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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근육 예찬

#13. 권태로운 생에 화들짝 불이 붙네

근육 시

by 이효경

새로 시작하기보단

하나씩 뭔가를 그만두는 나이가 맞는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온순한 것 같지만

은근히 고집 센

너희들을 양 손에 모두 데리고


가보지 않은 길을 걸을 용기와

작지만 남아 있는 설레임 한 조각


저녁 귀가 길 어스름한 골목에

일제히 켜진 가로등처럼

권태로운 생에 화들짝 불이 붙네


힘겹게 올라 온 산 중턱에 앉아

익숙한 숨을 골라야 할 때

너희를 이제야 만나

나이테를 지우는 바쁜 나의 손


느리고 벗튕기는 너희들을 데리고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만은


가다가 주저앉을지라도

가다가 뿔뿔이 놓칠지라도


같이 오르고 동행했기에

기억할 거야

끝까지 가지 못해도

사랑할 거야


중년에 만난 듬직한 나의 근육들

내 친구 너희 모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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