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캐리 Dec 14. 2020

그들은 하는 짓이 예뻤다.

커플 이야기. 


얼굴의 완성은 행동이다. 







'헤완얼' 혹은 '패완얼'이라는 말이 있다. '헤어의 완성은 얼굴이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의 줄임말인데 두 단어 다 무엇을 하든 잘 생기고 예쁜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뭐, 맞는 말이지. 예쁜 애들은 별 그지같이 하고 있어도 예쁘더라고.

살짝 대비되는 의미로 '얼완농'이라는 말도 있다. 이건 대외적으로 알려진 말은 아니고 그냥 나와 내 친구들끼리 사용하는 말인데, '얼굴의 완성은 농구다'의 줄임말이다. 어떤 농구선수가 갑자기 멋있는 플레이를 보여주면 평범한 외모를 가졌더라도 순식간에 잘생겨 보이는 진귀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그럴 때 사용하는 말이다. 역시, 얼굴의 완성은 농구죠. 운동선수는 실력이 얼굴이에요. 

스포츠의 세계는 물론이고, 여러 가지 경우에 우리는 외모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도 지성인으로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대부분의 순간에 사람의 생김새나 외관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관상은 사이언스라고, 진짜 생긴 대로 노는 사람이 있기는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생긴 것과 다르게 노는 사람이 있어서 조금 헷갈린다는 게 문제이기도 했다.







주인공의 외모를 소재로 한 작품도 늘 있었다. 주로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주인공이 뭔가 큰 상처를 받고 각성 아닌 각성을 한 다음에 예뻐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스토리다.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 <여신강림>도 마찬가지이고, 몇 년 전 방영했던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이라는 드라마도 그랬다. <그녀는 예뻤다>라는 드라마도 주인공이 환골탈태하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나의 첫 번째 웹소설 또한 통통한 몸매 때문에 고민인 한 여대생이 예쁘고 날씬한 여자가 키 크고 잘 생긴 남자를 만난다는, 소위 말해 끼리끼리 커플이 된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폭풍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다이어트 성공해서 잘생긴 남자 만나려고. 


못생겼다, 뚱뚱하다의 기준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기에 딱히 정의를 내릴 수는 없고 그냥 개인적인 기준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외모에 대한 개인적인 기준을 가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의 성격까지 정의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뚱뚱한 사람은 게으를 것 같다거나 눈이 쫙 찢어진 사람은 사나울 것 같다거나 하는 식이다. 

나의 경우에도 나도 모르게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좀 어떻게 생겼네, 성격이 어떨 것 같다, 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굉장히 편견이 없는 사람이며, 열린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라 믿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순간에는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내 삶의 슬로건 중 하나가 '솔로천국 커플지옥'이지만 그래도 나의 스터디카페에 가끔 보기 좋은 커플이 오기도 했다. 주로 커플 둘 중 한 사람이라도 공공장소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두 사람 다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라니까요?


따뜻한 물이 필요하다던 한 남자가 있었는데 글쎄, 커피 포트에 물이 끓는 걸 기다리는 동안 카페테리아를 서성거리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지 조각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대박... 내가 쓰레기 그냥 자리에 두고 가버리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자기가 버린 것도 아닌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정말 처음 봤어. 진정으로 이 시대의 바람직한 청년상 아닙니까?

나는 아마도 자격증 시험 같은 걸 준비하고 있을 그 남학생이 아주 잘 생겼을 거라 생각했다. 마스크에 가려서 얼굴이 반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진짜 생김새는 상관없었다. 쓰레기를 줍는 남자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면 과연 무엇이 아름답단말이오. 인생은 끼리끼리라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건 얼마 뒤에 온 그 학생의 여자 친구를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또또, 나만 빼고 다 커플이지). 여학생은 조용히 간식을 까먹고 잘 정리했으며, 어쩌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먼저 아주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 역시 유유상종, 초록동색은 진리예요, 진리. 

나는 덕분에 두 사람이 참 잘 어울리는 청년들이라 생각했다.







또 한 커플의 경우에는 좀 특이한, 아니, 특이했다기 보다도 내게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커플이 있었다. 공부하는 책에 전기산업기사라고 쓰여 있는 걸 보지 못했다면 얼굴이 워낙 어려 보여 고등학생이라고 착각할 만한 얼굴들이었다. 두 사람 다 그랬다. 어찌나 조용하고 조심성들이 많은지 내가 청소를 하려고 몸을 움직이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피하곤 했었다. 나는 속으로 저렇게 소심한 아이들이 사회생활은 제대로 하려나, 하면서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런 걱정도 잠시, 여자 아이가 전화를 하며 성질을 내는 것을 보고 내가 뭔가 단단히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동안 두 사람이 같이 아침 일찍 공부하러 오다가 언젠가부터는 여학생이 먼저 와서 혼자 공부를 하곤 했는데, 여자 친구는 참다참다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어쩌다 화장실에서 통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왜 공부를 하러 오지 않냐는, 왜 아직까지 자고 있느냐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였다. 대충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짜증이 섞인 분노였는데, 그 조용하던 사람이 승깔을 내는 걸 들으니 신기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 되는 거였군. 화날 때 제대로 화내는 거보니까 너 나중에 뭐라도 하겠다, 얘.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느끼게 해 준 또 다른 커플이 있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시간마다 나가서 맞담배를 피고 오길래 뭔가 무서운 아이들(?)인가 싶었다. 솔직히 여자 친구가 소위 말해 조금 세게 생겨서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면 바로 들어주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내게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주로 남자가 말을 거는 편이었고, 여자는 수줍게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스터디카페 안에 아무도 없는 아주 이른 아침에도 굳이 조용히 하겠다고 귓속말로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주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조용하게, 열심히 공부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래, 담배 좀 피우면 어때. 착하면 됐지. 공공장소 예절을 이렇게 잘 지키는데.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도무지 공공예절이 뭔지,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가 뭐 하는 곳인지 알고는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커플도 있었다. 우리 스터디카페는 비교적 자유롭게 공부하는 공간과 반드시 정숙하게 공부하는 공간이 있고 조용히 공부해야 하는 공간은 당연히 타인에 대한 배려가 더욱 필요하다. 내가 기억하는 이 커플의 첫 번째 모습은 이 공간에서 서로를 부둥켜 앉고 엎어져 자는 모습이었다.

