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는 궁궐 산책, 경복궁 가이드 이야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했던가.
올 11월,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GUCCI의 패션쇼가 경복궁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한국에서의 첫 패션쇼였지만 의견이 분분했고, 패션쇼는 결국 여러 가지 사정으로 취소되었다.
구찌가 경복궁을 런웨이 장소로 채택했던 이유는 이번 컬렉션이 천문학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1400년대 왕실 천문대를 갖추고 세계적인 수준의 천문학이 연구되었던 경복궁을 최적의 장소로 판단했다. 패션쇼는 취소되었지만, 이후 구찌가 공식적으로 경복궁의 보존 사업을 후원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아름다움’을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라고 밝힌 구찌는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위한 약속이라고 했다.
나중에라도 경복궁을 방문한다면, 경복궁의 아름다움은 ‘이곳’에서 꼭 눈에 담거나 사진 찍을 것을 추천한다. (이곳은 글의 말미에 남겨두겠다!)
오랜만에 방을 정리하다 보니, '경복궁 입장권'이 우수수 쏟아졌다.
나는 한 때 경복궁을 수없이 드나들었는데, 대학생 때 주말마다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경복궁 해설 가이드' 활동을 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 이때 맺은 인연은 직장인이 된 후에도 사회공헌 활동으로 이어졌다. 청소년, 어르신, 몸이 불편하신 분들과 매년 소풍 가듯이 경복궁을 방문했고, 2018년에는 아프리카에서 10개국 아이들을 초청하여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거닐었다.
아이들은 '한국'이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이라고 했다. 한복을 입고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옷감은 처음 본다며 연신 감탄을 했고, 함께 봉사했던 한국 학생들은 처음엔 한복 입는 것을 부끄러워하다가 나중엔 그 누구보다 열심히 궁을 누볐다.
나도 경복궁 가이드를 하기 전에는 잘 몰랐다. 궁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복궁 가이드를 꽤나 오랜 시간 하면서 알게 되었던 궁의 숨은 이야기들, 그리고 경복궁을 재밌게 보는 10가지 팁을 남기고자 한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경운궁)
서울엔 5개의 궁이 있다. 역사적으로 모두 실제 사용했던 궁들이며, 한 도시에 이렇게나 많은 궁이 있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왕이 실제로 거처하던 궁을 '법궁'이라고 하는데, 이때 항상 예비 궁인 '이궁'을 두어야 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제일의 '법궁'이다.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것이 '창덕궁'이다.)
경복궁 역사 브리핑
경복궁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아버지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었다. 슬프게도 일제 강점기에는 약 90%의 전각이 훼손되거나 사라졌지만, 1990년대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후 2045년을 목표로 계속해서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복원 완료 후 경복궁 내 전각은 고종 중건 당시의 약 40% 정도로 복원될 예정인데, 경복궁의 크기는 약 46만m²(약 14만평)로 매우 넓다.
경복궁 추천 코스
축구장 60개 크기의 경복궁을 하루 만에 관람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경복궁 핵심 코스로는 '광화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경회루' 순으로 보기를 추천한다. 궁 안쪽에 위치한 후원 공간까지 다녀 오고자 한다면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야 할 것이다.
경복궁 공식 입장료는 3,000원이다. 그런데 한복을 입는 자, 경복궁 무료입장이다. 경복궁 주변에는 한복을 빌려주는 업체들이 많이 있다. 한복 빌리는 값으로 경복궁을 거닐며 사진으로 추억도 남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 보는 것은 어떨까. (단, 화요일은 경복궁 휴무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들은 난생처음 입어보는 한복을 입어보면서, 이렇게 비단결 같은 옷감은 처음 본다며 연신 "beautiful!"을 외쳤다. 한국인이라고 굳이 입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서울에 있는 다섯 개의 궁을 입장할 때마다 필수로 다리를 건넌다.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경복궁은 광화문을 지나 근정전을 향할 때 '영제교'라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예전에는 이곳에 북악산에서 시작된 금천이 청계천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궁궐 초입에 놓인 다리는 임금과 백성이 사는 곳을 구분하여 신성한 장소임을 상징하고, 물이 흐르는 다리를 건넘으로써 잡귀를 막는 구실을 했다.
그리고 영제교를 건널 때 금천을 지키는 4마리의 서수 중, 서북쪽에 있는 '천록'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천록이 유일하게 '메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메롱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b)
광화문부터 근정전까지 나있는 길을 보면, 세 개의 길이 보일 것이다. 나라면 가장 널찍한 가운데 길을 걷겠다. 동쪽 길은 문관이, 서쪽 길은 무신이 다니던 길이며, 가운데 길은 왕의 길인 '어도(御道)'이다. 그런데 왕의 길을 걷다 보면 계단에서 길이 막혀 당황할 수 있다. 계단 대신 반질반질한 돌 위에 봉황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답도'라고 한다. 당시 왕은 걷지 않고 가마를 탔기 때문에, 가마를 타고 그 위를 지나갔다고 한다.
근정전 넓은 마당에 깔린 돌 위를 걷다 보면 유난히 울퉁불퉁하다고 느낄 것이다. '박석'이라고 불리는 이 돌들에는 알고 보면 조상의 지혜가 숨어있다.
하나, 근정전 마당은 공식 행사가 주로 열리던 장소이던 만큼 미끄러지지 말라는 배려가 담겨 있다.
