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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근육 예찬

#3. 데드리프트로 널 세운다

근육시

by 이효경

아침 자명종 소리

너희들을 모조리 불러 낼 시간

시간을 정하고 만나지 않으면

만날 수 없어


그렇게 수 십 년이 흘렀지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이제 너의 이름을 부른다

햄스트링, 바이셉스, 앱도미널, 쇼울더...

대둔근, 복근, 이두근, 삼각근, 승모근...


눈을 감고 사물을 더듬어

꼭꼭 숨은 너의 얼굴을 찾아

피하지방의 두껍게 쌓인 세월의 더께를 걷어내고

크게 이름을 외친다


너는 나에게로 와 살이 된다


햄스트링이 가장 먼저 대답한다

계속 날 불러줘

네가 좋아 데드리프트가 좋아

나는 오래, 여러 번 불리고 싶어


근데 넌 왜 그렇게 뻣뻣한 거니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

아무리 만나도 며칠만 지나면

넌 또, 금세 토라져버리지


불평하지 말아

머리도 쓰지 않으면 녹슬고

입은 매일같이 뭔가를 먹어야 하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관리가 필요해


데드리프트로 널 세운다

판판하게 끌어올린다

가지런히 당긴다

짱짱하게 늘린다


죽을 만큼 힘을 다해

너를 번쩍 들어 올린다

햄스트링의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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