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미준 Jun 13. 2023

살수 대첩에서 배우는 3가지 리더십 #2 (오판)

Point2. 수양제의 잘못된 리더십 - 리더는 분위기를 잘 만들어야 함

권한이 집중된 리더, 권한이 없는 중간리더 체계는 주의하자


<수나라 2대 황제 수양제(隨煬帝) (569~618)>

 고구려에 체면을 구긴 수나라 문제(文帝)가 죽고 그 아들 양제(煬帝)가 즉위합니다. 

사서(史書)에 따르면, 이 수양제(隨煬帝)는 1차 려-수 전쟁 때 호기롭게 출정했는데, 오히려 대패하고, 이끌고 간 군사들이 다 전멸해서 아버지 문제(文帝)에게 크게 질책받았습니다.

(문제(文帝)가 얼마나 열받았으면 양제(煬帝) 더러 “너 그냥 자결하라”라고 했는데, 문제(文帝)의 부인인 독고황후가 말려서 무마되었다고 합니다)


  이러니, 수양제(隨煬帝)에게도 고구려는 눈엣가시였을 겁니다. 

  더군다나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에 국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수양제(隨煬帝)는 북방의 돌궐도 토벌해 버려서 기세가 등등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에게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신을 보내서 조공을 요구합니다. 말로 할 때 굽히라는 거죠. 그런데 고구려 영양왕은 이 요구를 과감하게 거절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수양제(隨煬帝)는 “아버지가 못다 한 소원을 내가 이루어 드리리다”라고 하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고구려를 쳐들어 옵니다. 그것도 백만 대군과 함께 말입니다. 


  A.D 612년 정월, 수양제(隨煬帝)는 113만 3,800명을 이끌고 고구려 정벌을 시작합니다. 

출발하는 데만 40일이 걸렸고, 행렬이 1천 리(400km), 병참지원 인력까지 합치면 약 30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군단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최대규모의 군단이었죠. 


<요동성 전투 상상도>


  당시 고구려와 수나라의 국경은 요동강이었는데, 수나라는 이 요동강을 건너다가 고구려의 화살에 엄청난 병력을 잃습니다. 치열한 접전 끝에 물량으로 밀어붙여서 강물에 부교(물에 뜨는 다리)를 놓고 고구려군을 요동성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 요동성이 만만치 않습니다. 

  높이가 30m이고 주변 3.5km까지 성이 이어져 있습니다. 거기에, 고구려 하면 활이죠. 아주 백발백중입니다. 사다리를 대고 올라가려니 공수해 온 사다리는 30m가 안되고, 붙여서 올라가려니 위에서 화살이 쏟아집니다. 역사에 따르면 6개월 동안 단 한 명도 성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수양제(隨煬帝)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합니다. 왕이 출정했는데, 성이 함락되지 않습니다. 장수들이 못 미덥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모든 결재를 자기에게 올리라고 합니다. 


  이때 수나라의 분위기가 어땠을까요? 100만 명이면 고양, 대구, 대전 정도의 인구입니다. 

  분명 그중에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이 있었을 텐데, 그들이 무력하게 된 겁니다. 좋은 방책이 있어도 ‘결국 황제가 결정할 건데 뭐..’라는 분위기가 되었겠죠. 


  역사연구가들에 따르면 이렇게 보고체계가 변경된 것 때문에 고구려를 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몇 번 놓쳤다고 합니다. 정신 차려보니 기차는 이미 떠났다는 거죠. 그러나, 상황은 이제 돌이킬 수 없도록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결과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면 사기가 떨어진다. 


<살수대첩 – 박각순 作, 1975>

아무리 노력해도 요동성이 함락되지 않습니다. 

이제 수양제(隨煬帝)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 다른 상황인데요. 그래서 수양제(隨煬帝)는 당시 수나라의 에이스 ‘우중문’, ‘우문술’에게 정예병사 30만 명을 주면서, 내가 요동성 쪽에서 계속 공격을 하고 있을 테니 너희는 돌아가서 평양성을 공격하라고 오더를 줍니다. 



  비장하죠? 이거 ‘실패하면 너나 나나 다 죽는다’는 오더입니다. 얼마나 비장했으면, 수양제(隨煬帝)는 이 별동대에게 엄청난 식량을 쥐어줍니다. 얼마를 줬을까요? 사서(史書)에는 병사 1인당 100일 치 식량, 피복, 병장기, 야전텐트를 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인당 군장의 무게가 50kg 정도였습니다. 

  

  별동대(別動隊)는 말 그대로 별도로 이동해서 특수작전을 하는 군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수학 문제가 어려운 아들한테 ‘너는 꼭 서울대 수학과 수석 입학해야 한다. 엄마가 음식은 얼마든지 해 주마’고 말하는 것과 같은 부담감을 주는 거죠. 

  

  울며 겨자 먹기로 이들은 50kg 군장을 메고 이동을 시작합니다.(군장 메어보신 분들은 느낌을 알 겁니다) 말이 쉽지, 하루 이틀 가다 보니 몰래 식량을 땅에 파묻고 이동하는 군사들이 속출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의 분위기는 어떠했을까요? 죽을 맛이었을 겁니다. 이걸 간파한 고구려는 청야전술(淸野戰術)을 폅니다. 

  

  별동대의 이동경로에 있는 모든 주민을 대피시키고, 소, 말 등 먹을 것을 다 없애버리고, 우물에는 독을 풀어놓는 작전입니다. 별동대가 겨우 성을 쳐들어갔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자신들이 식량을 파묻은 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 이게 여러 번 반복됩니다.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살수대첩 그림>


  결국 이들은 평양성 근처까지 왔지만, 도저히 못살겠다고 생각하고 퇴각하다 살수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이끄는 고구려군에게 몰살당하게 되죠. 


  이게 그 유명한 살수대첩입니다. 별동대가 30만 5천 명이 나왔는데 살아서 압록강까지 도망간 군사는 겨우 2,700명 밖에 안 되는 엄청난 승리였습니다. 


  엄청난 자원과, 물자, 군사를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양제(隋煬帝)는 고구려를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역사는 잘못된 리더십의 여파가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줍니다. 


<3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살수 대첩에서 배우는 3가지 리더십 #1(선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