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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Apr 27. 2021

골프장에서 딴짓만 하고 왔다.

흐린 날씨 마음만은 맑음 유지!

예약한 날인데 비올 확률 40퍼센트!!


창문을 여니 아침부터 구름 색은 이미 진회색 빛 먹구름이다.

5월부터 베트남은 거의 35도~4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그래서 4월까지 골프장에 나가고 그이 후에는 스크린을 치거나 연습장을 이용한다.

그래서 4월 25일 11시 기막힌 타이밍으로 골프장 가기로 한 달 전부터 약속을 받아 놓았던 날이다.


더운 것보다 비가 오는 게 나을지도... 일단 짐을 꾸려 출발했다. 30분쯤 달렸을까? 반갑지 않은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창문을 노크하더니 와이퍼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급기야 비가 시야를 가리며 내린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눈만 깜박이다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어쩌지? 차를 돌릴까? 집으로 그냥 돌아갈까? 취소할까? 말까?


 저 비를 다 맞고 치는 건 무리야" " 아니야... 그냥 가보자. 구글 앱을 믿어보자고? 40퍼센트..." "그래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근처까지 가보는 걸로.."음~

다시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비 그칠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빗줄기가 더 세차게 내린다. 얼마쯤 갔으려나?


그래도 골프공은 사겠다며 남편은 골프공 파는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비도 오고 기분도 별로다. 난 차 안에 그냥 앉아 있었다. 공파는 아저씨 옆에서 왔다 갔다 하며 해맑게 웃는 꼬마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귀엽다. 


초콜릿을 한주먹 집어 들고 차에서 내렸다. "또이라 응어이 한궉, 라쇼콜라(한국사람이야 초콜릿!) "작은 두 손을 모아 다 편다. "깜 언~깜 언"초롱 초롱한 눈빛으로 머리를 숙여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꼬마의 아빠는 공 값을 지불하자 서비스로 공 한 개를 선물해준다. 주거니 받거니...


새 공보다 저렴하게 공을 파는 곳이다. 해저드나 오비지역의 공들을 수거하여 다시 닦아 판다. 가끔 새 공처럼 괜찮은 공도 고를 수 있다. 비도 오는데 꼬마는 공 파는 아빠 옆에서 하루 종일 심심하고 지루했다가 내가 건넨 초콜릿의 단맛에 즐거울 것이다. 좋은 일을 했으니 분명 하늘도 무심하지 않을 거라며 생뚱맞게 비가 그칠 거야 그렇지? 나눔을 통한 사랑의 힘을 빌어 비를 그치게 하고 싶었다.



1시간 50분을 달려 짱안 골프장에 도착했다. 풍광이 멋지다. 이곳은 처음 와본다.

비는 여전히 내렸지만 우리는 공을 치기로 마음먹었고 이곳에 왔다.  여자탈의실에 가보니 달랑 나 혼자다. 22번 락카 키를 받아 들었다. 오늘도 행운이 함께 하고 있다. 취소하지 않고 오길 잘했다.


골프 장은 들어가는 입구 저편으로 분수대가 있고 비에 젖었지만 연초록빛 잔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실내 인테리어도 나름 괜찮다. 에밀레 종도 있었고 ㅎㅎ 금 두꺼비도 있었고 곳곳을 화초로 잘 꾸며 놓았다. 


아침도 먹지 않고 빗길을 달려오느라 배꼽시계는 밥을 달란다. 뜨끈한 소고기 쌀국수와 뚝배기 김치라면을 시켰다.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호로록 쩝쩝 식당가에도 우리 둘 뿐이다. 이럴 수가... 주말인데....


우리도 취소할걸 그랬나?? 후회를 했지만 이미 허기를 채웠고 비만 오지 않았다면 우아하게 커피 한잔도 마실 수 있을 만큼 여유와 낭만이 있는 비에 젖은 테라스 카페가 아쉬웠다.... 사진 속에 담아본다. 


그러나 어쩌면 황제골프(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치는 골프)를 칠 수 있을 기회라며 따라오는이 없고 앞서 가는 이 없는 우리 둘 만의 라운딩을 상상하며 카트를 타고 1홀로 향해 갔다. 그러나, 우거진 숲 속을 지나 올라가 보니 우리의 상상은 꿈이었다.


대기 중인 빗속의 카트 속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우리의 상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비가 오는 상황에서 비를 맞으며 라운딩이라? 쉽지 않은 선택을 한 사람들... 그 안에 우리도 줄을 섰다. 비는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곰돌이 선수와 빅버드 선수는 파이팅! 을 외치며 골프시합을 시작했다.


 점수가 낮게 나오는 이유는 비 때문이야! 합리화를 시키며 6홀까지 비와 함께 골프를 치고 있었다. 행운의 여신은 비를 조금씩 뿌리더니 드디어 잠시 구름 위로 비를 데려갔다. 이제는 실력 발휘를 해야 한다. 샷도 기분도 너무 좋아졌다. 쌩쌩 날리며 골프공처럼 내 마음도 함께 날아오른다.


쨍쨍 해님보다 보슬보슬 보슬비가 시원했다. 담장을 따라 심어놓은 담쟁이넝쿨도 오랜만이다. 어머나 이뻐라. 핸드폰을 들이대고 찍는다. 빗물 머금은 꽃들도 앙증맞은 풀잎들도 물방울이 맺힌 채 나를 기다린 듯 반갑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닌데... 난 골프를 치러와서 자연과 교감하며 자꾸 딴짓만 한다.

