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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Aug 22. 2017

#4.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두 아이를 대학 기숙사에 보내며

지난 이틀간 빛의 속도로 피츠버그와 필라델피아를 찍고 시애틀로 돌아왔습니다. 거긴 왜 갔냐고요? 아이들 대학 기숙사에 다녀왔습니다. 


쌍둥이 인생이 그런가 봅니다. 뭐든 인생의 중대사는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겹치는 일이 잦은지라 (적어도 아직은) 엄마 아빠의 시간을 반씩 갈라서 차지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인생입니다. 




문뜩 킨터가튼에 5살짜리 두 아들을 데리고 등교했던 그 악몽의 첫날이 떠오릅니다. 흥분되고 들떠야 할 그 시간이 제게는 어리석은 미국 초보 엄마의 스타트를 끊은 날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자녀를 처음 학교에 보내 본 지라 이곳 학교생활에 대해 새까맣게 무지했습니다. 초등학교 첫날 학교 교실에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죠. 일찍 이민 온 남편도 초보 부모이긴 마찬가지. 남편은 평소처럼 아침 일찍 비즈니스로 향했고, 워킹맘인 저 혼자서 아이 둘을 양손에 붙잡고 대망의 초등학교 교실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섰지요. 


쌍둥이 아이들은 각각 다른 반을 배정받았습니다. 그건 예상한 바였지만, 몸이 둘이 아니고 딸랑 하나인 엄마 혼자서 똑같이 킨터가튼에 입학하는 아이 둘을 돌볼 수는 없었던 겁니다. 첫날 등교해 보니 조용해야 할 교실 안은 시장 안처럼 북적거렸어요. 엄마 아빠 양손에 매달려 의기양양하게 걸어오는 아이들 뒤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동반해 어린 자녀의 첫 학교 입문을 응원하러 온 경우가 많았죠. 자기 이름표가 붙은 책상에 앉아 사진을 찍고, 옆 짝꿍과 나란히 앉아 다정 샷을 찍고, 선생님과 기념사진도 놓치지 않았죠. 교실 밖에서는 자신의 사물함 앞에서 커다란 책가방을 어깨에 멘 자랑스러운 자녀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자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는 부모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진은커녕 아이 둘을 각기 다른 교실에 떨구고 아이 곁에 있어 주지도 못한 이 무지한 엄마는 그 순간이 얼마나 난감했는지 모릅니다.  


학교 문화에 깜깜했던 엄마 탓에 갑자기 아이들은 낯선 교실에 덩그러니 미아처럼 혼자 앉아 있어야 했으니까요. 아이들의 불안해하던 얼굴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한국 엄마가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이렇게 아이들 가슴에 대못을 박아야 했나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아찔하네요. 


저는 아이를 하나씩 각기 다른 교실에 보내 놓고 안절부절못했습니다. 한 아이를 데리고 교실에 잠깐 있으면서 저 교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다른 아이 생각을 하면 자꾸 문밖으로 시선이 갔고, 아이에게 ‘잠깐만 앉아 있어 엄마 저쪽 교실에 갔다 올게’ 하고 이 교실에서 저 교실로 복도를 가로질러 뛰어다니며 그렇게 아이의 등교 첫날을 보냈습니다. 카메라를 챙겨 갈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아쉽게도 13년 전 그때는 스마트폰에 카메라가 장착되지 않은 그런 암울한 시절이었네요. 




이제 대학생이 되어 아이들이 똑같이 동부로 대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학교가 달라도 가을학기 개강 스케줄이 같은 날 시작해 저들에게 또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옛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물며 기숙사 오픈하는 날도 하필이면 똑같은 날입니다. 남편과 제가 애를 각자 한 명씩 데리고 따로 가야 하나 하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다행히도 둘 중의 한 학교에서 하루 전에 일찍 도착해 시작하는 프리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이 있어 아이를 등록시킬 수 있었고, 간신히 딱 하루의 시간적 여유를 벌었습니다. 


참고로 두 아이 간의 학교 거리는 자동차로 운전해서 쉬지 않고 달려도 약 4시간 반 정도가 걸립니다. 시애틀에서 시작하는 일정도 아닌 데다가, 한 학교에서 모든 일을 마치고 당일 내로 다른 학교로 이동하는 것은 서부에서 동부로 옮겨가던 개기일식 수준의 스피드가 아니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비행기로 이동하는 거라 짐을 바리바리 싸 갈 수도 없어서 쇼핑할 시간도 현지에서 필요했고요. 


궁리 끝에 이렇게 일정을 잡았습니다. 식구 넷이 모두 함께 떠나 먼저 들어가는 아이 학교에 도착해 기숙사 입실을 끝내고, 거기서 하룻밤을 잔 후 아침 일찍 드라이브해서 다른 아이 학교에 도착한다. 


