히 미스 같은 외모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여자)이다.


하노이 여성합창단에서 그녀를 만났다. 함께 노래도 부르고 점심식사도 하며 조금씩 가까워졌다.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외모는 새침떼기 도시녀 같지만 국밥을 좋아하고 집밥을 해먹는 주부9단이었다.


 그녀에게는두 명의 이란성쌍둥이 (남,남)아들이 있음을 알았고, 국어와 글쓰기 수업이 필요함을 원했기에 4년전 그녀의 집으로 상담을 하러 갔다. 집안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공부방에 가보니 귀여운 쌍둥이들이 인사를 했다.


사실 저학년 수업이 더 어려웠기에 수업 가능 여부를 테스트했고 둥이들은 바로 합격이었다. 책을 읽을 수 있고(읽기)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말하기, 듣기) 글쓰기가 좀 부족했기에 수업이 꼭 필요했다. 해외에 나와보니 아무래도 국어영역이 많이 부족하다.


창의적인 글쓰기 수업을 위한 소수정예 수업은 유별 나게 5명으로 제한을 하여 제자를 삼았다. 그런데 갑자기 쌍둥이 2명이 들어오면서 내 생각이 사실 살짝 흔들렸고 경험해보지 못한 쌍둥이들 수업이 조금 신경 쓰였다. 그러나 그녀의 첫인상과 마인드가 맘에 들었기에 일단 수업을 진행시키기로 했다.


I 'm special 나는 특별해!


그녀의 카톡 프로필 명이다. 정말 특별하다. 이름이나 예명을 쓰지않고 프로필 명이라니... 그녀가 궁금했다. 그녀가 낳은 쌍둥이를 수업하게 된 나도 은근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된 듯 다. 그녀는 늘 수업 시작 전 특별한 차를 대접하곤 했다. 커피 대신 허브티를  과일차를 몸에 좋은 것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방과 후 교육을 하다 보니 그녀는 둥이들을 위한 간식을 손수 만들거나 신경 써서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나도 유기농 간식을 함께 먹으며 화기애애하게 수업을 하게 되었고, 수업시간이 오버되는 날이 많았다. 수업시간표를 조절해야만 할 정도였다.


많이 웃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먹고 , 많이 놀고 조금 배우며 나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여린 몸매에서 두 명의 아이를 출산하고 이만큼 키우기까지 두배의 공들임이 보였다. 알고 보니 그녀도한국에서는 교육사업을 해왔던 터라 내 마음을 언제나  이해하고

읽어주었다.


그녀는 특별했고 둥이들도 특별했다. 덩달아 나도 특별해진 듯했다. 평범함보다 특별함에 끌렸다.


"언니, 저희 하노이 떠나요~"


베트남 하노이의 랜드마크 72층 경남 아파트 그곳엔 한국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월세가 가장 비싼 곳이다. 그녀와 둥이들이 살고 있는곳이다.


칼리다스, 인터콘티넨탈 호텔 , 스타벅스, 엔젤리너스, 제주 쉬멍 , 롯데리아 , 피자 포피스,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등 한국식당들이 포진되어있고, 미술학원, 수학학원, 영어학원 등.. 한국의 강남 같은 교육열이

이곳 하노이에도 있다.


이곳은 매번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물이 차면 오고 가는 길이 물로 잠기는 기이한 현상에 놀라곤 한다. 거짓말 같은 풍경사진이 단톡방에 오르기도 했었다. 오토바이가 떠다니고 보트를 탄 사람들이 노를 젓기도 했었다. 이슈가 되었던 경남 (깽남 :벳남어)이다.


6년 차 살다 보니 소나기나 폭우가 내리는 날엔 이곳을 피해 부지런히 집으로 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음 꼼짝없이  발이 묶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들의 이삿짐이 들어오고 짐 정리를 겨우 하고 있던 날 전화가 왔다. " 언니, 저희 하노이 떠나기 전 얼굴 봐야죠~" 그렇게 갑자기 번개팅이 잡혔다.


하노이를  떠나는 그녀 만나기 위해 나갔다가 난 그날 폭우를 만나 이재민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둥이가 사는집으로 피신했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들은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키도 쩍 컸지만 눈빛은 예전과 같았다. 한국에서 1년쯤 있다가 왔는데도 어제 만난 듯 허물이 없다.


"선생님, 집에 못 가요 ~어떡해요??"


