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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KIM Nov 29. 2019

'우리'속에 '나' 찾기

이 사회에 대한 생각

동화(同化): 성질, 양식(樣式), 사상 따위가 다르던 것이 서로 같게 됨.


나에게 있어서 '동화'(同化)라는 단어는 '적응'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 혹은 상황에 완전히 동화되었다.'라고 한다면 긍정적인 의미로 그곳에 완전히 적응되었거나 소속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동화(同化)'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부모의 성향과 가족 문화에 동화되고 자신이 사는 마을에 동화되고 나아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동화되고 국가라는 개념 아래 동화되어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 동화(同化)라는 단어가 적응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한다면 항상 우리는 적응하면서 살아왔다고 해도 되겠다. 그리고 동화라는 말의 뜻처럼 우리는 어느덧 우리가 속한 곳에 다른 것들과 서로 같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다 적응했네!'라며 축하 같은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나 또한 그런 말을 듣기 위해,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인간의 본성 때문에 모든 상황에 적응하고 아니 동화되면서 살아갔던 것 같다.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 자신이 살아온 지역과 문화를 제외하고 자신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속한 사회와 우리는 결국에 연결되어 있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평판이 종종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적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필연적으로 어느 곳에 소속이 되어있어야만 하고 완전히 독립된 주체는 현실족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결국 우리는 살면서 동화라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동화의 과정을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며 살아왔다. 우리에게 필수적인 과정이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동화라는 단어 아래에서 나 자신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너무나도 이 사회에 동화되어왔다. 동화가 완료된 우리는 그 소속된 조직 혹은 문화에 맞춰서 생각하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속한 곳의 삶의 방식이 자신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특성과 맞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살아가면서 서서히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없고 '우리' 가운데 '우리' 같은 '나'만 있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마치 자신인 것처럼 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도래하는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자기 자신을   표출하고 특정한 조직에 소속되어 있기보다 자신의 특징들을 나타내는 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그렇게 맞춰 소비하는 세대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나에게 이것은 마치 자신이 속한 조직 내에서 자신의 특별함을 발현하고 싶은 사람의 욕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다름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소심한 사람들도 자신의 특별함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지 그냥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것은 우리의 본능에 충실한 자세라고 말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욕심에서 시작되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사회에서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길이 아닌 '다른'길에 힘써서 가려는 태도 그것 또한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보면 '다름' 우상시되는 사회 가운데 서로 다른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애쓰는 상황에 다다르게   같다. 이전의 기성세대가 '다른' 것을 '틀리다'라고 단정 짓던 것에서 너무나도 억압된 나머지 '다른' 것에 너무 집착하여 '다름'  새로운 흐름이 되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다른 것을 추구한다면 그것 또한 '다르지 않은' 것이 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를  우리는 그것을 다르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특별한 다른 것을  표출하고자 하는 행동들은 이전의 기성세대가 자기 자신보다는 사회 속에 녹아드는 것을 미덕인 것처럼 생각했던 것처럼 다름 속에 갇혀버린 것이 된다.


우리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것은 우리의 '다름' 아닌 자기 스스로이다. '우리'라는 조직 속에서 '' 아는 것과 '다른' 것을 아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특별한 다른 것을 찾기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그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행위이다. 그럴  비로소 '' '우리' 속에서 건강하게 발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흐름 속에서 어느 순간 '' '' 같은 진실된 '우리' 발견하게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성향을 진실되게 표출한 사람들의 집단이  것이며  속에서 결국 '' 건강하게 '우리'라는 집단에 소속되게  것이다. 결국 사람은 같은 집단으로 모이게 되어있다. 다만 조심해야  것은 우리가 집단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특성으로 보여  집단의 특성을 결정짓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어떻게 보면 반드시 위에 언급한 것처럼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럴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형성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특정 집단에 동화되었는  운이 좋게도 너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동화되고 혹은 적응되어  사회 가운데 아무런 의심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우리' 속의 '' 정의하기 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진짜 '' 한번 정의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추천한다.  사회 속에 행복하다는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이 말하는 가치관에 그저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자신의 내면이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진짜 '' 인생이 시작되지 않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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