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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Nov 02. 2018

이것은 내가 알고 사랑하는 미국이 아니다.

This is not the America I know and love. We’re better than this. Our ideals, shared facts and common humanity are what bind us together as a nation and a people. Not one of these values is a political issue, but the lack of them is. 허드슨 강에 비행기를 착륙시켜 승객과 승무원 전원을 무사히 구한 Chesley "Sully" Sullenberger 기장이 10월 29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 중 일부이다. 스스로를 공화당 지지자라고 밝힌 그는 지금의 미국이 그가 사랑하는 미국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에서 미국의 가치를 실현할 올바른 리더에게 투표하자고 주장한다. 은퇴한 파일럿은 왜 이런 칼럼을 쓰게 되었을까.


미 대선 직후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라는 말이 자주 거론 되었다. 무슨 대단한 용어처럼 들리지만 이것은 돈을 마구 풀어대는 것을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라는 그럴 듯한 용어로 포장한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남녀 차별 금지, 인종 차별 금지, 종교 차별 금지 등과 같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가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오랫동안 미국 사회가 추구해온 것들의 통칭이다. 이 말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대입하면 체면, 예의를 좀 차리고 살자는 것이 되지 않을까. 힘 좀 있다고 약자를 찍어 누른다거나, 새치기를 한다거나 하는 짓 하지 말자는 것이다.


예의라는 것이 때로는 매우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꼭 그렇게 티를 내야 하나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식적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물마시고 이쑤시는 것이 그런 가식적 행동의 예라 하겠다. 예의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도 하고 효율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문을 열고서 뒤에 누가 오는지 확인하고 문을 잠깐 잡아주는 것이라든지, 휠체어가 지나갈 때 한쪽으로 비켜선다든지, 애들이 보이면 바로 차 속도를 줄인다든지,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은 작은 것이지만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기본이다. 예의란 그런 것이다.


예의가 없는 사회에 남는 것은 약육강식밖에 없다. 힘, 오로지 힘만이 정의이다. 그것이 사람이 사는 사회인가. 법과 도덕은 힘으로만 살지 말라는, 힘으로만 살아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합의다.


내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노선에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 때문이다. 법에만 걸리지 않으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발상, 그 발상은 법조차 나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으로 확장된다. 미국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은 백인만 잘먹고 잘산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또 그것은 백인 남성이 제일 우선이라는 것으로 연장된다. 미국이 100년동안 만들어왔던 가치를 거추장스럽고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그런 행동이 미국의 근본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아마도 남녀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종교차별주의자가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언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차별이 나쁜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즉 폭력도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최근의 폭탄 우편물 사건이나 유태인 총기 학살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결코 거추장스럽거나 가식적인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기둥이다. 그것을 통해 미국은 배타성을 포기하고 영구성을 확보한 것이다. 제국의 힘은 거기서 나온다. 이제 미국은 영구성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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