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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Mar 01. 2019

3월 1일

만세와 함께 시작한 서울의 3월과는 달리 뉴욕의 3월은 눈으로 시작합니다. 3월은 그냥 삼월이라 하지않고 춘삼월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모자라 우리는 꽃피는 춘삼월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춥고 쌀쌀해도 3월은 봄이고 봄이어야 함을 몸과 마음은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밤새 눈이 내렸고 출근하는 이시간에도 눈은 그칠줄 모릅니다.


아직 천지가 고요한 시간,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는 길건너 주유소 불빛이 어렴풋이 방의 흔적을 드러낼때, 왼쪽눈은 감은 채 오른쪽 눈으로 핸폰을 열었습니다. 이게 참 간사한 행동입니다. 아침 운동을 하러나가야겠다는 의지와 운동을 하지않도록 만드는 합리적 핑계가 잠결에도 왔다 갔다 하기 때문입니다. 25도 이하면 포기, 그런데 27도입니다. 음.. 일어나야겠군. 손을 뻗어 블라인드를 살짝 밀어보니 가로등 불빛에 눈이 펄펄 내리는 것입니다. 이런 날 새벽운전은 대단히 위험해, 저녁에 하지뭐, 이렇게 또 나의 게으름은 당당해집니다.  


게으름을 피다보면 또 염체라는 게 가만있지 않습니다. 세상살이가 어찌 한가지만으로 다 이뤄지겠습니까. 여자가 있으니 남자가 있고, 양지가 있으니 음지도 있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하여 염체는 당당한 게으름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걸치게 만듭니다. 털모자를 덮어쓰고 장갑도 꼈습니다. 아직도 눈은 그칠 줄 모릅니다.


눈을 치우는 도구는 빗자루가 아니라 삽입니다. 밤새 쌓인 눈이 어림짐작으로 2인치는 더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집 현관 앞 계단은 하얀 눈만 있는 순수 그 자체입니다. 나는 그 순수를 짓밟는 것에 한치의 망설임이 없습니다. 마당을 둘러보니 토끼의 흔적도 사슴의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3월의 눈에 나름대로 게으름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하긴 이런 날 돌이다녀봐야 먹을 것 하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테니 게으름이 아니라 현명한 선택입니다. 집 앞 길에는 부지런한 누군가의 발자국이 선명합니다. 저는 만세대신 삽질로 3월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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