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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근육 예찬

#15. 살다 보니 이를 악 무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근육 시

by 이효경

이를 악 물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어려서 친구와 팔씨름하면서?

체력장 800미터 달리기를 가까스로 완주하면서?

철봉에 양 팔을 걸고 매달리기에 도전하면서?

쌍둥이 애 둘을 낳을 때도 이렇게 이를 악 물지는 않았다

살다 보니 이를 악 무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직장 일도 이를 악 물 정도로 힘들지 않다

그저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 많을 뿐

관계도 이를 악 물 정도로 애쓰지 않는다

그럴수록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이를 악 무는 대신 이를 갈고 있다

바이셉스를 단련하다가

너무 힘들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순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비틀어진 이빨과 함께 일그러졌다

삐딱하게 웃고 있는데

그 모습이 투박하고 생경하나 진솔해 보인다

이를 악 물지 않고 이제껏 어떻게 살아왔을까

건성으로 산 것이 아닐까

이를 악 문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유년에 하던 일을 지금 한다고

나이를 거꾸로 먹을 수 없겠지만

이를 악 물지 않는다고

딱히 내가 뭘 하고 있지도 않으니까

이를 악 문 나의 모습을 살갑게 맞이해야지

젊어서 느꼈던 건강한 의욕을 다시 보는 것 같아서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아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는 것 같아서

되지 않을 일도 아직 포기하지 않는 것 같아서

덤벨을 든 바이셉스를 아래 위로 움직이며

어금니가 물릴 때까지 '한 번만 더'라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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