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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미준 Jun 08. 2023

살수 대첩에서 배우는 3가지 리더십 #1(선공)

Point 1. 선제공격이 중요하다. – 새로운 도전을 적극적으로 권장함


  우리나라 전쟁역사상 단일 전투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전투는 무엇일까요?

  한산대첩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살수대첩(2차 려-수 전쟁)입니다.



무려 1,500여 년 전 일이라, 역사서에 따라 논란이 좀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쪽 사서(史書)는 ‘춘추필법’이라고 해서, 자신들이 불리한 부분은 슬쩍슬쩍 고치는 경우도 있고요. 우리도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 때문에 역사가 왜곡된 부분도 있습니다. 본 글은 역사보다는 리더십에 대한 것인지라, 필자의 리더십 의견을 기술하기 위해 우리나라 관점에서 쓴 역사서를 중심으로 글을 풀어나갑니다



  가물가물 기억이 나실 겁니다. 한국전쟁사 3대 대첩에 한산대첩, 귀주대첩, 그리고 살수대첩인데요.

  이 살수 대첩을 통해서 우리 리더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세 가지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1. 선제공격이 중요하다 – 새로운 도전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자

2. 수양제의 잘못된 리더십 - 리더는   분위기를 잘 만들어야 한다

3. 승리의 필살기(철 제련기술) - 나만의 필살기를 만들자   



[1차 려-수 전쟁]

Point 1. 선제공격이 중요하다. – 새로운 도전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자

                                                   

  아시겠지만, 이 전쟁은 고구려와 중국 수나라와의 전쟁입니다.

  우선 이 전쟁의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A.D 589년, 수나라 문제(隋文帝, 557년~602년)는 5호 16국으로 분열되어 혼란스러웠던 중국을 통일해 버립니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영토>

                                                              

수문제(隋文帝)는 나라를 오래 유지하려면 주변 민족들을 강하게 누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중앙권력이 약해지면, 곧바로 제후들이 자기가 다스리는 땅에서 나라를 세우는 경우가 많았고, 한족(漢族)이 아닌 북방 민족들은 호시탐탐 만리장성을 넘어 내륙으로 침투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슈퍼스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께서 중국땅을 휩쓸었기 때문에, 수문제(隋文帝)는 집권 초기부터 주변 국가들이 자신을 넘보지 못하게 강한 푸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고구려는 수문제(隋文帝)의 주 타깃이 된 거죠.


그래서 수문제(隋文帝)는 A.D 590년, 고구려 영양왕에게 멋들어지게 공문을 쓰고, 황제의 옥새를 딱 찍어서 보냅니다. 아래 내용을 보시죠.



“왕(영양왕)은 해마다 사신(使臣)을   보내 조공(租貢)을 바치며 번부(藩部)라고 일컫기는 하지만 성절(誠節:정성)을 다하지 않고 있소… 번신(藩臣)의 예절을 지키고 조정의 정전(正典)을 받들어 스스로 그대 나라를 교화시키고 남의 나라를 거스르지   않는다면 길이 부귀를 누릴 것이며, 진실로 짐의 마음에 드는 일이요”

                                                                                           「수서(隋書) 권 2, 고려전(高麗傳)」


한 마디로, ‘좋은 말 할 때 나한테 잘해라’를 적은 겁니다.


아시겠지만, 당시 5~6세기 고구려는 현재 중국 요동반도는 물론, 만주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말 잘 타고, 활 잘 쏘는, 전투력 만렙의 국가였습니다.

< 무용총(舞踊塚, JYM458)벽에 그려진 수렵도>

 아마 이 공문을 받고 고구려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때 고구려 병마원수 강이식 장군은 “이런 놈들은 붓으로 화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 화답해야 합니다!”라고 강경하게 말했더랬죠.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쓴 조선상고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고구려는 영양왕 때 진짜 수나라를 선제공격해 버립니다. 고구려는 당시 고구려의 영향권에 있던 말갈의 군사 1만을 앞세워서 국경을 넘고, 정예병 5만이 이들과 함께 중국의 핵심 보급지인 조양(영주)을 점거해 버립니다. (중국 쪽 사서(史書)에는 고구려가 쳐들어 왔는데 임충이라는 장군이 임류관에서  막았다고 기록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고구려가 일단 먼저 수나라를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이걸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중국한테 먼저 미사일을 쏘고 군함을 황해에 띄우고 전투기를 보낼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시 고구려는 그걸 한 겁니다.


선제공격에 깜짝 놀란 중국은 30만 병력을 모아 고구려로 쳐들어옵니다.

중국 쪽 사서(史書)에 따르면 수나라 군대 30만이 육로와 해로로 동시에 진군을 했는데, 해군이 출정했을 때 태풍이 불었고, 육로로 진군한 쪽은 전염병이 창궐해서 그냥 돌아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사서에는 약간의 모순이 있습니다.

그때가 음력 6월이었는데요. 양력 8월 초정도라.. 장마는 지나갔고, 전염병이 돌았으면 같이 맞붙은 고구려도 전염병이 돌아야 하는데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고구려의 선제공격이 강력했고, 중국이 반격했지만, 그때도 크게 한방 먹인 겁니다.

선제공격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때로는 그 선제공격이 기세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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