둘, 돌이 대리석처럼 너무 매끈하다면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상할 수 있다.
셋, 박석들 사이의 흙으로 인해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빗물이 고이지 않는다. 근정전 마당에 배수구라곤 남쪽 행각 모서리 하나뿐이지만, 아무리 비가 와도 물이 넘치지 않는다. (이는 박석의 효과도 있고, 자세히 보면 근정전 뜰이 남쪽에 비해 북쪽이 1m쯤 높아 빗물이 자연스럽게 남쪽으로 흐른다고 한다.)
‘근정전’은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왕의 즉위식이 이루어지기도 했던 곳이다.
근정전은 밖에서 보면 2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속은 사실상 하나의 높은 천고로 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밀. 근정전은 앞에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데, 옆에서 봐야 보이는 것이 있다. 7 개의 발톱을 가진 황룡이다. 황룡 두 마리는 왕을 상징한다.
바로 '일월오봉도'이다. '해, 달, 산, 물, 소나무'가 그려져 있다. 일월오봉도는 왕권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임금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함께 했다. 붉은 해는 왕을, 하얀 달은 왕비를, 다섯 봉우리는 왕이 다스리는 국토(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 삼각산) 또는 오행을 뜻한다. 흐르는 물은 백성, 소나무는 청렴결백한 신하를 뜻하여 왕의 덕을 칭송하는 그림이라고 한다.
‘사정전’은 임금이 아침에 출근하여 퇴근 전까지 평상시 정사를 의논하거나 결정하는 공간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왕과 신하들이 모여 중요한 정책에 관한 의견을 조율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사정전 좌우에는 '만춘전'과 '천추전'이 있다. 이름에 봄과 가을을 품은 이 건물들에는 온돌방이 있어, 계절에 따라 만춘전, 천추전으로 옮겨 왕이 정사를 돌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두 건물에는 아궁이와 굴뚝이 있다. 뜨끈한 아랫목이 절로 생각나는 한국 고유의 난방 시스템은 궁에도 있었다.
‘강녕’이라는 말 뜻에는 몸이 건강하다는 뜻 외에도 마음이 편안한 상태도 포함된다. 그렇기에 ‘강녕전’은 왕의 일상생활 공간이자 침실이었다.
강녕전의 방 구조는 독특하다. 밖에서 보면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좌우에 있는 방이 꽤 크게 보이지만 막상 실내에서 왕이 쓰는 공간은 크지 않다. 그 이유는 방을 '우물 정井' 구조로 나누어, 가운데 공간만 왕이 사용하고 나머지는 왕을 보필하는 지밀 궁녀들의 공간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또한, 강녕전에는 가구가 별로 없는데 이는 목조건물이기 때문에 화재에 대비하고, 혹시 모를 적이 숨을 곳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경회루는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종친과 공신들에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원래는 아무나 볼 수 없게 벽으로 막혀있었으나, 지금은 출입구가 있는 쪽을 제외하고는 경회루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경회루로 건너가는 문은 동쪽으로 총 세 개인데, 자세히 보면 세 개의 문 크기가 다 다르다. '이견문, 함홍문, 자시문'을 가진 세 개의 문 중 가장 큰 문은 왕이 다니는 문이고, 다른 두 문은 신하와 그 외 사람들이 다니는 문이었다고 한다.
또한, 경회루 지붕 위에는 가장 많은 '잡상'을 볼 수 있다. 잡상은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인 삼장법사,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 등 상상의 동물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악귀들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경회루의 연못은 사실 인조 연못이다. 이때 판 흙을 '아미산'으로 불리는 왕비의 정원을 만드는데 썼다고 한다. '교태전'은 왕비가 거처하던 내전으로, 왕의 내전인 강녕전 뒤에 있다. '아미산'은 계단식 정원으로 되어 있으며, 네 개의 아름다운 굴뚝이 있다. 왕비는 한 번 시집을 오면 죽어서야 궁 밖에 나갔다고 하니, 그녀를 위한 아늑한 정원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경회루’는 본디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고 왕과 신하의 연회 장소로 사용했던 곳으로, 경복궁에서 손꼽히는 사진 명당이기도 하다. 근정전과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과 아미산을 돌아 다리가 슬슬 아파올 때쯤 당도하게 되는 경회루는 넓게 트여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준다.
그래서 경복궁의 진짜 명당은 어디일까?
경복궁의 숨은 진짜 명당은 '남쪽 행각에서 근정전을 바라보는 지점'으로, 근정전이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를 자연스럽게 잇는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우리의 전통 건축은 자연과의 어울림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남쪽 행각에 서서 근정전의 처마선과 이어지는 북악산의 능선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사실 밤을 밝히는 경복궁도 아름답다. 달빛에 비추는 고궁을 보듯, 낮에 보는 경복궁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다. 올해 하반기 야간 특별 개장은 종료되었지만, 다시 봄이 되어 야간 개장 시기가 돌아온다면 예약하고 방문해볼 것을 꼭 추천한다.
경복궁 관람시간
1월 ~ 2월: 09:00~17:00(입장마감은 16:00)
3월 ~ 5월: 09:00~18:00(입장마감은 17:00)
6월 ~ 8월: 09:00~18:30(입장마감은 17:30)
9월 ~ 10월: 09:00~18:00(입장마감은 17:00)
11월 ~ 12월: 09:00~17:00(입장마감은 16:00)
* 매주 화요일은 휴궁일(休宮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