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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Nov 29. 2018

와인 유감

집안에 기분좋은 일이 생겼다. 술마시는 핑계로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 주당은 어차피 이래도 한잔, 저래도 한잔이지만 곁에서 누군가가 추임새를 넣어준다면 술맛이 더해지는 법. 잔소리꾼 무서워 술을 못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술을 마시기 위한 핑계로서가 아니라 기분좋은 사건을 맞아 그것을 좀 더 길고 깊게 음미하려는 것을 하등 탓할 이유가 없다.


지금 나는 7주째 금주 중이다. 하다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술을 마셔야 하는 12월이 코앞에 왔으나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마셔야할 상황이 되면 마시고 그렇지 않으면 안마시면 그 뿐. 나의 공식 금주는 이번주 일요일까지다. 집에서 보낸 카톡 메시지를 보자마자 든 생각. 아 이건 축하를 해야되. 와인을 사야지. 식구들이 다같이 모여앉은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고 마지막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와인 아니던가. 왜그런지 모르지만 막걸리, 소주로는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사무실 근처 와인 가게에 들렀다. 평소 내가 구매하는 와인 가격대의 두배정도를 머리 속으로 생각한다. 어디선가 캘리포니아 포도 작황이 2015년이 근년 베스트 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해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을 사면 거의 실수하지 않는다는 것이 포인트였는데 전문가 말을 들어 손해볼 것은 없으니 무조건 빈티지는 2015로 정했다. 우리 식구들은 대체로 Merlot를 좋아한다. 포도 생산지와 품종과 빈티지와 가격대를 정하고 나니 와인 고르기가 한결 쉬워졌다.


저녁 시간, 와인을 꺼내 식탁에 올렸다. 그런데 큰애는 이런 일로, 둘째는 기숙사에, 막내는 저런 일로 결국 두사람만 남게 되었다. 제법 돈을 들인 와인을 마시다가 남긴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사를 앞두고 다시 술을 마시기도 뭣하고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고민하기를 십여분. 결국 와인병을 식탁 가운데 세워놓고 눈으로만 마셨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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