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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Dec 13. 2024

행운은 과연 나에게?

한. 베 거리 축제

하노이 거리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유명한 수의 공연도 화려한 댄스팀의

출현도 아이돌들의  재롱도 아니었다.

그럼 뭐예요?

모든 무대공연의  마무리쯤에

이어지는 행운권 추첨이었다.

땀 흘려 버는 자산만 내 것이라 우기며

소신껏 살아왔는데....


뻥튀기, 초코파이를 준다는 말에

솔깃하여 저지른 순간적 충동이었다.

한 장도 아니고 무려 세장을 샀다.

나만 속물인 걸까?

냉장고, 세탁기, 비행기 항공권, 비즈니스 티켓, 호텔숙박권에 골프가방 보스턴빽등...

5천 원 투자하여 행운권이 당첨되면 나에게

주어지는 횡재는 몇 배로 돌아오는 거다.


거리축제 첫날밤 바람이 차다.

패딩조끼를 걸치고 행운권 추첨시간에 맞춰

어슬렁 거리는 하이에나가 되었다.

"큰 거 되내가 나갈게 전화해~"

은근히 행운권에 관심 있는 남편의 말에

나도 몰래 배시시 웃음이 났다. 고개를 끄덕이며

야심 기대에 한발 한발 발걸음이 가볍다.


남편을 꼬셔 두장을 더 샀으니 무려 5장이다.


난 오늘밤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부푼 기대감으로 추운 줄도 몰랐다.

 번호를 부르면 뛰어 올라가야 하니

발 편한 운동화도 신었다. 하하하

김칫국 사발로 들이마시는 중~ (기대)

기분이 참 묘하다. 눈과 입은 하회탈 모드다.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마스크에 모자에

완전 무장을 했다. 주머니 속에 만져지는

행운권이 행여 빠질까? 사뿐사뿐 걷는다.


10장을 샀다며 가방 속에 넣고 조용히 걷는 큰손

언니를 만났다. 아이고~ 경쟁자가 늘었다.

이미 들뜬마음을 숨기기는 글렀다.

옆에서 5장을 부채처럼 펼쳐 들었다.

뒤죽박죽 엉킨 숫자를 잘 배열했다.

행운권

이 밤에 행운권 추첨 이라니...


머리 털나고 이런 짓 처음이다. 그런데 왜?

기분이 좋은 걸까? 정신줄 놓친 듯한 웃음을

머금고 4자리 숫자를  계속 보고 있으니

저절로 외울 정도다.


5 남 8 땀 2 하이 3 바

벳남 통역사는 마이크로 또박또박 외친다.

오호라~~ 뭔가 쫄깃한 이 기분 ~하하하

앞자리가 맞으면 뒷자리가 틀리고 숫자가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다.

당첨된 사람들은 활짝 핀 호박꽃이 되었

당첨 안된 사람들은 지는 꽃이 되어

 한숨소리가 바람에 흩날린다. 아휴~~


행운권 그게 뭐라고?

까만 밤에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뻥튀기만 아니었어도 행운권 안 사는 건데...ㅠㅠ

어느새 마지막 추첨에 희망을 어본다

밤하늘에 불빛만 반짝거린다.

그렇게 바람처럼 사라진 내 행운번호

 내일 또 기회가 있으려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더니...

행운권을 다시 주머니에 넣돌아오는 길

 발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아내를

노심초사 기다리다 아파트 앞까지

내려온 남편을 만났는데 왜? 슬픈 걸까?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보고

밤 10시가 넘었는데... 타박을 한다.


행운권  그거 쉽게 안되네 ㅠ


하하하 로또야 그거 안 되는 사람이

더 많은 거잖아 뭘 바래 ?

춥다 어서 들어가자

필요한 거 내가 사줄게 ~~





다음날


10주년 합창  마무리 공연보다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온 가수 정동하의

열창 보다 떼창 앙코르곡까지 빨리  끝나기를

바라지만 앙코르곡이 쏟아져 시간이 계속 늦어진다.


정동하

뭐가 그리 중한데? 행운권 추첨!


오늘은 축구공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남편과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관심 밖이던 남편이  더 기대하는 눈치다.

어제의 실망으로 오늘은 마음을

내려놓은 상태지만 이거 빠져든다.


다행인 건 그 누구도 말릴 사람이 없다는 거


판단력이 우수한 아들은 한국에 잠시 휴가를

갔고 우리는 아들 몰래 행운권에 당첨되면

얼마나 좋을까?

난 남편의 오래된 골프가방을 바꿔주고 싶었고

그런 기적 같은 일을 한번 써보고 싶었다.


그러나.


밤새도록 귓가에 남아있는 아리비아숫자는

허공 속에 메아리 칠뿐... 호명되지 않았다.

우리가 들고 있는 행운권은 무용지물이...

마지막 추첨이 끝났다.

이 허무함을...

행운권은 과연 나에게 아니 남에게 돌아갔다.

행운은 멀리멀리 도망치듯 달아났다.


이런 기분 처음이야~~


한베 거리축제의 행운권은 그렇게

나를 흥분시키고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행운을 선물했으니 괜찮다.

내 안에 알 수 없는 행복이 찾아왔다.

꿀꿀하고 힘든 시간들이 웃음으로 채워졌다.


내년엔 행운권 진짜 안 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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