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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효 Nov 25. 2022

 '광화문 주민'으로 산다는 것은?

600년 동네 탐구 먹거리, 놀거리, 즐길거리

나는 옛날부터 광화문이 좋았다.

커다란 빌딩들이 위로 뻗어 있고, 궁들은 넓게 펼쳐져 있는데, 하늘은 또 뻥 뚫려있다. 한 도시가 이렇게 넓은 공간감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게 매일의 출퇴근 발자국이 광화문 위에 쌓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먹고, 자고, 노는 대부분의 삶을 사대문 안에서 보냈다. 경기도민에서 광화문 주민이 되기까지, 매일 한강을 가로지르며 학교를 다녔고 출근도 했다. 첫 글로 나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결국 나의 시작은 '광화문'이다.


광화문 주민이자 직장인 10년 차의 하루


하루의 시작, 직주근접을 실천하며 광화문 광장이 보이는 건물로 출근한다. 한 때 촛불로 가득 찼던 광화문 광장은 공사를 거듭하여 재개장했다. 한 번씩 창문 너머 변해가는 광장을 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코로나 이후 점심은 주로 회사 식당에서 먹지만, 그 전에는 주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재밌게도 경복궁역에서 광화문역으로 걸어가다 보면 실시간으로 나를 둘러싸는 사람들이 바뀐다. 경찰청과 정부청사가 위치해 있는 경복궁역 방향엔 상대적으로 중년 세대의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면, 광화문역으로 갈수록 사기업들과 관광객들이 섞이면서 조금 더 젊어지는 느낌이다.


퇴근 후에는 길 건너 서촌에서 저녁을 먹기도 하고, 특별히 선택지가 없을 땐 D타워나 SFC에 간다. 날이 좋을 땐 덕수궁 돌담길 산책도 한다. 대학원 다닐 땐 퇴근하자마자 272 버스를 타고 매일 사직터널을 지났다. 때로 교보문고에서 필요한 책을 사고, 종로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24시 운영하던 광화문 사거리 할리스 커피에서는 밤샘 과제를 하며 새벽녘 광화문에 모이는 다양한 군상을 마주했다.


주말엔 '인왕산 둘레길'에 오르고, 북악 스카이웨이를 따라 '팔각정'에 올라 서울 야경을 보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이태원이나 압구정, 강남 등으로 잡기도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동네에서 운동도 하고 미용실도 가고 커피도 한 잔 하며 일상을 보낸다.



"거기에도 사람 살만한 곳이 있어?"


광화문에서 산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생각해보면 '육조거리'라고 불리던 이곳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살던 공간이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한 골목만 뒤로 가보면 같은 서울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한적하고 조용해진다.

'경희궁의 아침, 용비어천가, 광화문시대, 파크팰리스' 어딘가 궁의 기운이 솟아나는 아파트 겸 오피스텔 이름이다. 업무지구이면서 대표적인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큰 마트와 미용실, 에스테틱, 헬스장, 꽃집, 병원, 학원까지 주거 지역에 필요한 것들은 다 있다. 광화문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광화문의 매력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하나. 광화문의 진짜 맛집은 지하에 있다.

어렸을 적, 광화문에 놀러 올 때마다 기억나는 밥집은 세종문화회관 앞 KFC였다. 그런데 직장인이 되고 보니 커다란 건물 지하마다 잔뼈 굵은 밥집들이 존재하고, 골목골목마다 몇십 년간 장사를 이어온 노포들이 포진해 있다. 나는 한국에서 최고의 팟타이를 '광화문시대' 지하에서 만났다. 외지 사람들이 1시간씩 줄 서는 24시 감자탕 대신, 경찰청 뒷골목에 부추 잔뜩 올려주는 감자탕 집이 더 좋다. 최근에는 한옥을 베이스로 위스키바, 와인바, 에스프레소바 등 특색 있는 곳들도 골목마다 생겨나는 중이다. 도시의 멋은 맛에서 나온다.

