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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nt kim Jan 19. 2024

그동안 고생했어. 나에게 와주어서 고마워.

나의 영원한 여름이가 왔다.

고양이를 무서워했던 내가!


여름이가 야옹이었던 시절에도 여름이는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사무실 바깥에 내어놓았던 나의 화분에 마음대로 비비며 자기 것이라고 우기기도 하고 나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야옹”거리며 울기도 했었다. 그 당시 나는 사실 고양이를 상당히 무서워했었기 때문에 여름이가 버티고 있던 길목을 나설 수 없어서 엄마에게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작은 고양이에게 왜 그렇게 모질었는지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아가들 재우고 낮잠자는 여름이


나의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무실에 본격적으로 출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여름이는 비로소 야옹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동생은 예전부터 고양이를 좋아했고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지만 내가 격렬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같이 살아가야 하는 ‘동거인’인 신분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처지였다. 차선책으로 길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를 열심히 보살피며 자신의 고양이라고 마음대로 지칭하고 ‘야옹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후 야옹이는 나와도 조금씩, 아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비록 만지지는 못했지만!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과 간식을 주는 것은 허락하였다. 영리한 야옹이는 내가 자기를 무서워하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내가 적응할 수 있을만한 속도로 서서히 다가왔다. 그리고 나도 조심히 마음을 열게 되었다. 다른 고양이는 만지지 못해도 야옹이는 슬쩍 만질 수 있는 정도로 우리 사이는 발전했다.



여름에 만나, ‘여름이’가 된 ‘야옹이’



야옹이라는 이름이 어쩐지 성의 없이 느껴져서, 앞으로 영원히 함께 하기로 마음먹은 뒤에는 이름을 짓는 일에도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아주 열심이었다. 결국! 야옹이와 우리가 만난 계절을 잊지 않고 싶어서 ’여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여름이의 아가들은 내 마음대로 쉽게 지었다. 음식명으로 고양이 이름으로 지으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던데,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아쉬운 작명센스로 탄생한 네 쌍둥이들의 이름! 내가 탄생의 순간을 목격했던 첫째는 배트맨을 닮은 젖소냥이라서 배찌, 태어난 그 순간부터 너무나도 예뻐서 보는 사람마다 예삐라고 불렀던 둘째 냥이 예삐, 지금 보면 호랑이를 닮았는데 그 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라이온킹의 심바를 닮았다고 생각했던 셋째 냥이 심바, 마지막으로 탄생했던 콩처럼 짧은 꼬리가 매력적인, 그리고 코 옆에 작은 점이 포인트이기에 자연스럽게 붙여진 막내냥이 이름 콩이. 이렇게 다섯 마리 야옹이와 함께 하게 되었다.



고구마시절 아기 고양이들, 귀가 생겼다!




여담으로 우리 엄마는 아기 낳는다고 고생했다고 소고기를 넣고 미역국을 끓여다 주었다. 짠 음식을 고양이에게 주면 안 된다는 말에 미역에 있는 짠 소금기도 모조리 빼내고 미역국을 끓였다고 했다. 다행히 여름이는 찹찹 맛있게도 잘 먹어주었다. 손수 미역국까지 끓여 먹여서 그런지 엄마는 아직도 여름이가 제일 예쁘다고 한다.


우리는 앞으로는 고생하지 말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라고 여름이 키에 맞춘 고양이 식탁도 사고 당분간 사무실에서 지내야 하는 여름이와 아기고양이들을 위한 전기방석과 따뜻하고 푹신한 집, 그리고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마련했다. 집안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던 여름이는 내부에서 화장실을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열심히 아가를 돌보다가 잠시 시간을 내어 후다닥 바깥으로 화장실을 다녀왔지만, 어린 아기 고양이들은 배변 훈련을 시켜야 할 때가 되자 솔선수범하여 화장실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기 고양이들은 잠을 자다가도 눈도 뜨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종종 걸어가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무럭무럭 자란 아기 고양이들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매일 사고를 쳤다. 모두 아들내미들이라 그런지 사고 치는 스케일이 정말 남달랐다. 매일 시폰 커튼을 뜯어놓고 심지어 다 같이 매달려서 커튼 봉마저 떨어뜨려놓았다. 사무실에 있는 화병은 모조리 깨버렸으며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서랍 안에 들어가서 필기구를 꺼낼 때마다 튀어나와서 깜짝 선물을 받은 듯 놀라야 했다. 그당시 우리 사무실은 1층에 위치한 데다가 전면 유리로 되어있었기에 고양이들이 사고 치는 모습은 동네주민들에게 모두 생중계되었다. 앞집 사장님께서 고양이들이 또 사고를 쳤으니 사무실에 나와봐야 할 것 같다고 연락이 올 정도였으니! 얼마나 귀여운 존재들인가. 매일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어떤 사고를 쳤을까 두근두근 기대하면서 집을 나섰다.



