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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nt kim Jan 16. 2024

프롤로그-26살의 여름, 야옹이는 여름이가 되었다.

나의 야옹이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길고양이였다.

나의 까만 야옹이


나의 야옹이는 첫 번째 사무실을 얻었던 동네의 터줏대감 암컷 고양이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길냥이였다. 누군가는 까만 털을 포인트로 까만 고양이 ‘네로’라고 불렀고 동네의 할머니들은 나풀나풀 뛰어다니는 ‘나비’로,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쓸모없는 길냥이, 또는 ‘도둑고양이’라고 불렸다. 나는 이런 까만 고양이를 ‘야옹이’라고 불렀다.




야옹이는 길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간식도 얻어먹고 간혹 캔도 얻어먹었다. 나도 고양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사람이 먹는 참치 통조림과 우유를 주었었다. 그것조차 허겁지겁 맛있게 먹어주었던 나의 야옹이었다. 그리고 나의 동생은 “이제 나도 고양이가 생겼다.”라고 말하며 쉬는 날도 없이 새벽부터 찾아가 밥을 주고 보살피기 시작했다. 그런 덕분인지 야옹이는 다른, 동네 주민들보다 우리와 더 친하게 지내며 우리 사무실로 들어와 낮잠을 자고 우리가 퇴근을 할 때 같이 퇴근을 했다.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아 출장을 다녀온 후 밤늦게 사무실로 향했더니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있던 야옹이를 발견했다. 우리가 “야옹아!”라고 외치자 야옹이는 “애옹!”이라고 대답하며 반갑게 반겨주었다. 그리고 자기가 먼저 사무실로 향하면서 따라오라는 듯이 냥냥거리며 뛰어가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사무실 문을 열어주자 우리보다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 사무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는 야옹이를 문득 들여다보니 배가 너무 빵빵했다. 우리가 밥을 너무 많이 주었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임신을 한 것이었다. 내 눈에는 너무 작아 보였던 고양이라서 임신은 생각지 못하였는데. 야옹이 아기들이 태어나면 어떻게 하지? 모두 입양을 보낼 수 있을까? 큰 일이다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태풍주의보가 있어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야옹이는 사무실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 한 번 있어봐라’라고 생각하며 사무실에 두고 문을 잠가둔 채 퇴근을 하였다. 그래도 도저히 신경이 쓰여서 새벽에 비바람을 뚫고 도착해 보니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서 세상모르고 쿨쿨 자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발견하고는 하품을 한번 쩍 하고는 기지개를 쭈욱 켜며 “야옹”하고 울었다. 이제 야옹이는 나의 야옹이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며 편하게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탄생의 경이로움을 한 번이라도 지켜본 적이 있다면
생명 가치의 우위성을 논하거나 그 경중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10월 21일 저녁에 야옹이가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진통이 시작된 것이었다. 저녁 7시 30분 내가 보는 앞에서 첫째 고양이가 ‘에-’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태어났다. 그리고 30분 간격으로 총 4마리의 고양이가 태어났다. 생김새를 보고 막 지은 이름. 첫째 배찌, 둘째 예삐, 셋째 심바, 넷째 콩이. 그리고 엄마 고양이는 이제 야옹이가 아니라 우리가 만났던 여름을 떠오르게 하는 ‘여름’이가 되었다. 고양이를 만지면 알레르기약을 먹어야 했던 내가, 동물을 왜 키우는지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하던 내가, 한 번에 다섯 마리 고양이의 집사가 되었다. 네 쌍둥이 아기 고양이들이 2살 성묘가 되었을 때,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 우리 품으로 무사히 안착한 ‘아리’. 그다음 다시 2년이 지나 캠핑장에서 낙오되어 있던 1주 차 고양이 구조로, 이제는 진짜 막내 고양이가 된 ‘솜솜’이의 합류. 말 그대로 다묘가정! 총 7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네 쌍둥이 고양이 묘생 2개월 차! 맘마 배불리 먹고 통잠 자는 중



고양이와 함께한 순간부터는 나의 모든 순간들은 고양이로 기록된다. 작은 박스하나만 보아도 ‘지난여름에 콩이가 들어가서 터진 박스잖아! 콩이가 저렇게 작았었지.’와 같은 기억이 저절로 떠오른다. 무가치하다고 느껴졌던 희미했던 나의 시간들이 고양이들로 하여금 추억으로 남길만한 기억들이 많아졌다. 내 주변사람들은 고양이들이 복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은 그 반대이다. 여름이가 그 시절에 나에게 찾아와 주어서, 차가웠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7마리 고양이는 나의 기댈 구석이자,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온실이 되었다.


나의 온실,
따사로운 나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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