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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캐리 Jan 06. 2021

부부의 세계는 창작의 세계다.

미래의 남편 고르기.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커플이 있다. 모든 커플은 그들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스토리를 가졌다고 해서 모두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할 마음이 있다고 결혼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청춘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그런 와중에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는 결혼을 꿈꾸는 커플들을 더욱 사지로 내몰았다. 원래도 결혼이라는 과정은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인간 대 인간의 전투였고, 어찌어찌 조건을 맞춰 남들 눈에 그럴 싸해 보이게 식을 올린다고 해도 당장에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에 나처럼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은 결혼이라는 게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결혼을 포기하는 청춘들이 많아지는 와중에도 때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결혼의 장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안정성이었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는 않아도 확실히 결혼이 사랑의 안정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어린 나이에 결혼한 운동선수들이 인터뷰에서 일찍 결혼하고 안정적인 삶을 꾸린 다음 운동하고 싶었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그런 인터뷰를 볼 때마다 '뭔 거지 같은 말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같은 말이라도 너무 사랑해서 하루라도 빨리 같이 살고 싶어서 일찍 결혼했다고 하면 어디가 덧나나요? 으이구. 말을 참 멋없게도 하네.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건지, 지금도 여전히 결혼의 이유를 사랑이라고 말해주길 바라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어보니 이제는 그 안정감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다. 생판 모르는 사이였던 남과 여는 각자의 속도에 맞게 사랑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 더 이상 어떤 흔들림이 없을 때 결혼을 선택하는 과정을 많이 봐왔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남자가 결혼을 제안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남자의 사랑을 의심하는 여자가 프러포즈를 받아들이는 걸 본 적은 없었다. 두 남녀는 절대 예측할 수 없는 초현실 연애사를 경험하고 결혼이라는 또 다른 시작을 선택한 것이다. 결혼을 약속하는 순간,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귀찮음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내 인생이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안 해봐서 정확히 몰라요. 나는 그런 거 몰라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내가 가장 모르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누구와 결혼하게 될 것인가.'이다. 이 상태로라면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명확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은(대체로 여자들은) 과연 내가 누구와 결혼하게 될지 일찌감치 궁금해한다. 오죽했으면 어렸을 때 들어봤던 공포 괴담 중에, 한밤에 거울을 들고 화장실에 가서 칼을 입에 문채로 뭐라 뭐라 하면 미래의 남편 얼굴이 거울에 나타난다는 보인다는 것도 있었을까. 만약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드라마 속 판타지처럼, 미래를 알 수 있게 된다면, 내가 누구와 결혼할지, 결혼한 후에는 어떤 생활을 하는지 다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또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2020년 초에 돌풍을 일으키며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가 있었다. 지금은 그 이름마저도 강렬하게 느껴지는 <부부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JTBC/ 극본 주현  연출 모완일/ 김희애, 박해준, 한소희 주연)

이 드라마는 2020년에 방영된 드라마 중에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수많은 폐인들을 만들어냈다. 사실 모든 드라마는 첫 회가 제일 중요하다고 배웠고, 나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다. 우연히 시청자가 첫방을 보게 되었다면 내일 같은 시간에 계속 시청자를 TV 앞으로 불러들이는 힘이 있어야 한다. 영화로 치면 처음 2~30분에 관객을 사로잡아야 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그런 점을 염두에 뒀을 때 <부부의 세계>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일단 이 드라마의 1회를 보고 나서 2회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부부의 세계>의 원작 영국 드라마의 제목은 <닥터 포스트>이다. 그냥 성이 '포스트'이며 직업이 의사인 여자의 이야기이기에 그런 것 같은데, 왜 우리가 리메이크할 때 '부부의 세계'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아마도 작가는 진짜 부부 둘만이 알 수 있는, 다른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유형의 '부부의 세계'와 사랑의 이중성, 현실적인 결혼의 의미 등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나 같은 애송이는 드라마를 다 시청해도 알 수 없는 게 '부부의 세계'이지만. 

드라마 속 지선우(김희애 분)는 남편 이태오(박해준 분)가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하고 아들과 갈등이 생기는 이 모든 과정을 알고 있었다면 절대로, 결혼 따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을 거고, 그래서 결혼을 선택했겠지.





