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충청도로 내려온 지 20일쯤... 하노이 마담은 뚜벅이의 삶이 되었다. 이럴 줄은 몰랐다. 일 년에 한두 번 탔던 Ktx를 밥 먹듯 자주 타게 될 줄이야~~ 게다가 시외버스까지 섭렵했다. 하노이에는 차도 있고, 기사도 있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엠 어이(일일 파출부)도 있는 마담(극존칭 벳 남에서는)인데... 한국에는 자가용 대신 더 비싼 Ktx와 택시, 전철, 우등 버스가 나의 이동수단이 되고 있다.
어릴 적엔 버스 타면 차멀미도 했고, 기차를 보면 타고 싶었다. 그러나 요즘 노느라 바쁜 스케줄을 소화시켜내느라 서울로, 경기도로, 제주도로 다시 충청도로 공사다망하다. 그러나 난 게으르고 나태했던 그리고 쉽고 편하게 살려했던 삶보다 조금 불편하고 힘들지만 지금의 삶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중이다.
며칠 전, 엄마 김치가 그리워 친정집으로 가는 길. 뚜벅이로 고속버스를 타고 오랜만에 충청도 서산으로 내려갔다. 어릴 적엔 그토록 멀었던 친정집이 한숨 자고 나니 도착했다. 엄마에게 드릴 선물을 가방에 넣고 신이 난 초등학생처럼 버스에 몸을 싣고 젊은나를 셀프칭찬까지 하며 ㅎㅎ 아버지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엄마는 터미널 근처에서 진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나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늦어진 버스 때문에 엄마는 1분 1초가 길게 느껴졌을 듯하다. "엄마, " 언제 불러도 다정한 그 이름 고개를 돌려 반가움에 포옹했다. 길에서 ㅎㅎ 그리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돌솥밥에 12첩 반상이 나오는 집이다. 아버지도 오셨다. 두 분은 딸이 올 때까지 점심을 같이 먹으려고 1시 30분이 넘었음에도 기다려 주셨다.
하노이에 있을 때엔 전화 한 통 10분도 못했는데 한국에 오니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너무 좋아하시며 날 살뜰히 챙겨 주신다. 보청기도 잊지 않고 꼽고 오셔서 두런두런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말씀도 잘하시고, 식사도 잘하신다. 울 엄마는 천생 여자 여자 하신다. 여전히 예쁘고 곱다. 다리도 아팠는데 딸이 온다는 말에 한걸음에 마중 나오셨다. 푸짐한 반찬에 돌솥밥으로 든든한 점심을 먹었다.
아직 딸보다 빠른 아버지가 한걸음에 계산을 하셨다. ㅎㅎ 난 오늘 초등학생이 된 듯 아버지 어머니의 젊음을 되찾아 주고 싶어 참았다." 아버지, 잘 먹었습니다.""엄마 , 시장가자" 야채 사서 김치 담글까?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천천히 시장을 향해 걸으셨다. 내가 어릴 적엔 엄마손을 잡고 시장을 따라갔는데... 이제는 엄마가 어린아이처럼 내 손을 잡고 시장에 가고 있었다.
어느 만큼 가니 도매 야채가게 앞에 싱싱한 알타리가 한 단 3500원이 적혀 있다. 꼼꼼하게 체크하신 후 2단쯤을 골라 놓으시더니.. "조금 더 사고 싶네" 하시며 3단을 더 고르셨다. 무거울 텐데... 오이도 싱싱하다며 10개를 골랐고, 알배추도 3통이나 그 후로도 쪽파와 부츠를 역시나 큰 며느리답게 통이 크다. 그런데... 아뿔싸 배달이 안된다고 한다. 낑낑 들어 택시를 타고 아파트 앞까지 와서 내렸다.
나는 그동안 힘이 없는 게 아니라, 힘을 쓰지 않고 살았나 보다... 어디에서 괴력이 나오는지? 짐 두 개를 번쩍 들고 엘베 앞으로 걸어갔다는... 난 하노이 마담 아니고, 힘센 파출부다. ㅎㅎ 대문을 열어두고 대문 앞 작은 공터에서 돗자리를 깔고 엄마와 나는 쪼그리고 앉아 알타리를 다듬으며 웃는다. 하하하 호호호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서 김치만 먹자며... 앉아서 한동안 파도 다듬고, 알타리와 배추를 썰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아파트 베란다에 수도를 설치하고 우물가처럼 꾸며 놓았다. 워낙 깔끔쟁이 시라 본인이 일을 하셔야 직성이 풀리지만 이제 엄마도 나이가 드시니 힘에 겨운 듯 보였다. 딸이 한다고 해도 한사코 우기시며... 안된다. 난 그저 거들뿐이다. 소금 팍팍 뿌려놓고 쉬는 타임 인가했더니...