아니, 그래... 피곤하면 잘 수도 있는 거 이해합니다. 공부하다 팔 베고 자는 거 많이 해봐서 아는데... 굳이 대놓고 서로 포개져서 잘 필요가 있나요? 담요까지 잘 두르고?

순간 이게 무슨 광경인가 싶어서 책상을 닦는 척하면서 한참을 쳐다봤다. 여기가 모텔은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깨우려다가 내가 움직이는 소리에 자세를 고쳐 잡는 그들을 보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겠지.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였다. 옷을 옆자리에 막 펼쳐두는 거며, 공부하는 공간에서 당당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어대는 거며, 계속 속닥거리며 낄낄대는 거며, 배정된 좌석이 아니라 아무 자리에나 앉아 있는 것도, 그래 뭐,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발요, 나 코로나 진짜 싫어요, 야심 차게 가게 차렸는데 확진자라도 한 명 나와 봐요, 나 진짜 다 때려치우고 머리 빡빡 밀고 절에 들어갈 거야.

나는 그 커플에게 마스크를 쓰라는 말을 하고 난 뒤에도 그들이 계속 신경 쓰였다. 내가 있을 때만 마스크를 살짝 걸치고 없을 때는 다시 벗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던 것 같다. 결국, 두 사람의 행동이 너무 거슬린다는 다른 학생의 제보를 받았고 그들은 주의를 요한다는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조심하는 듯했다. 

더욱 가관이었던 건, 그들의 꿈, 그러니까 미래에 가지고 싶은 직업이 간호사라는 것이었다. 책상을 닦다가 그들이 정신간호학을 공부하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헐'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대한민국은 망했어. 이 시국에, 마스크 제대로 안 쓰고 싸돌아다니는 인간들 때문에 전국의 의료인이 고통받고 있는 이 긴급한 상황에 간호사가 되겠다는 것들이 마스크도 안 쓰는 게 실제 상황이냐... 간호사 시험 합격률이 90% 이상이라던데, 저것들도 그럼 결국에는 간호사가 되겠지.... 확실히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어. 개나 소나 다 의료인이지. 

그들이 시험 준비를 하는 그 3주 동안 나는 별 이상한 인간들이 다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어 스트레스였지만 그 후로 그들이 더 이상 오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내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다이어트에 장렬히 실패하고(레퍼런스가 작가 자신이에요), 그냥 건강한 통통이로 계속 살아가지만 사랑은 찾는다. 나의 외모에 상관없이 나를 좋아해 주는 남자를 만나는 것, 그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경우가 잘 없다. 물론 나의 경우에도.(눈에서 흐르는 건 눈물이 아닙니다.) 남자들은 왜 예쁘고 날씬한 여자만 좋아하는 건지 분노에 차오르다가도 나도 키 크고 잘생긴 남자 좋아하는데 뭐, 사람 마음 다 똑같지. 그래, 이해하구요, 인정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잘생겼든 못생겼든 하는 행동이 잘생겼으면 계속 보고 싶지만, 반대로 하는 행동이 못생겼으면 얼굴도 같이 꼴 보기 싫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교육을 받아왔고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있으며 얼마나 사랑받은 사람인지는 얼굴에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의 말투, 작은 습관,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얼굴은 고칠 수 있지만 성격은 고칠 수 없다. 수많은 드라마에서 외모에 상관없이 내면에 끌려 상대를 좋아하게 되고 사랑을 이루는 결말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뻔해보이지만 진리이기도 하다. 또 그게 많은 여자가 원하는 리얼 러브이기도 하고. 결국 중요한 건 많은 사람이 그렇게도 강조하던 내면의 아름다움이니까. 

한살한살 나이가 들면서 진짜 중요한 순간에는 얼굴이 아니라 행동이 한 사람의 평가지표가 된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사실 좋은 사람이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그것만 있다면 우리 모두 여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먼저 줍는 순간, 그 자리에 바로 여신 강림. 











(사진의 출처는 해당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이전 08화 시간 여행은 정말 카이로스의 선물일까? 두 번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