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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Mar 12. 2021

맞짱 뜨는 아내의 맛??

해피바이러스

 오미자차는 다섯 가지 맛이 있다지만 맞짱 뜨는 아내의 맛은 몇 가지일까요??


골프를 배워가며 나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땀을 내며 운동하는 것도 좋아졌고 몸매를 관리해야 골프웨어를 이쁘게 입을 수 있으니 다이어트도 저절로 되었다. 귀찮지만 몸도 마음도 부지런하게 움직이다 보니 잡생각이 없어지고 바빠졌다. 수업도 해야 하고, 골프도 쳐야 하고, 글쓰기도 해야 하니 자투리 시간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갱년기 우울감도 해소되고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골프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남편: 곰돌이 선수 골프 구력 6년 차 보기플레이(90+) 아내: 빅버드 선수 골프 구력 2년 차 백순이(100+)


비가 오고 날씨가 우중충 한 일요일.

이런 날, 집밥만 3번(아침, 점심, 저녁) 먹고 후식 2번(과일)에 간식 3번 (커피)까지 섭취하면서 집콕을 한다면 난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이 올라온다. 나만 그런가?? 한 끼 정도는 패스를 하거나 외식을 한다면 설거지도 줄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데... 말이다.


사춘기보다 무섭다는 갱년기 아니던가?


나의 특별 조치는 점심 먹고 골프 스크린 한게임 치고 저녁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A 코스, 점심을 외식하고 드라이브를 다녀와서 골프 스크린을 친 후 간단히 저녁 대신 야식으로 B코스를 제안했다. 소파에서 엑스레이 라도 찍는지? 이리저리 몸을 회전하며 리모컨을 돌리고 있는 곰돌이 선수는 마지못해 A코스? B코스?  A 코스로 정한 후 겨우 일어났다. 


하노이에는 골프스크린이 제법 많은 편이고 연습장이나 필드 나가기도 쉬운 편이다. 그리고 이 나이에 나가서

놀만한 곳이 별로 없다. 카페 가서 대화를 길게 하지도 못하고 의논할 일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자연을 볼만한 곳도? 갈만한 곳도? 마땅하지 않다. 겨우 한국 티브이 채널 돌려보기, 드라마 몰아보기, 영화보기로 주말을 보내곤 한다.



두둥! 일단 아메리카노로 목을 축이고 좌우로 몸을 푼다. 보통은 스크린에 골프채가 비치되어 있지만 나는 초보라서 그리고 새 채로 바꾼 지 얼마 안 돼서 불편해도 내 채를 들고 다니는 편이다.

번거롭지만 그래야 그나마 공이 잘 맞고 점수도 잘 나오니 말이다. 남편은 아무채나 쳐도 이제 잘 친다.


곰돌이 프로 남편과 빅버드 아마추어 아내의 박빙 골프스크린 대회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먼저 규칙을 정한다. 1. 멀리건은 한 개뿐이다. 2. 퍼터 시 캐디를 사용할 수 있으며 화살표로 좌. 우 맞추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각 홀마다 이기는 사람에게 타당 5만 동(한화 2500원)을 주기로 하고 연습 스윙에 들어갔다.


호시탐탐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곰돌이 남편 선수는 쌩쌩 공을 날리며 미소를 머금었다.

야심차고 예리한 눈빛으로 만만치 않은 아마추어 빅버드 아내 선수도 맞짱 뜰 준비로 두 주먹을 불끈 쥔다.

비어있는 내 바구니


직원이 빨간 돈 바구니를 건넨다. 배시시 웃으며... 승부는 항상 냉정하고 공정한 남편과 아내 선수다.

불꽃 튀는 돈내기 골프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블루티, 나는 레이디티다.



*핸디캡도 잡지 않고 맞짱을 뜨겠다는 빅버드 아내 선수에게 곰돌이 선수의 한마디 " 내가 골프에, 스크린에 바친 시간과 들인 돈이 얼마인데 초보가 까불고 있어~?" 하면서 야무지게 *드라이버 샷을 날린다.' 음메! 기죽어' 하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많이 안 나갔다. 휴~~ 겨뤄볼 만한 첫 홀이다.

 

이제 내 차례다.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백스윙을 한 후 야심 차게 한방!! 멋지게 나이스 샷을 날렸다.

곰돌이 선수  졸았다. 첫 홀 첫 파로 첫 승부는 내가 돈을 땄다. 야호 신난다!!

