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9일째다. 두 번째 일요일이다. 시계가 멈추지 않았나 보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화장도 안 하고 무방비 상태의 내 모습이 완전 자유인이다. 여자가 아니다. 남자 셋은 없고 혼자다. 오랜만에 침대 속에서 길어진 늦잠을 자도 깨우는 이도 방해하는 이도 없으니 어색하지만 즐기는 중이다. 햇살이 창문을 통해 눈부시게 깨워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다시 꿀잠을 잘 수 있는 여유라니...
알람이 왔다. 체온을 재서 올리라는 앱이다. 정상인데.. 36도 3. 기침 , 인두통, 발열 없다. 정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마음 상태도 양호하다. 그런데, 외모 상태는 엉망이다. 머리는 이틀째 안 감았고, 세수도 안 했다.깔끔쟁이가 완전 게으름뱅이가 되었다.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고, 나갈 수 도 없다. 자가격리중
헐렁한 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어슬렁거리며 냉장고 문을 연다. 텅 빈 냉장고에서 꽁치 통조림과 묵은 김치를 꺼냈다. 오늘은 꽁치 김치찌개로 아점을 해결했다. 거실벽에 걸려있는 거울 속으로 나를 보니 웃음이 난다. 후아유? 누구세요? ㅎㅎ 옆구리살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두 손을 번쩍 들고 오른쪽, 왼쪽으로 몸을 기울여 본다. 끙끙 몸이 무겁다.
핸드폰으로 신나는 댄스곡을 틀었다. 큰아들의 추천곡 롤린이란 곡이다. 브레이브걸스 인기 차드 1위를 하고 역주행하며 거의 4년의 시간을 거슬러 이제야 핫해진 이유? 애써 말하지 않아도 알듯하다. 쉬운 듯 어려운 동작을 따라 해 본다. 롤린 롤린.. ㅎㅎ 그러다가 내 맘대로 춤을 춘다. 어깨춤도 추고, 엉덩이도 흔들어보고, 좌우로 신나게... 하늘도 찔러보고 땅도 ㅎㅎ허우적허우적 이러다가 상담이 필요한 건 아닐까? 이 정도에서 땀을 내고 멈췄다. 기분도 마음도 좋아졌다.
이제 슬슬 양치하고 머리를 감고 오래간만에 머리손질이나 해볼까?
베트남 하노이엔 작은 연못에 물고기가 있고, 하얀 꽃길이 있던 아파트 상가 1층에 벳남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헤어숍이 있다. 그곳은 베트남에서 내가 세 번째 이사를 했던 곳이다. 남편의 사업 확장을 돕고자 50평대 집에서 28평대 집으로 좁혀 이사를 했었다. 시내에서 15분~20분 떨어진 아파트였다. 조용하고 살기 좋았다. 방 2개, 화장실 2개, 거실 겸 주방이 있고 별도의 세탁실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거의 살지 않는 새 아파트였다.
안전문제와 언어소통이 되지 않아 한국인들은 대부분 한인 밀집지역을 선호한다.나도 두려움은 있었지만 월세가 저렴하고 안전도 괜찮고. 엘리베이터도 집 대문도 지문인식 시스템이고 1층 로비에 관리실처럼 안내원들이 비치되어 있고 나름 청결상태도 뛰어났다. 그래서 계약을 하고 살게 되었다.
한국 미용실에서 5년 넘게 기술을 익히고 가위질을 잘하는 벳남 남자 미용사가 있었다. 팔뚝엔 문신도 있지만 나름 선한 눈매에 마른 체구의 미용사는 블랙 옷을 즐겨 입으며 스타일이 세련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일단 집에서 가깝고 언제든 머리손질이 가능하고 깨끗했다. 의자는 네 개뿐이고 머리 감는 의자는 2개뿐.. 군더더기 없는 작은 미용실이다.
기분전환엔 역시 머리 손질이다. 시원하게 샴푸질을 하고 코코넛 오일 마사지에 드라이까지 10만 동(오천 원)이다. 커트는 20만 동(만원) 아깝지 않은 돈이다. 사진을 보여주고" 이렇게 해주세요" 하면 척척 그대로 재현해줄 정도로 실력이 좋은 편이다. 한국 미용실을 이용하는 장단점을 가볍게 소화시킬 정도로 만족스러운 컷과 드라이 다.
