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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Jan 29. 2019

트럼프와 펠로시

지금은 별로 인기가 없지만 80년대 민속 씨름은 정말 인기있는 종목이었습니다. 한라장사급(95kg 이하)인 이만기 선수가 자기보다 몸무게가 훨씬 무거운 백두장사급(95kg 이상) 선수를 뒤집기 한판으로 승부를 끝내는 장면, 아마 저와 비슷한 연배의 분들은 모두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만기 선수 뒤를 이어 등장한 강호동 선수도 그 큰 몸집이 어떻게 유연한지 TV 중계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두 걸출한 스타가 우리 씨름판의 중흥기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이후 세대는 제가 한국을 떠나 있었던 관계로 잘 알지 못합니다만 씨름 인기가 이전만 못한 것 같아 좀 아쉽습니다.


씨름판에 두 선수가 등장하면 서로 샅바를 잡기 위해 모래판위에 무릎을 꿇고 마주 앉습니다. 심판은 두 선수를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게 하지만 선수들은 어떻게든 엉덩이는 뒤로 쭈욱 잡아빼면서 손을 뻗어 상대방 허벅지를 두를 샅바를 잡아채려 합니다. 다른 손으로는 상대방 등 뒤의 샅바를 잡는데 가능하면 최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을 확보하려 합니다. 이른바 샅바싸움입니다. 이 싸움이 왜 중요하냐하면 서로 힘과 기술이 비슷한 선수들이라 누가 조금 더 유리한 지점을 먼저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기싸움은 씨름판의 샅바 싸움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치고 빠지기 전술도 따지고 보면 그가 기싸움에서 상대방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공화당 경선에서 그는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젭 부시를 두고 'Low Energy' 부시라고 몰아붙였습니다. 부시는 트럼프가 덮어씌운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부시 다음으로 그의 지위를 위협하던 40대 상원의원 Marco Rubio를 Little Marco라고 불렀습니다. 루비오 의원은 이 별명에 시달리다 후보에서 물러났습니다. 다음 타겟은 텍사스 출신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였습니다. 그에게는 거짓말쟁이 테드('Lyin' Ted)라는 모욕적인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테드 크루즈도 결국 중도 사퇴했습니다. 가장 큰 적이었던 힐러리는 'Crooked' 힐러리라고 불렀죠. 모두가 기싸움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 전술에 희생된 분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프레임 덮어씌우기의 예외가 있습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입니다. 대통령은 연설에서 펠로시 의장을 다음과 같이 불렀습니다. 'Nancy Peloci, or Nancy as I call her'. 어떻습니까? 나이도 자기보다 많고, 게다가 여성이며, 국가 공인 서열 3위에 대한 예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왠지 협상의 기싸움에서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에게 한풀 꺾이고 들이가는 듯한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35일간의 미 역사상 최장기간 연방정부 셧다운을 밀어붙였던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의 고래심줄같은 고집에 결국 휴전을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입니다. 펠로시 의장을 설득하기 위한 대통령의 다음 한수, 어떤 별명으로 응수할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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