폭우로 물에 잠긴 모습을 실제로 보긴 처음이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소식을 접했는데 이럴 수가... 굵은 빗방울을 창문을 통해 보는데 무서울 정도였다. 길이 막혀서 주차장이 된 지 3시간 만에 그것도 조금씩 움직임이 있었다. 10분 거리에 우리 집에 갈 수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실시간 둥이들은 소파에 앉아있는 나에게 기자가 되어 보고를 한다. "선생님 비와서 정말 못가요ㅎㅎ 자고 가야해요" "니들 슈퍼맨 망토 없냐?" " 없어요, 어떡해요?" "슈퍼맨 망토도 다 젖겠다 그렇지?" 하하하 호호호 폭풍우속에서 웃을수 있는 여유라니

그녀는 나에게 골프방송을 틀어주고는 주방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호박죽)


잠시 후

혹시나 갈 수가 으려나? 창밖을 연신 내려다 본다. 비는 조금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꽉 막힌 도로... 밤은

깊어가고 이젠 진짜 포기다.

하노이 물에 잠긴 경남(밤)

그녀는 나에게 편한 원피스를 가지고 나왔다. 난 그녀의 옷을 빌려 입고  "애들아~ 엄마가 바뀌었다. 우리 신나게 놀아볼까?ㅎㅎ 엄마옷을 빌려 입은 내모습이 신기한듯 둥이들은 웃었다. "우리 책이라도 읽을까?어때?"

다음날 아침 풍경

오늘의 미션은 해리포터 원서를 읽는 게 숙제였다. 둥이들 방 침대에 난 누웠다. ㅎㅎ 둘이서 책을 들고 와 쫑알쫑알 해리포터 이야기를 해준다. 다 아는 내용이지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부쩍 자라서 한글 동화책처럼 원서를 읽어 주는데  마음이 흐믓 했다.


순수하고 맑게 조금은 더디지만  자라준 둥이들 모습에 행복감이 폭풍우 처럼 쏟아졌다.이런 이런


트로트 가수(임영웅)가 들려주는 노래들...  


미씨족 같았던 그녀의 배려로 나는 소파에 몸을 깊숙이 밀어 넣고 폭풍우 속에서 달달한 미니 오예스를 먹고

복숭아를 먹고 차를 마시며 호사를 누렸다. 쌍둥이 아빠와 나의 남편은 때마침 부재중이었다. 이런 행운의 날에 1박을 하게 되다니... 짐 정리를 하다 말고 가출한 엄마를 찾는 아들전화가 왔었다.


미래를 위한 새로운 계획들을 나누고 자녀들을 키워가며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저 인생의 선배로서 말이 많아졌지만 그녀는 묵묵히 내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함께 먹은 62층 호텔 스카이라운지 그곳의 빙수처럼 달콤했던 하루는 임영웅이 불러주는 바램(원곡:노사연)의 노래가락을 타고 추억이 되었다.

차가운 이별의 빙수다


그녀가 조금만 더 이야기를 나누자며 내 옷깃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짐 정리를 하러 빨리 집으로 돌아 갔을터 하늘이 펑크라도 났는지... 우리에게 하룻밤 잊지못할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다음날 도망치듯 나오려는데... 따끈한 호박죽 한 그릇과 토스트 그리고 사과 비트 차를 식탁에 차려두었다.

폭우 지나 맑은아침 브런치


그녀는 첫인상만큼 이별도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둥이들의 앞날도 그녀의 손에서 멋지고 찬란하게 빛이 날것이다. 지금은 아직 어리고 서툴지만 분명 나의 제자들을 잘 키워낼 그녀를 믿는다. 돌아오는 길 그녀의 미소와 배려가 그저 고마웠노라고 말해주고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디에 있든지 건강하고 밝은 미소로 씩씩하게 잘 살아주길... 그녀를 보내기 아쉽지만 그녀와 함께했던 많은 일들중 합창단을 하며 한국공연을  둥이와 함께  한국의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 나란히 서서 불렀던

그때 그 추억의 곡  이문세의'깊은밤을 날아서~' 노래를 흥얼거리던 밤이었다.


궁전으로 갈수도 있어~~

그들의 가는길을 축복해 주련다.



아이들은 제 마음속 징검다리가 끝난 곳쯤에서 징검다리를 새로 더 놓으며 멀리 아주 멀리까지 가기도 할 것이다.-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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