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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효 Nov 03. 2023

500년 넘게 광화문을 물들인 단풍 명소

커피 한 잔 곁들이는 광화문 일대 가을 나무 이야기

요즘만큼 걷기 좋은 계절이 있을까. 완연한 가을이 다가오며 단풍놀이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멀리 가지 않아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도 황금빛 가을을 만날 수 있는데, 특히 이 시기의 경복궁과 서촌 주변은 한 번쯤 들려볼 만하다.

광화문 직장인이어서 좋은 점은 이러한 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가을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뿐이지만, 경복궁 돌담길을 걷고, 정동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지금의 가을 한가운데 있게 된다.

사실 가을이 아니어도 좋다. 광화문 일대 나무들은 봄이면 새순이 돋고, 여름엔 녹음이 지고, 가을은 흐드러지며, 겨울엔 흰 세상을 품는다. 묵묵히 나이테를 새기며, 사계절을 온전히 담아낸다.


그리고 여기, 500년 넘게 광화문을 지켜온 두 나무가 있다.



경복궁 고궁박물관 옆 은행나무

경복궁 주변은 가을이 되면 돌담길과 어우러지는 은행나무들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경복궁 곳곳에 포토존이 존재하지만,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무료로 볼 수 있는 숨은 단풍 명소가 있다.

바로 고궁박물관 옆 은행나무다.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은행잎들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은 현재, 천천히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는 중이다.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드라마틱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서밥모 공유사진
2023년 봄과 가을의 고궁박물관 옆 은행나무. @hyo


스태픽스

서울 종로구 사직로 9길 22
매달 넷째, 다섯째 월요일 정기휴무

근처에서 차 한잔 마시며 가을을 즐기고 싶다면, 서촌의 숨겨진 카페 '스태픽스'를 추천한다. 경복궁역 1번 출구로 나와 사직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널따란 마당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3층 건물은 카페 겸 소품을 팔며, 마당에서는 서울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정동길 캐나다 대사관 옆 500살 회화나무

중구 정동길은 한 때 우리나라 외교의 최전선이었다. 각국의 공사관이 밀집된 이곳은 근대 역사 건축물과 단풍이 한데 어우러지는 장소로 유명하며, 서울시의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정동길을 걷다 보면 캐나다 대사관 앞에 있는 500살 넘은 회화나무를 만날 수 있다. 높이 17미터, 둘레 5m에 달하는 이 보호수는 2003년 캐나다 대사관이 건축 당시 나무를 위해 건물의 건축 디자인까지 변경했다고 한다. 나무의 뿌리가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터를 굴착하는 일도 동면 주기에 맞추어 겨울에 진행했고, 나무의 둘레를 감안해 건물의 디자인을 완만한 곡선으로 하였다. 노목을 위해 지지대를 설치해주기도 했다.

사실 캐나다 대사관의 노력은 산책할 때 한 외국인이 주변 일행에게 자랑스럽게 나무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을 들어 알게 되었는데, 그 뒤로는 지날 때마다 괜스레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서울에서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이 보호수는 한국의 근현대와 역사를 함께한다. 대한제국의 탄생이 이루어진 덕수궁,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정동교회 모두 정동길에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이 자리에 서서 고종의 아관파천을 지켜보았을 것이고, 수많은 외국인들을 만났을 것이다. 6.25 전쟁 이후 현재 캐나다 대사관 자리에 오픈했던 하남호텔은 당시 서울의 대표적인 사교의 장이었다고 한다. 500살 넘은 이 회화나무는 올여름에도 그 자리에 서서 특유의 흰꽃을 피워냈다.

570살정도 된 캐나다 대사관 앞 보호수


커피루소 정동

서울 중구 정동길 17
월~금 8:00~20:00 / 토, 일 9:00~20:00

정동은 한국 최초의 커피숍이 들어선 곳이다. 그 기원 때문인지 정동길엔 많은 커피숍이 줄지어 성황 중이다. 그중에서도 캐나다 대사관 근처 빨간 벽돌 커피집 '커피루소'를 추천한다.

근방에서 오래된 커피집으로 브런치 하기도 좋고, 통창으로 정동길의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점심시간 대에는 직장인들로 북적대지만, 공간이 넓어 주말에는 꽤나 여유롭게 있을 수 있다. 대학원에 다닐 때 과제하러 자주 갔는데, 주말엔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공부하러 오는 사람도 많다.

루소커피의 안과 밖


덕수궁 돌담길과 맞닿아 있는 정동길은 정동교회 앞 사거리에서 이화여고 동문 앞을 지나 새문안길에 이르는 구간을 일컫는다. 정동길은 그냥 걸어도 좋지만, 특히, 가을에는 낙엽을 쓸지 않는 길로도 유명하다. 광화문 직장인이 아니어도 연인과, 친구와, 가족과 걸어도 좋을 길이다.

그냥 걸어도 좋은 정동길의 봄과 가을.


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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