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작은 틈.
드라마 <괴이>는 저주에 걸린 불상의 눈을 보게 되는 사람들이 일종의 '악귀'에 빙의되어 다른 사람을 무참히 죽이게 되는 내용이다. 불상은 눈이 가려진 채로 깊은 땅 속에 묻혀 있었는데, 이것을 알게 된 시장이 불상을 억지로 꺼내 관광 상품으로 만들면서 수많은 사람이 불상과 아이컨택을 하고 만다.
귀신이 눈으로 빙의된다는 설정은 영화 <알포인트>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으레 그러하듯 한국 공포영화의 수작으로 불리는 <알포인트>역시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이야기할 때는 아직도 좀비처럼 사라지지도 않고 거론되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 대한 갖가지 해석이 존재하지만, 알포인트에 간 모두가 죽었는데 눈을 다친 장 병장만 유일하게 살아남았기에 귀신이 눈을 통해 들어온다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공포물보다 오컬트가 무서운 이유는 표면적으로 봤을 때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귀신에 씌었다는 걸 알지 못한 채로 본다면 그저 분노에 휩싸인 사람이 눈이 돌아 옆 사람을 죽이는 모습일 뿐이다.
<알포인트>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쟁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건 결국 한낮 개인일 뿐이다. 상대 국가의 군인에게 개인적인 악감정이 있어 죽이는 군인은 없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건 어떤 체제나 이데올로기, 혹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어나는 것이지만, 실제로 총을 쏘고 칼로 찌르는 건 '한 사람'일 뿐이고, 그 후유증을 감당해내야 하는 것도 오로지 그 한 사람이다.
나는 그게 무서웠다. 진짜 전쟁이 일어난다면, 진짜 악귀에 씐다면, 진짜 좀비가 생긴다면, 진짜 싸이코패스가 나타난다면, 그것을 감당해내야 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 뿐이라는 것.
애초에 드라마상에서 왜 불상에 저주가 깃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 불상을 다시 깨우는 건 인간의 욕심이다. 관광 상품을 개발해서 업적을 한 번 쌓아보겠다는 시장과 그런 시장을 오냐오냐해주는 비서진들의 합작품으로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이 불상의 눈을 처음 보게 된 사람은 그것을 옮기고 씻긴 일용직 노동자인데, 악귀가 씐 순간에 가장 미워하는 사람의 형상과 마주친다. 자신의 아버지였다.
왜 내가 병든 어머니를 보살펴야 하며,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하는 가. 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뿌리 깊은 분노가 결국 터져 나온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내 돈을 갚지 않는 친구, 나를 괴롭히는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된 자들은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기 시작한다.
주인공 수지(신현빈 분)는 자신의 딸을 치어 버린 트럭기사의 형상을 만나게 된다. 내 딸을 죽인 사람. 그러니까 지금 그녀가 가장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 그러다 그 분노는 결국 딸을 제때 데리러 가지 않은 전 남편 기훈(구교환 분)에게로 향하고, 마지막으로 딸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로 향한다. 그야말로 파국인 셈이다.
<손 the guest>의 악귀 역시 사람의 마음을 이용한다. 박일도라고 불리는 지독하고도 끔찍한 귀신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다른 귀신들을 조종한다. 일종의 악귀의 왕인 셈인데, 박일도 귀신의 명령을 받은 쫄병 악귀들은 사람의 몸에 빙의해 다른 사람을 해친다.
드라마에서의 설정은 악귀들이 주로 '마음의 틈'이 있는 사람들에게 빙의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깊은 분노와 스트레스가 있는 사람은 귀신이 더 잘 씐다는 건데, 실제로 매 회차마다 퇴마의식을 받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가슴속에 응어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 아니 잠시만요, 너무 무섭잖아요... 맨날 행복만 가득한 사람이 어딨습니까... 사람이 우울한 면도 있고 그런 거지(식은땀)...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사람의 몸에 들어간 악귀들은, 다시 말해 악귀의 숙주가 된 인간들은 무참히 살인을 저지른다. 자기 가족은 물론이고 그냥 지나가던 죄 없는 사람들도 그 대상이 되니 픽션이라는 걸 알고 봐도 섬뜩할 지경이다.
만약 내가 <괴이> 속의 불상과 하릴없이 눈을 마주치게 된다면, 그 순간 내가 보게 될 분노의 대상은 누구일까. 만약 내가 악귀에 빙의된다면, 악귀가 내게 쉽게 들어오게 한 나의 '마음의 틈'은 무엇일까.
종종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얼마 전 보고 온 뮤지컬이라든지, 금요일 저녁에 먹는 치맥이라든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하는 드라이브라든지, 채 5분도 되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계속 웃게 되는 오랜 친구와의 통화 같은 것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을 필사적으로 찾으며 어떻게든 행복해지려고 노력했었다. 물론 늘 성공한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은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꽤 자주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해결해 줄거라 믿으며 애써 모른 척해왔던 것들. 대표적으로는 아픈 아빠를 챙겨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라든지, 하루하루 매출에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자영업자의 삶이라든지, 아직도 이루지 못한 내 꿈같은 것들.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억지로 지워버리려고 했던 이 모든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에 한층 한층 쌓여 결정적인 순간에 터져버릴까 봐 두려웠다. 굳이 저주받은 불상 같은 것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살면서 누구나 극적인 사건 하나와 마주치게 되는 거라면, 그래서 내가 나조차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내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겁이 많고 잡생각이 많은 아이, 억지로 좋은 말을 찾자면 예술가적인 면모가 아주 조금 있는 아이가 언제나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강인하게 분노의 대상을 이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상하게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고 있었다. 부모님이 싸우는 걸 봤을 때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을 때도, 공모전에 수도 없이 떨어졌을 때도 나는 많이 괴로웠지만, 이상하게 또 다음의 어떤 것을 준비하곤 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성격 중에 가장 싫은 점을 꼽으라면, 쓸데없이 생각이 많다는 것, 그로 인해 어떤 것도 쉽게 도전하지 못한 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성격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아주 사소한 것에도 쉽게 사랑을 느끼고 의미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것이든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는 안 좋은 버릇이 있지만, 그러다가도 작은 계기만 있으면 또 금방 행복 회로를 돌리는 그런 사람이라 이겁니다. 아시겠어요? 왠지... 이상하게 아무것도 되고 있지 않지만, 뭐든 될 것 같은 자신감 같은 게 계속 생긴다고나 할까요. 어이없네...ㅎ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나는 어쩌면 무서워 벌벌 떨면서도 귀신을 꼭 봐야만 속이 시원했던 어린 날의 그 모습 그대로인 게 아닐까. 그렇다면 어린 날의 나와 함께 이제부터라도 마음의 틈을 메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닐까. 어차피 모든 공포를 감내해야 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