 

두 번째 홀은 비겼다. 세 번째 홀도 내가 이겼다!..... 그게 행운의 끝이었나 보다 ㅠㅠ 갈수록 *더블보기에 트리플에 양파까지... 정신을 쏙~ 빼놓을 뿐만 아니라 내 지갑 속 큰돈도 나왔다. 갱년기 증세인가? 훅훅 땀도 나고 맥박 오르락내리락 그러나 여기서 질 수는 없다.


 내 돈이 쌓여가는 곰돌이 선수의 빨간 바구니와 텅텅 빈 내 바구니를 보며 한 숨 만 나온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집중 또 집중을 해야 한다'그러나 이미 맞짱 뜨기 골프 내기는 파국을 달리고 있다.


침묵이 길어진다. 내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다. 오르락내리락 붉어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16홀 휴전을 선언하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벌컥벌컥 생수 한 병 다 마시고 화장실로 가서 내 얼굴을 살핀다.


묶어놓은 머리는 반쯤 흐트러져 삐쳐 나왔고 티셔츠는 땀내가 난다. 머리를 쓸어서 다시 가지런히 묶고 

손을 씻고 돌아왔다. 3홀 남았다. 역전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버디를 잡고 말리라!!



하지만  전반홀이 끝났고 오늘따라 *퍼팅도 내리막을 타고 한없이 굴러가고, 오르막을 만나 주춤주춤 홀을 맴돌고 들어가지 않아 점수차는 벌어졌다. 엉망이다. 곰돌이 선수는 보기보다 재빠르고 정신력도 엄청 강한 편이다. 또박또박 실수도 안 하고 잘도 친다. 이게 바로 구력인가 보다...


어느새, 18홀 마지막 *홈 홀이다. 맞짱 뜨는 빅버드 선수 아내의 한마디..

"지금까지 가져 간 돈을 마지막 홀에서 한방에 올인하기로 승부수를 띄운다. 남편도 콜을 외쳤다.

생각보다 액수가 있지만 내가 진다면 지갑을 탈탈 털어야 하고 내가 이긴다면....


비어 있는 바구니를 채울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조심조심 실수 없이 쳐도... 이 길 확률 0 퍼센트!

불꽃 샷을 날린다. 나도 놀라고 남편도 놀란다. 이럴 수가... '어허 잘 치네' 진작 이렇게 쳤어야 했다.

세컨드샷도 예술이다. 나는 *파다. 남편은 *보기다. 내가 이겼다. 억지 부려 이겨놓고 위풍당당 하하하~


기분 좋게 게임비 내고 저녁밥도 사주기로 했다. 그 돈 다 내 돈이 아니던가?ㅎㅎ 

청국장에 돌솥비빔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무료한 일요일 짜릿한 돈맛에 골프를 친다.


남자들이 내기골프를 친다더니 이 맛에 치는가 보다...


곰돌이 선수는 18홀에서 진 것이 못내 아쉬운지.... 골프방송을 틀어놓고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작은 이불을 한 개 덮어 주었다. 초보 빅버드 선수의 매운맛에 당하고, 갱년기 아내의 센 맛에 당하고,...'사느라 고생이 많구려 ' 살아오면서 인생의 싱거운 맛, 짠맛, 단맛, 씁쓸한 맛, 다 맛보고 이제 50대 골프 치고 돈 따먹는 맛을 알았으니 어쩌면 좋을까요?


골프는 그렇게 나의 갱년기와 함께 엔도르핀을 만들어 주었다. 돈 많이 모아서 부자 되려고 애쓰지 않고 노후대책도 별로 세우지 않고 지금을 즐기며 맞짱 뜨는 아내로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며 건강하게 갱년기야 물러가라! 얍! 얍! 얍! 주말을 기다리며 맞짱 뜰 준비로 바쁘다. 나는 이제야 인생의 참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 골프 용어
*버디(Birdie) 한 홀의 규정 타수보다 하나 적은 타수로 홀 인하는 것
*보기(Bogey) 파보다 하나 더 친 타수로 홀 인하는 것.

*보기 플레이어(Bogey player) 

1홀 평균 스코어가 보기로서 오르는 골퍼를 말하며 1라운드 90개 전후의 사람


*더블보기(Double bogey) 어떤 홀에서 파보다 2타 많은 타수
*드라이버(Driver) 최장 거리를 치기 위해 클럽 중 가장 길고 로프트와 페이스를 갖고 있는 우드 1번


*핸디캡(Handicap) 실력이 다른 두 선수가 동등한 조건에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허용 타수.


*파(Par) 티를 출발해 홀을 마치기까지의 정해진 기준 타수. 파3, 파 4, 파 5.
*퍼팅(putting) 그린 위에서 볼을 홀에 넣기 위해 퍼터로 공을 굴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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