둘. 광화문의 밤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도심에 살면 시끄럽지 않냐는 친구들이 집에 다녀갈 때면, 생각보다 조용한 광화문의 밤에 놀란다. 업무지구인 광화문은 밤이 되면 꽤나 조용하다. 대로변에서 한 골목만 안으로 들어와도, 또 다른 도시의 삶이 존재한다. 밤 산책을 나가보면, 낮 시간 동안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의 담벼락들이 은은한 달빛에 일렁이며 사색에 잠기기 좋다. 불빛 따라 걷다 보면, 분위기 좋은 위스키바나 와인바를 곳곳에서 만날 수도 있다. 한옥 정취에서 분위기 한 잔 마시다 보면, 이곳이 궁인지 도시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셋. 광화문 하늘 아래 없는 게 없다.

사실 '광화문'은 경복궁의 가장 바깥 대문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느새 문의 개념이 공간을 애워싸버렸다.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이따금씩 하늘을 쳐다보곤 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커다란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데도, 이상하게 광화문의 하늘은 뻥 뚫린 느낌을 준다.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뜻처럼 광화문의 뻥 뚫린 하늘 아래 모든 것이 한데 섞인다.

광화문에는 일단 궁만 다섯 개(경복궁, 경희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다. 주변엔 미국 대사관을 포함해 각국의 대사관도 포진해 있다. 언론사와 금융사, 주요 공사와 대형 로펌들도 광화문에 모여있다. 광화문 하늘 아래 여러 나라와 역사와 경제가 실시간으로 모인다.

'내수사'라는 궁의 곳간이 있었듯, 누군가에게 지금 광화문은 경험의 곳간일 것이다. 어렸을 적, 엄마 손을 잡고 친구들과 종묘 제례를 보러 왔고 경복궁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한글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과 같이 인근의 전시관을 다니고,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양한 문화 예술 공연을 접했다.

경험은 한 개인에게 쌓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내 딸의 손을 잡고 또다시 종묘 제례를 보러 올 것이다. 광화문의 드넓은 하늘 아래 세대와 세대가 이어지며 이곳에 과거도 있고, 현재도 있고, 미래도 있다.  



넷. 사람들이 모이는 곳. '광화문 광장'

도심 속 새로운 휴게 공간이 생겼다.

2022년 8월 새로 문을 연 광화문 광장은 직접 걸어보고 느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사실 광화문 주민으로서, 광화문 광장 공사는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공사로 인한 당장의 불편함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화문 앞에서부터 세종대왕을 지나 이순신 장군이 있는 곳까지 광장을 쭉 걷다 보면, 정말로 광장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녹음 가득한 공간 속에서 한글 모음과 자음을 형상화한 분수라던가, 곳곳의 미디어윌은 작가가 숨겨놓은 의미를 찾는 재미도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 현판' 외에도 KT건물 외벽에 은은히 비추는 이순신 장군 그림자도 멋있다. 광화문 광장의 이모저모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글로 대신하리라.



마무리. 광화문역 1,8번 출구가 어디 있는지만 미리 알아도 걸음을 아낀다.


최근 광화문 일대는 계속해서 변화해 나가고 있다.

크게 느껴지는 변화 중 하나는 전철역 출구 안내이다. 경복궁역과 광화문역 출구에 자세한 설명이 붙었다. 이제는 청와대를 가려면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고, 광화문 광장으로 가려면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상세히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찐 광화문러라면 광화문 1, 8번 출구와 다른 출구들을 헷갈리지 말아야 걸음을 아낄 수 있다. 개찰구 방향이 아예 다르기 때문에 미리 숙지하지 않으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광화문 예찬론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광화문 주민으로서 나눌 수 있는 정보들을 담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에필로그쯤 되는 첫 글이지만, 하나씩 풀어갈 광화문 이야기에 설렘을 담아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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