아까 시장에서 사 온 싱싱한 낙지로 찜을 하시겠다며 저녁을 준비하셨다. 난 그 옆에서 싱크대 주변을 정리해주는데... "딸, 참외나 먹어"라며 한사코 나를 과일칼과 참외 두 개를 손에 쥐어주고 거실로 밀어 보내고 혼자서 엄마의 손맛 비법도 안 가르쳐 주시고 애쓰신다.
맛난 저녁으로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나는 오붓하게 낙지찜과 밥을 맛나게 먹었다. 소금에 절여진 알타리와 배추 양념을 만들었다. 곱게 간 고춧가루에 잘 말린 빨간 고추를 넣고 믹서에 갈았다. 밥을 조금 넣고 ㅎㅎ
마늘과 양파 그리고 부츠와 파도 쏭쏭... 눈물 찔끔 흘리고 양념은 마무리되었다.
요즘, 마트나 홈쇼핑으로 쉽게 배달되는 김치를 사 먹어도 되는데... 굳이 엄마 김치를 갑자기 먹고 싶다는 딸을 위해 엄마는 땀을 흘리셨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커다란 다라에서 김치는 완성되었다. 나도 오래간만에 김치를 담갔더니 피로가 왔지만 뿌듯했다. 김치 부자가 된듯한 알타리와 배추 그리고 오이김치 세 가지를 비닐백에 넣었다.
"엄마, 얼마큼 드릴 까유?" ㅎㅎ 비닐봉지를 벌리고 기다리는 엄마에게 김치를 내손으로 한 움큼 짚어서 "만원입니다"라며 너스레를 떤다. 엄마는 " 많이 주세요~더더" 추임새를 하며 맞장구를 친다. 하하호호 엄마와 딸은 오랜만에 김치를 담그며 애썼지만 즐겁게 마무리했다. 맞벌이하는 남동생네도 주려고 조금씩 나눠 담았다.
"김치야~ 김치야~ 맛있어져라!"
그다음 날 아침부터 가려던 나는 화장실을 청소해주고 싱크대며 주방 이곳저곳 숨은 때를 제거하다가 늦어졌다. 파출부일이 끝나질 않는다. ㅎㅎ 엄마를 위해 허드렛일을 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점심으로 김치에 고추장,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양푼이에 비벼서 나눠 먹었다. 꿀맛이다. 엄마의 손맛은 살아있다. 아직 맛이 있다. 사랑 한 스푼 추가했나 보다ㅎㅎ
그런데 신나게 담갔던 김치를 배송하는 일이다. 김장봉투까지 대령했다. 꽁꽁 싸고 또 싸고 버스를 태워 가져가야 하기에... 그런데 엄마가 아끼던 새 이불까지 들고 가란다.' 에구야! 그건 아닌데...'하노이 마담은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엄마 말 잘 들는 딸 코스프레다." ㅇㅋ 가져 갈게요" 엄마의 마음엔 여전히 뭔가 딸에게 주고 싶은 것 같았다.
이것이 무엇인고?
밀차에 김치 그리고 보자기 안에 새 이불을 싸서 주셨다. 엄마표 짐 꾸러미에 빵 터졌다. ㅍㅎㅎ
조금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난 이런 게 자랑스럽다. 울 엄마가 너무 사랑스럽지 않은가?
엄마는 운전도 나보다 잘하신다. ㅎㅎ 버스터미널까지 짐을 내려주고 가셨다. 그런데 버스를 타는 순간 또 나타나셨다. 영 못 미더운 초등학생을 보내시듯 바이 바이를 하신다. 버스를 타고 멀어지는 엄마와 아버지를 보니 울컥 눈물이 났다. ㅠㅠ 갱년기... 그래도 난 씩씩하게 김치를 버스 트렁크에 싣고 고속버스 안에서 잠이 들었다. 하노이 마담은 지금 한국에서 잠시 뚜벅이의 삶을 살며 파이팅!! 하고 있다.
행여, 누군가 나를 보면 불쌍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난 잠시 내 어깨에 날개를 단 천사처럼 가벼운 마음과 좋은 생각들로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뚜벅이의 이동수단들을 즐기며 어디든 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엄마랑 함께 담근 김치는 냉장고 안에서 폴폴 익어가고 있다. 사랑의 향기를 뿜어내며...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사랑은 그렇게 조용하고 은밀하게 우리 곁을 지켜주고 있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