드라마 속에서 인상 깊었던 또 다른 부부를 꼽으라면 <미스티>의 부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JTBC/ 극본 제인 연출 모완일/ 김남주, 지진희 주연)

고혜란(김남주 분)과 강태욱(지진희 분)이 보여주는 부부의 모습은 애절하기도 하고 삭막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 역시 그들만의 사랑 방식을 보여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부부의 세계>의 남편, 이태오가 바람을 피고도 뻔뻔하게 '사랑이 죄는 아니'라고 외치는 남편이었다면, <미스티>의 태욱은 '네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널 사랑하니 괜찮아, 날 발판으로 삼고 높이 올라가.'라고 말하는 남편이었다. 물론 그런 헌신적이면서도 맹목적인 사랑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덮어 놓고 사랑만 해도 문제는 항상 생긴다. 그리고 우리는 현실에서 태욱과 같은 남자를 만날 수가 없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어쨌든 결혼이라는 건 서로 열렬히 사랑하지 않아도, 한쪽만 사랑하고 대충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면 가능하기도 한 가보다. 그리고 <미스티>의 부부는 <부부의 세계> 속 부부와는 다르게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안다고 해도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까? 너무나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지만 그래도 서로를 안타깝게 여기는 애틋한 마음이 있으니까. 좀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드라마를 뛰어넘어 현실에서도 두 커플이 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결혼한 주의 신랑은 야구 용품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수수하면서도 다정해 보였다. 주가 뱃살을 잡고 이게 다 살이라며, "이래도 괜찮아?"라고 물었을 때 그는 복스럽다고 괜찮다고 했다. 너무 마른 건 보기 싫다며. 그래요, 그는 정답을 아는 남자였어요. 그래도 살은 좀 집어넣어둬라, 기집애야. 

주는 그와 만난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9년 겨울, 내가 한창 시나리오와 커피에 빠져 있을 때, 주는 지금의 신랑을 만났다. 말이 너무도 잘 통하고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다며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될 것 같다고 했는데, 만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20대 초반부터 일찍 결혼을 하고 싶다던 그녀였고,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남자와 결혼을 생각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이란, 남자 쪽에서 마음을 먹어줘야 실제로 이루어지는 작업인 듯했다. 몇 년을 사귀든, 며칠을 사귀든, 여자 쪽에서 결혼은 언제 하냐고 백날 매달려봤자 남자가 결혼할 마음이 없으면 결혼식장을 알아보는 것조차 불가능한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반면에 여자는 이게 맞나, 싶어도 남자가 적극적으로 결혼을 추진하니 얼레벌레 따라가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예나 지금이나 '내가 책임질게, 나만 믿고 따라와.' 라는 공수표를 여자들은 그대로 믿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주의 남자 친구는 결혼을 원했고, 내 친구는 믿고 따라갔다. 

주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통령의 부인이 될 거라고 했다. 그땐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도 가끔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서 미친년이라고 욕도 많이 했었다. 어찌 되었건 그녀는 그렇게 어렸던 소녀시절부터 결혼을 꼭 할 것이며 남편이 그냥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회사원은 아니고 어린 나이에 자기 사업을 잘 갖춘 남자에게 시집을 간 것을 보니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평생 남는 결혼식 사진이 마스크로 장악된 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주나 신랑이나 인간관계가 좁은 사람들은 아니었음에도 식장 군데군데 빈자리가 많았다. 지방에서 한 결혼식이라 수도권보다 예식장 규제가 심하지 않을 때였는데도 사람들은 많이 모이는 것을 꺼려하는 듯했다. 나 역시 웬만큼만 친한 친구였으면 그냥 축의금만 보내고 말았겠지만, 웬만큼만 친하지는 않은 절친이었기에 꼭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가장 친한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건 참,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느낌이다. 뿌듯하기도 하고 믿기지 않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면서 벅차오르는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녀가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불과 1년 전, 함께 살았던 두 달이 모두 꿈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시나리오 수업을 위해 서울에 올라갔을 때만 해도 그녀는 부천에 살고 있었고, 대리라는 직함을 달고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었다. 그리고 몇 달 만에 그녀는 퇴사를 하고 거주지를 대전으로 옮겼으며, 호적에 부모님이 아닌 다른 남자와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과연, 그녀는 예상하고 있었을까?







