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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Sep 27. 2021

장어의 추억


먹는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물론 우리 명줄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기 때문이다. 먹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중국어에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먹는 것으로 규정한 낱말이 꽤 있다. 이를테면 상사를 일컫는 말은 老板이다. Laoban으로 읽는다. 같이 음식을 먹는 사람중에 가장 연장자라는 것이 문자적 의미이지만 실제 뜻은 보스, 상사이다. 合作合板이라는 말은 동업, 공동 경영, 협력 등을 뜻한다. 여기 등장하는 合板의 문자적 의미는 한솥밥을 먹는 사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무엇을 먹는가보다 누구와 먹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중국인들은 문자속에 남겨놓았다. 우리가 가족을 食口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음식을 먹을때는 맛과 분위기가 큰 역할을 하지만 음식을 다 먹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추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중한 사람일 수록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 한다. 때로는 꼭 화려한 식당이 아니라도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맛집이라면 기꺼이 초대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초대받는 사람은  음식맛에 더해 초대한 사람의 마음까지 담아 맛있게 먹게 된다. 자연스럽게 음식은 소화되어 사라지지만 사람과의 추억은 오래 남게 되는 법이다. 


나는 뭐든지 잘먹는다. 시골출신인 내가 먹어보지 못한 것은 뱀, 개구리 정도이지 싶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때마다 소를 마을 뒷산에 방목하여 풀을 먹였다. 집집마다 집에서 키우는 소를 끌고 나와 오후 내내 산에 풀어 놓았다가 해질무렵이면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소를 풀어 놓으면 그때부터는 별로할 일이 없다. 그냥 우리끼리 장난 치거나 콩 서리를 하거나 각자 집에서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 산에서 음식을 해먹거나 하는 것이 우리 놀이였다. 그런데 간혹 뱀이나 개구리를 잡아서 구워먹을 때가 있었다. 다들 맛있게 먹는데 나는 도저히 그걸 못먹겠는 것이다. 왠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어떻게 하면 저걸 먹지 않고 버틸까 고민하던 기억이 새롭다.그 정도가 아니라면 내 식성은 가히 나무랄데가 없다.


그러니 이 친구가 장어를 먹자고 했을때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최고의 보양식 아닌가. 내가 좀 부실해 보여서 장어를 먹자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장어집 주인이 엄청나게 큰 장어를 보여 준다. 살아 있는 장어를 그날 팔 것만 미리 구워먹을 수 있도록 요리해서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손님에게 직접 보여주고 고르게 하는 것이다. 너무 크서 그거 우리 다 먹을 수 없으니 반만 주문하겠다고 하니 주인장이 충분히 다 먹을 수 있다고 거의 강매하다시피 한다. 잠시후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장어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우리는 복분자주를 안주삼아 장어를 쉴새없이 먹었다. 달포가 지난 지금 장어의 맛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친구와의 추억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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