급기야 남편은 담장이 넝쿨을 찍고 있는 나를 버리고  저 멀리 카트 타고 쌩 가버렸다. 다음 홀을 향해 터벅터벅 빗길을 걸어가며 멀어져 가는 카트를 찍고 혼자서 웃는다. ㅎㅎ괜찮다. 

이렇게 이쁜 자연을 보고 어찌 그냥 지나가냐고?? 비를 맞은 꽃들과 담장이 넝쿨이 너무 사랑스럽다.

터덜터덜 걸어서 다음 홀에서 만났다. 남편은 쫌 미안했는지? 굿샷을 외치며 사진을 찍어준다. 

ㅎㅎ 퐁당 해저드에 공을 빠뜨린 남편은 화가 났다. 난 해저드를 쌩 ~~ 지나갔다. 앗싸!! 앗싸!!


남편은 거리 욕심을 부리다가 두 번에 나누어 쳐야 할 곳을 한 번에 날리려다 실수를 하고 나는 또박또박 규칙을 준수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점으로 이기고 지고를 반복한다. 소풍 나온 어린이처럼 아침부터 졸졸 나를 따라온 간식들이 눈치를 보다가 후반홀 기운이 떨어질 때쯤 등장했다. 

유기농 조만한 이쁜이 삶은 계란, 와그작 한입에 베어 물면 육즙이 톡톡 터지는 방울토마토, 입안으로 쏙 던져 넣으면 바사삭 초콜릿을 품은 맛있는 칸쵸, 바스락바스락 부서지는 프링글스 감자스낵 , 골고루 맛이 들어있는 초콜릿 까지... 먹고 나면 나이스 샷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소풍 왔냐고?" 하던 남편은 맛나게 간식을 먹고 힘이 났는지 잘 친다.ㅎㅎ


물먹은 솜처럼 몸도 발도 무겁게 느껴질 때쯤 얼음물 동동 띄운 냉커피나 비타민 한잔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한다. 소강상태였던 비가 또다시 내린다. 2홀 남았다. 부지런히 치고 가야 하는데 딴짓만 하다가 남편과 점수차가 벌어졌다.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실수 샷을 하면 안 된다. 부드럽게 올려 날쌔게 인팩트를 날려야 한다. 빠른 순발력과 판단력으로 몸과 공이 리듬을 타는 3초의 움직임은 골프에서 중요한 타이밍이다. 멀리멀리 그리고 아름답고 멋지게 나이스 샷을 하고 싶다. 내 안에 골프의 신이 함께한다면... 우아! 버디 찬스다~~~

빨간 깃대가 있는 홀컵으로 공을 넣어야 버디다. 그러나 홀컵 근처에서 아쉽게 멈추어 섰다.

후후후후 입으로 불어 본다. 안 들어간다. 그래도 좋다. 눕혀있던 잔디가 다시 일어나고 푹 파인 잔디가 다시 살아나는 곳 골프장 나들이는 즐겁다. 승부는 냉정해야 재미있고 스릴이 있다. 18홀 마무리! 파다. 수고했습니다. 하이파이브!! 초록빛 자연은 눈도 마음도 초록빛이 된다.



빗속에 나란히 날아간 공이 나란히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함께 벙커에 빠지고 모래를 뒤집어쓴 채 누구 공인 지도 모르게 두 개가 들어있다.

해저드를 넘어간다. 굿샷!!

그린에서 다시 만나고 홀컵을 향해 나란히 서있는 공 승부수는 들어가느냐? 마느냐?

공은 오늘도 묘기를 부리며 들쭉날쭉이다.

골프는 인생 속 부부를 많이 닮아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하면 기쁨을 안겨준다. 



호수에 비친 나무들이

그림 속 데칼코마니 같다.

남편과 나란히 골프장을 누비며 멋지게 골프 스윙을 하고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박빙의 승부로 

18홀까지 빗속을 종 힝 무진 달려왔듯이 삶의 굴곡이 없었겠는가?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힘차게 땀나게 살아왔다. 


하지만 곁길로 가서 딴짓을 하는 작은 행복도 꾹꾹 눌러 담아 왔다. 내 마음 행복통장엔 언제나 찾아 쓸 수 있는 행복이 오늘도 입금되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갈까?  말까? 두 개의 마음 중 하나를 택할 때는 늘 긍정의 마음 더하기 용기가 필요하다.  


돌아오는 길, 멈췄던 비가 쏟아졌다. 시원스레 내리는 빗줄기를 타고 노래 한곡이 차 안을 뽀송뽀송하게 울린다. 서울대 트리오 대학가요제 애창곡 '젊은 연인들' 노래다. 우리는' 오래된 연인'되어 듣는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길


저기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길은 험하고 

비바람 거세도 서로를 위하며

눈보라 속에도 손목을 꼭 잡고

따스한 온기를 나누리


이~ 세상 모든 건 내게서 멀어져 가도

언~제까지~나 너만은 내게 남으리~~ 

빗물 머금은 이름 모를 꽃을...


감미로운 노래는 늘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다. 그리고 나의 글 속엔 언제나 노래 같은 삶이 있다.

삶은 노래이고 행복이고 엔도르핀이다. 날씨는 흐리지만 마음만은 맑음을 유지하느라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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