또 다른 친구 수는 곧 결혼을 한다. 예식장을 고르자마자 날짜를 정해버리는 건 모든 커플이 비슷했다. 요즘은 식장 잡기가 너무도 치열한 일인 데다가, 코로나로 자꾸 예식이 밀리는 바람에 진짜 1년 전에는 식장을 예약해야 신부 입장이라는 걸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수는 남자 친구와 천일 정도를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의 연애 스토리를 모두 들어온 터라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면서도 신기했다. 몇 년 전에 8년을 만나고 결혼한 보 역시 그랬지만, 오래 만난 커플이라고 다 결혼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들의 결혼 약속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모든 여자가 그렇듯이 수 역시 남자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런저런 것들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는 나에게 진짜 호감이 있는 것이 맞는가, 그는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인가, 그는 전에 어떤 여자를 만났을까, 나와 생활방식은 잘 맞는가, 하는 고민들. 연애 초기에 모든 여자가 하는 그 고민들 말이다. 남자 친구가 성격이 아주 서글서글한 인싸라도 분명 처음에는 왜 저러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을 것인데 이제는 그 모든 혼돈의 카오스를 다 정리하고 결혼을 약속했다. 천일 전 그녀는 과연 알고 있었을까, 이런저런 고민들이 모두 사라지고 천일쯤 뒤에는 같이 예식장을 보러 다닐 거라는 걸.








친한 친구들이 결혼을 할 때마다 도대체 결혼이라는 건 무엇일까 생각했다. 생각을 해도 해도 당최 얼마나 사랑해야, 얼마나 믿음이 있어야, 얼마나 친밀감이 있어야 결혼이라는 걸 선택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라는 게 함정이었다. 그래, 다들 무슨 이유가 있겠지. 주위 사람들에게는 뻔해 보여도 그들에게만큼은 특별한 뭔가가 있겠지.


스토리를 구상할 때, 오래 사귄 커플 이야기를 쓰고 싶거나 부부의 이야기를 쓰고 싶을 때는 종종 망설여지곤 했다. 뭐 아는 게 없는데, 과연 내가 그런 이야기를 써도 되는 걸까? 나 따위가, 나같은 무지랭이가?

다행인 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작가 지망생들이 많이 가입한 한 인터넷 카페에 어느날 이런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로맨스 장르를 쓰려면 꼭 연애 경험이 있어야 하나요?'


연애 경험이 별로 없어 멜로 장르를 쓰기 두려워하는 지망생이 쓴 글이었다. 그리고 이 글에는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주로 글을 쓰는 것은 경험과 별 상관이 없으니 열심히 취재를 하라는 말들이었다.


'미생의 윤태호 작가는 회사 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답니다.'

'저는 몸치인데 액션물을 써요ㅋㅋ'

'사람 죽여보고 스릴러 쓰는 건 아니죠.'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은 섬세한 묘사가 필요한 부분이기에 많은 경험이 있을수록 좋다는 말도 있었다. 모두가 맞는 말이라 결국에는 작가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수밖에는 없어 보였다. 어차피 드라마든 영화든, 쓰는 사람조차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고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당장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했다. 


결혼은 어쩌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글로 써내는 작업이 아닐까. 내 맘대로 상상할 수 있고, 내 맘대로 플롯을 짤 수 있을 것 같지만, 글을 써본 모두가 공감하듯이 내 글이 내 맘대로 써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만든 캐릭터가 말을 왜 이따위로 하는 것이며, 얘는 왜 이렇게 답답하게 행동하는지, 얘는 또 왜 갑자기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인지, 쓰는 사람도 이해할 수 없는 창작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렇지만 인고의 과정을 거쳐 결국엔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 줄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는 것도 결국 작가의 몫이다. 결혼이라는 작품을 선택한 많은 부부는 본인들 스스로 상대의 손을 잡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연애가 끝난 후에 또다시 시작되는 그들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사진 출처는 해당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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