막상 이 일정대로 실행하려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어요. 피츠버그까지는 시애틀에서 가는 비행기 직항노선도 없는지라 근처 클리블랜드 공항에 도착해 렌터카를 해서 피츠버그까지 2시간 달려 입성을 해야 했답니다.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아침 일찍 떨어지는 비행기를 택해 오전 중에 학교에 도착한다는 것이 저희의 목표였죠. 학교에 도착해 기숙사 열쇠를 받고 곧바로 쇼핑을 떠나 기숙사에 필요한 가재도구를 구입했어요. 침대 시트에서 이불, 샴푸에서 비누까지 일일이 구입할 것이 산더미같이 많았습니다. 시간을 벌고자 두 녀석의 쇼핑을 한꺼번에 치르고 그 많은 물품을 차 트렁크에 넣으려니 이 일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쇼핑을 끝내고 기숙사에 짐을 일단 모두 넣어 두고 그제야 허기진 배를 달래고, 북스토어에 들려 기념품을 사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필라델피아로 강행군을 하려고 하니 생각만으로도 에너지가 고갈되더군요. 전날 밤 비행기에서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던지라 식구 넷이 호텔 방에 널브러져 몰려오는 잠만 계속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한 녀석을 기숙사에 부리나케 데려다주고, 나머지 식구 셋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곧바로 길을 떠났고요. 이 대목에서 뜻밖에 남편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쌍둥이 녀석들은 서로 한마디 대화도 없이 그냥 씩 웃으며 미소 짓는 것으로 생애 첫 분리를 맞이하더군요. 저요? 저는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마치 쌍둥이 출산 때 한 녀석을 분만하고서 바로 두 번째 녀석의 분만을 준비하느라 잠시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해산의 기쁨을 딜레이 했어야 했던 그 매정했던 시절처럼요. 쌍둥이 엄마의 인생은 이렇게 각박해야 하는가 봅니다. 


쉬는 시간 합해서 5시간이 넘는 장거리 운전을 끝나고 나서 오후가 돼서야 필라델피아에 드디어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위험한 지역으로 소문난 필라델피아 북쪽에서 시내 쪽으로 내려오면서, 마치 15년 전 뉴욕 할렘가 근처에 살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컬럼비아 대학 재직 중에 125가 할렘이 시작하는 웨스트사이트 쪽에 직원 아파트가 있었거든요. 어쩌다가 125가 할렘가를 지나칠 때면 신호등에 걸려 차를 정지해야 하면 두려움에 가슴이 방망이질 쳤고, 자동차 창문이 잘 잠겨 있는지 달리는 중에도 몇 번씩 확인해야 했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고 애써 딴 곳을 바라보는 척했거든요. 


필라델피아 시내 북쪽 거리는 온갖 쓰레기로 지저분하고 문이 열린 상점보다는 닫힌 상점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필라델피아는 미국 내에서 흑인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남부 흑인들이 오래전부터 정착해서 살기 시작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는 역사를 현재에도 그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 아이 학교가 근접해 있다니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일을 또 다른 일이더군요. 아이에게 학교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안전에 주의하라는 잔소리만 잔뜩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학교 건물이 시작되는 지점부터는 학교 깃발이 마치 무슨 안전 구조 대원의 무엇처럼 구역을 분명하게 구획해 주고 있어서 빨간 깃발만 봐도 마음이 놓였어요. 도심에 있는 학교라서 그런지 세련된 건물과 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많아서 지저분한 주변 동네에 비교해 깔끔하고 매끈한 학교 건물이 돋보이더군요. 멀리 필라델피아 시청사가 정중앙에 배경처럼 펼쳐져서 도심 속 학교라는 운치가 있었습니다.


한번 해 본 경험이 있어서 두 번째 아이의 기숙사에 내려서는 모든 것이 익숙했어요. 카트를 빌리는 것에서부터, 기숙사 내 학생 사감을 만나고, 주변을 돌아보는 것 등등 어제 했던 일들을 그대로 반복했죠. 시간이 남아서 아이와 함께 학교 주위를 좀 더 둘러볼 수 있었고, 기숙사 정리를 하는 것을 도와주고 올 수도 있었습니다. 전날은 아이 방에 짐만 잔뜩 내려놓고 방문에 전신 거울 하나만 딸랑 달아준 게 전부였는데, 오늘은 옷가지까지 모두 정리를 도와주고 나니 마음이 한결 좋긴 합니다. 옆 방의 룸메이트와 인사도 했고요. 


이렇게 아이 둘을 각각의 학교에 내려놓고 남편과 저는 공항으로 직행해 시애틀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텍스트를 치면서 잘 지내고 겨울방학에 보자는 메시지를 남기고 서요. 아이들은 제 갈 길을 찾아 각자의 길로 가고, 저희 부부는 집으로 돌아왔네요. 3살 때 놀이방에 아이를 떼어 놓고 올 때 아이들이 엄마 가지 말라고 울고불고 매달렸었는데, 아이들은 이제 컸다고 낯선 도시에 혼자 남겨졌는데도 울지 않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는 게 부모로서 대견합니다만, 이제는 아이들이 아닌 부모인 저희가 언제 집으로 아이가 돌아올까 간절히 기다리는 시기가 왔나 봅니다.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은 밀당의 연속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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