보통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머리손질을 한다. 나의 무모함을 탓할지도 모르지만 난 이곳에서 돈을 벌고 살고 있으니 벳남 사람들과 더불어 살며 편견을 버리고 로컬 미용실을 택했다. 어느새 3년째 단골손님이 된 나는 의사소통은 짧지만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한국인에게 친절한 부부의 미용실에서 변신을 한다. 누가 뭐래도...
벳남 부부의 선물
어느 날, 유리병 가득 피어오른 화초를 보며 뷰티풀~뷰티풀(뎁 뎁) 영어와 벳남어를 남발하자 머리 손질이 끝나고 돈을 지불하고 나오려는데 유리병 화초를 선물로 가져가라며 한사코 종이봉투에 담아 준다. 고마운 마음에 땡큐! 땡큐! 머리를 숙이며 받아와 잘 키우고 있다.
미용사 부부에게는 예쁜 딸이 있는데 어느새 8살이다. 가끔 주말에 엄마 아빠의 일터에서 논다. 그림도 그리고 부럭도 만들고 싱싱이 도 타고 그러다가 내가 가면 벳남어로 숫자를 가르쳐 준다 1(못) 2(하이) 3(바) 4(본) 5(남) 6(싸우) 7(버이) 8(땀) 9(찐) 10(무어이)...
더하기 빼기도 제법 한다. 그림도 그려주고 놀아주면 무료한 시간(염색, 파마)이 빠르게 지나간다. 미용실 앞에는 인형 뽑기 기계도 있다. ㅎㅎ 절대 절대 안 잡히는 인형을 가위손 남자 미용사 밍이 아빠는 잘도 뽑는다." 어머나 이뻐라" 인형을 만지작 거리자 선뜻 나에게 두 개나 선물했다. 무슨 말을 못 하겠다. 또 인형도 받았다. 나의 머릿속은 머리스타일이 맘에 들든 안 들든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어느 날엔 빨갛다 못해 새빨간 자두를 담아 주고, 맛난 코코넛 커피도 타 주고, 손님이 아니다. 완전 친척쯤 되는 듯 나에게 이런저런 먹거리며 화초를 주었다. 그런 부부와 나는 정이 듬뿍 들었다.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 나에게 그들은 스스럼없이 다가왔고 나도 그들에게 머리 변신을 맡겼다.
2년쯤 살고 이사를 했지만 난 여전히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변신을 하러 간다. 그런데 언젠가 물이 나오지 않아 허탕을 치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 부부의 선한 눈빛과 마음 씀씀이 그리고 백만 불짜리 미소를 잊지 못해 머리가 길어지면 가고, 새치가 나오면 가고, 펌머가 하고 싶을 때 가고, 그냥 샴푸가 하고 싶을 때 드라이가 필요할 때 시도 때도 없이 자주 그곳에 가서 관리를 받는 벳남 여인이 되어갔다.
아마도 2년이나 살았던 곳에 대한 흔적들을 찾고 타국 속에서 정든 곳을 찾아 자꾸만 나의 발길이 그곳을 향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3년째 나의 헤어 스타일은 벳남 가위손에 맡겼지만 나쁘지 않다. 어디서 머리 하냐고 자꾸 물어본다. ㅎㅎ 안 가르쳐 준다. 나의 아지트라서...
한국에서 친구 3명이 놀러 왔었다.2년전(코로나 퍼지기 한달전)그때 미용실 4개뿐인 의자에 우린 다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며 샴푸와 마사지 그리고 커트와 드라이를 했다.
강남의 유명한 미용실은 예약을 해야 되지만 모나리자 친구 4명은 vip 손님이 되어 미용실을 아예 통째로 사용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국 마담의 굿! 굿! 굿 칭찬을 들으며 엄지 척을 해주는 친구들 덕분에 미용실은 오래간만에 웃음꽃이 피어났었다. 미용사와 사진도 찰칵 찍으며 연예인급 대우를 해주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 라지만 나의 변신은 행복이다. 먼 훗날 벳남을 기억하면 헤어숍을 하던 벳남 부부가
떠오를 것이다. 여전히 나의 스타일은 강남스타일이 아니고 벳남 스타일?
중간머리 레이어드 컷 스타일이다. 혼자만의 시간으로 떡진 머리를 말끔히 감고 고대기로 머리를 만졌다.
기분도 상쾌하고 역시 여자는 머리빨이다. ㅎㅎ 보여줄 사람도 보는 사람도 없지만 대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