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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효 Jan 14. 2023

광화문에서 20년간 망치질을 한 남자

매일 35초마다 망치질하는 해머링맨의 하루

광화문 직장인 10년 차인 나에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귀감이 되는 사람이 있다. 지난 20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을 지키고 있는 이 남자는, 다른 직장인들과 비슷하게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망치질을 한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20년간 쉰 날은 딱 세 달뿐이다. 광화문 사거리 저 멀리서도 보이는 이 남자는 일명 망치든 남자, '해머링 맨(Hammering Man)'으로 불린다.  


35초마다 망치질하는 남자의 하루


키만 22m 달하는 이 조각상은 광화문 직장인을 닮아있다. 35초마다 망치질을 하여, 지금까지 약 500만 번의 망치질을 했다. 20년 근속이니 직장인으로 치면 부장 또는 임원급이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도 받는데, 계속해서 움직이는 팔 덕분에 연간 유지보수 비용만 7,000만 원이라고 한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엔 그도 쉰다.


세계에서 제일 빠르고 강한 7번째 형제


해머링 맨은 사실 혼자가 아니다. 미국 시애틀,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일본 도쿄 등 세계 11개 도시에 형제들이 있다. 일곱째인 그는 맏이는 아니어도 높이 22m, 무게 50톤으로 형제들 중에 가장 크고 센 해머링 맨이 되었다.

한국의 해머링맨은 망치질 속도도 제일 빠르다. 원래 1분 17초 간격으로 망치질을 했지만, ‘너무 느리다’는 의견에 따라 35초 간격으로 조정이 되어,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가진 해머링맨이 되었다. (현재 산타모자를 쓰고 양말을 신은 한국의 해머링맨은 조금 귀엽기도 하다.)

'Hammering Man' 출처: https://www.borofsky.com & Hyo Iphone


'해머링맨'의 아버지, 조나단 브로프스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인 조나단 브로프스키(Jonathan Borofsky)는 1942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해머링맨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거인 이야기와 망치질하는 구두 수선공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979년 뉴욕 폴라 쿠퍼 갤러리에서 전시한 'Worker'라는 작품이 'Hammering Man'의 전신으로, 작가는 인터뷰에서 해머링맨은 '일하는 모든 사람을 대변한다'고 했다.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에 있는 'singing man(1994)'도 그의 작품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 정각에 노래를 한다.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보내며, 미술관 초입에서 항상 마주쳤던 '싱잉맨'이었는데, 어느덧 어른이 된 나는 광화문의 '해머링맨'을 만났다.

서울 강서구 귀뚜라미 사옥 앞에는 그의 또 다른 작품인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walking to the sky)'이 있다. 기울기가 75도쯤 되는 30m 높이의 장대를 따라 아이부터 어른까지 사람들이 걷는다. 싱잉맨과 해머링맨에 머물렀던 작가의 시선은 한계 없는 하늘로 향한다. 따로 또 함께, 꿈을 향한 각자의 행진은 그래서 외롭지 않다.

'Wakling to the Sky' 출처: https://www.borofsky.com


해머링 맨은 누구나 될 수 있다.


해머링 맨의 '망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노트북, 펜, 메스 등 우리는 끊임없이 손을 사용하며 각자의 망치로 세상을 만든다. 광화문에는 로펌, 공공기관, 언론사, 금융사 등 사무직 직장인이 많지만, 커다란 건물들 사이로 사람 냄새나는 공간들도 존재한다. 20년 동안 끊임없이 망치질을 한 해머링맨처럼, 광화문 일대에는 오래된 구두수선소가 유난히 많다. 한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며 서울 3대 비엔나 커피집이 된 곳부터, 8년째 단골인 단골 미용실과 50년 전통의 음식점에는 사장님의 자부심과 세월이 묻어있다. 나는 오늘도 광화문을 지나며 회사 안팎으로 수많은 해머링맨과 마주한다.


검은 실루엣의 해머링 맨


해머링맨은 검은색 강철로 만들어져서, 멀리서 보면 그림자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때로는 나의 그림자, 당신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어느 날에는 활기차 보이고 신나 보이며, 어느 날엔 지쳐 보이고, 슬프고 서러울 땐 위로가 되기도 한다.

조용한 퇴직이 각광받는 시대이다. 달라진 시대 속에서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혹은 일찍이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노동은 여전히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망치를 들지 않은 두 손은 자유로울 수 있지만, 결국 지난날 나를 성장시킨 것은 망치의 힘이었다. 대학생 때, 광화문 씨네큐브에 영화를 보러 올 때마다 만났던 해머링맨의 그림자는 어느새 한 뼘 더 자랐다.



올해 우리의 해머링맨은 10년 만에 산타양말을 신었다. 일명 '해피뉴이어 해머링 맨' 프로젝트로, 산타양말에는 새해 소원도 적을 수 있다. 나는 조금 더 단단하고 유연한 해머링맨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오늘도 세상을 위한 당신의 해머링맨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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