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간 에머이.

공간이동

by 아이리스 H

화요일, 화사하게 웃는 날


나만의 아지트를 하나 더 발견했다. 예쁜 카페가 아니다. 그곳은 종이 냄새가 그득한 도서관이다. 인쇄된 책들이 줄을 맞추어 날 반기는 곳, 각자의 번호를 달고 자신을 뽑아 달라고 멋진 책 제목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곳, 손때 묻은 책들과 손이 베일만큼 새책들이 들어오는 곳, 많은 작가와 소설가, 전문가, 여행가, 예술가, 배우, 정치인들, 남녀노소 없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을 쉬는 곳, 그곳은 나의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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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가 되기도 했고, 논문을 쓰러 자주 갔던 곳, 가끔은 벤치에서 계절을 느끼고 혼자만의 시간을 마음껏 누렸던 곳, 서울 광화문 뒷길 정독도서관, 배움을 갈급하게 원했고 모르는 게 산더미처럼 쌓여 갈 때쯤 찾아가던 유일한 나만의 공간 집 근처 돈암동 아리랑 도서관, 요즘은 핸드폰 하나로 검색하면 다되는 세상이라지만 난 여전히 도서관에 가는 에머이다.


충청도 아산으로 이사온지 한 달이 넘어 어느새 잉크도 안 마른 지방 주민이 된 것이 새롭지만 드디어 도서관 출입증을 받아오던 날 자격증이라도 받은 듯 행복했다. 내 지갑에 숨 쉬고 있는 도서관 증을 무료로 받았다.

얼마만의 도서증 이던가? 6년 차 하노이 생활로 한국에 오면 2주만 머물고 하노이를 가야 하는 에머이 신세이다 보니 책을 빌려 읽을 시간도 없이 바쁜 2주를 보내고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길어진 나의 한국살이로 도서증을 만들고 맘껏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니 너무 좋다. 하노이에도 한국인들을 위한 도서관이 준비되어있다. 개인회원은 1년에 30만 동(한화 15000원)을 내고 책을 빌릴 수 있는데 3권이다. 기간은 2주다. 한국은 무려 10권의 책을 2주 동안 빌릴 수 있고 무료이다. 게다가 신간까지 볼 수도 있어 혜택이 너무 맘에 든다.



걸으면 보이는 자연이 나를 멈추게 한다.


차 타고 갔던 도서관을 오늘은 천천히 걸어서 갔다. 길옆 작은 텃밭에 보라색 가지 꽃과 가지가 귀엽게 웃고 있다. 울타리에도 붉은 장미도 보이고, 소꿉놀이할 때 계란부침이라며 따서 놀았던 이름 모를 풀꽃들이 줄지어 있다.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 작은 화분에 색색의 꽃들도 손짓한다. 걷고 또 걷고 소나무 숲도 지나갔다. 보랏빛 꽃을 찍었다 라일락은 아닌데... 예쁘다. 검색해보니 이름이 푸루 테스켄스? ㅎㅎ미국 등나무로 나왔다.

KakaoTalk_20210630_081008380.jpg 계란꽃, 푸루 테스켄스 등나무, 나팔꽃, 해바라기


꽃길을 지나 이제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내린다. 고지가 보인다. 그런데 맞은편 쪽에 "여기까지 잘 왔구나!" 해바라기 꽃들이 환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길을 건너갔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ㅎㅎ 언제 도착할지 나도 모른다. 이런 여유가 생기다니 놀랍다 ㅎㅎ드디어 도서관 앞 도착이다. 초록 잔디밭에

조형물들이 몇 개 있다. 난 갑자기 골프장이 떠올랐다. 초록 잔디를 보니 심쿵했다.


쾌적하고 깨끗하다. 평일엔 사람도 적고 코로나로 엄격하게 전화번호 인증과 열체크(걸어왔더니 36.5도) 손소독제를 써야 하지만 그래도 갈 만한 곳이다. 친구들과 수다 떨며 노는 시간도 필요하고, 가끔 골프스크린도 가야 하고, 예쁜 카페에서 차 한잔도 마셔야 하고, 여행도 좋다지만 난 여전히 책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부자가 된 듯 기분이 좋다.


외모도 중요한 시대지만 내면의 아름다움과 교양을 갖는 일을 게을리하고 싶지 않다.


시인이 되거나 작가가 되는 일은 그저 나같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전혀 꿈도 꾸지 않았지만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은 좀 부담되고 글을 쓰면서도 나만의 신변잡기를 누가 관심이나 있을까? 우려했다. 하지만 보통의 삶을 살아내며 글을 쓰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공감해주고 라이킷을 해주시는 작가님들의 응원에 힘입어 여기까지 와있다. 구독자가 늘면서 나름 조회수도 신경 쓰이긴 했다.


매거진으로 묶고 브런치 북으로 묶어내야 하는데 아직 나의 서툰 글들을 모아도 부족함이 너무 많아 망설이고 있다. 이런저런 삶이 이야기를 그때그때 감이 오는 대로 무작정 썼기에 더 그럴 수도 있다. 한 방향으로 집필을 해야 하는데 성격상 아니 초보라 그저 붓가는 대로 써버린 나의 글을 뭐라 제목으로 달아야 할지 모르겠다.


하여튼 분명하고 명확한 생각들을 책으로 낸 사람들을 우러러보며 여전히 소심하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도서관 에서의 삶을 즐거워하고 있다. 그리고 2층 도서관 구석에 맘에 드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에머이다. 사실 에머이는 나이가 어린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벳남어다. 엄마는 메 어이, 언니는 찌 어이, 동생은 에머이... 도서 관에 가면 난 과거 젊은 나를 마주한다. 그래서 에머이라 표현하고 싶다.

KakaoTalk_20210629_184845834.jpg 내가 찜한 자리 ㅎㅎ

과거로 과거로 돌아가 본다.


내 고향 충청도에는 작은 도서관이 언덕 위에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여중. 여고시절 공부하러 도서관에 갔었다. 파일을 직각으로 펴서 가릴 수 있는 구석의 창가 쪽은 나만의 자리였다. 늘 노란 종이 파일로 나의 모습을 티 나지 않게 가려야 마음이 편했다. 그 소녀는 그 구석에서 가끔 졸기도 했고, 쪽지에 외울 것들을 적으며 꿈을 꾸었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소녀는 그렇게 도서관과 친해졌다.


학교 교내 행사로 시 쓰기나 글쓰기 대회에서 우수상도 받았었고 수필이나 글쓰기를 좋아했다. 나의 오래된 일기장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때 매일매일 쓴 일기장을 보니 유치하기 짝이 없다. 몰래 좋아했던 남학생도 있었고 ㅎㅎ 선생님께 혼난이야기부터 칭찬받은 일들이... 기억 속엔 없는데 일기장엔 고스란히 남아있다. 글을 쓴다는 건 이 때문인 듯하다. 기록해두고 써놓았으니 알게 되는 것 소중한 추억 말이다.


그 소녀는 지금 도서관의 구석 자리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선생님이 되어있다. 당분간의 휴가 겸 쉼표는 나의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오늘 오후 비가 온다는 예보는 비껴갔다. 솔솔바람도 좋고 하늘에 구름도 내편이다. 그리고 모처럼 공간 이동한 나는 세 권의 책을 빌려서 나왔다. 라테 한잔의 여유로움으로 6월을 알차게 마무리해본다. 7월엔 더더더 많이 웃기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