개구쟁이 묘생 2개월! 젖먹고 그대로 주무시는 중


덕분에 우리는 서먹했던 동네주민들과도 제법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사은품으로 고양이 사료를 받았다며 최고급 사료를 한 포대 가져다주시는 분도 있는가 하면, 고양이들을 돌보아주셔서 고맙다며 익명으로 캔이나 사료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고생한다며 맛있는 음식들도 나누어주시기도 했다. 나쁜 사람들만 가득하다고 생각하며 몸을 사리고 나를 숨기는 데에 급급했는데 고양이를 키우며 좋은 사람들이 나누어주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여름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조용하지만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의 존재를 알 수 있었을까.






너무나도 조그마해 보였던 여름이는 이전에 출산을 3번이나 반복했다고 한다. 나의 눈앞에서 낳은 새끼 고양이들은 4번째 출산으로 낳은 아가들이라고 동네 주민분들께서 오다가다 말씀해 주셨다. 나의 사무실 앞에서 밥을 먹는 고양이들이 모두 여름이가 낳은 새끼들이 자리를 잡은 것이라는 정보도 주셨다. 어쩌면 여름이가 조금 일찍 우리를 찾아왔다면 저기 길가에 있는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강아지처럼 살가운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한다는 것을 아는 여름이가 잘 가르친 뒤에 독립을 시켜서 그런지 동네에서 터를 잡은 고양이들은 길냥이로서 적당히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이의 새끼로 추정되는 녀석 중 하나가 사람에게 아주 살가웠다. 우리가 ‘까망이’라고 불렀던 이 고양이는 처음에는 귀 한쪽이 미심쩍게 다쳐서 우리 사무실 앞에 밥을 먹으러 왔다. 그 뒤 결국 한쪽 귀가 싹둑 잘린 채 우리를 찾아왔다. 순화된 길냥이는 학대의 첫 타깃이 된다. 여름이를 만나기 전에는 길냥이에게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에게도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냥이들의 녹록지 않은 삶과 유기묘들의 최후를 여실히 지켜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여름이도 저런 삶을 살았겠구나.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고생을 덜 했을 텐데’라는 생각도 했다. 여름이의 찢어진 채 아문 혓바닥을 볼 때면 길냥이 시절의 배고픔이 느껴져서 눈물이 난다. 베인 혓바닥에 어쩔 줄 몰라했을 모습에 눈물이 난다. 봉지를 가지고 노는 다른 고양이들을 보면서 애타게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가 봉지에 동동 싸매어서 버렸을 여름이의 아기 야옹이들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생명에게나 치열하다.

고등생물이라 주장한다면 그만한 온정을 베풀기를.



겁이 많은 배찌는 엄마 껌딱지



하지만 여름이와 우리가 만난 타이밍이 조금 더 빨랐다면 나의 네 쌍둥이 고양이들의 탄생은 없었을 것이다. 그 타이밍에 여름이와 함께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다. 여름이의 길생활을 조금 덜 안타까워하기로 했다. 지금의 여름이는 봉지를 가지고 놀아도 놀라지 않고, 보일러가 뜨끈하게 들어오는 바닥에서 배를 까놓고 잠을 잔다. 이제는 사람이 먹는 우유를 먹으면 탈이 나는 줄도 알고 가끔 펫전용 우유를 먹는다. 캔에 들어있는 습식사료와 간식은 여름이 전용 그릇에 정량을 덜어서 먹는다. 비록 선천적으로 눈이 약한 탓에 계절마다 오는 알레르기 반응에 억지로 안약을 넣어야 할 때도 있지만! 안약을 넣은 후에 찾아오는 간식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잘 참고 기다려준다.



길에서 녹록지 않은 삶을 사느라 고생이 많았던 우리 여름이가 제 발로 나에게 걸어와 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우리를 믿고 이불을 덮고 자주어서 고맙다.



이전 01화 프롤로그-26살의 여름, 야옹이는 여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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