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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Oct 16. 2017

브루클린 브릿지 달리기

예를 들면 언제 소주나 한잔 하자거나 다음에 한번 보자 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덤덤한 인사치레다. 그 언제가 언제인지, 다음은 내일인 지 한달후인 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알지 못한다.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속을 알 수 없는 인사이지만 또 우리는 언젠가 한반쯤은 서로 만나 소주를 나누든지 골프를 치든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마치 이 간되지 않은 음식같은 인사도 바윗돌을 뚫는 물방울처럼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야말로 언젠가는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람 일이란 그런 것이다.


브루클린 브릿지를 달려봐야지 라는 생각을 언제부터 했는지는 모르겠다. 걷거나 차로 건너기 보다는 뛰는 것이 좀 있어 보인다는 스스로의 최면이라고 해야할 지.. 저 덤덤한 인사치레처럼 언젠가 한번은 뛰어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글 맵으로 보니 뉴욕 시청 근처에서 출발하여 브루클린 하이츠까지 왕복하면 평소 내가 뛰는 거리 정도라 안성마춤이다. 공짜 주차장을 찾아 미드타운을 두어바퀴 돌다가 결국 포기하고 짐 바로 앞에 주차 앱을 이용하여 스트릿 파킹.  


지하철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가야 한다. 짐에서부터 뛰어갔다 오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42가에서 A라인을 타고 풀턴(Fulton) 역에 내려 거기를 시발점으로 다리를 건너간 다음 다시 건너와서 스프링 스트리트나 커넬 스트릿 정도에서 전철을 타고 미드타운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정했다. 토요일 오전의 전철은 비교적 조용하다. 승객들 중 나처럼 달리기 복장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내 복장이 이상하다고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풀턴 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방향을 잡을 수 없다. 다운타운은 격자무늬 길이 아니라 제각각이다. 이 구조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은 동서남북이 순간적으로 헷갈리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감을 잡기가 쉽지않다. 걸을 수는 없으니 일단 아무 쪽이나 상관없이 방향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몇블락을 그렇게 뛰다보니 프리덤 타워가 보인다. 그것을 북극성 삼아 조금 달리니 월스트리트가 나온다. 이제부터는 헷갈리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찾는 시청은 여기서 다시 약간 동북쪽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를 휘돌아 약간 오르막길로 10여분 그렇게 달린 후 시청앞 공원에 도착했다. 아침 9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성지 순례 중이다. 얼마나 복잡할 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였다. 오늘따라 핑크물결이 다리위에 넘친다. 유방암 방지/극복 캠페인을 벌이는 걷기 대회가 열리는 모양이다. 매주말 이런 행사가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1869년 공사가 시작된 이 다리는 14년 후인 1883년 5월 24일에 완공되었다. 올해로 134살이다. 다리 길이는 1825.4m이다. 당시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차도의 폭은 마차를 기준으로 만들어 졌다. 이런 규모의 다리를 경험해보지 않은 당시의 뉴요커들은 이 다리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동원된 것이 6마리의 코끼리였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차도 위에 만들어져 있다. 좁은 길을 반으로 나눠 자전거 길과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구분해 놓았고, 그 각각의 길은 또 가운데 구분선을 둬서 양방향 통행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처럼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몰리는 날이면 이런 구분선은 큰 의미가 없다. 나도 자전거 길로 뛰는 수 밖에. 다행히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사람들은 대부분 맨하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한눈에 봐도 그쪽에 훨씬 나아 보인다. 다리 끝지점을 지나 브루클린에서 만나는 첫번째 신호등이 반환점이다. 달리면서 하려던 경치 감상은 계속 밀려드는 인파로 언감생심이다.


시청앞에서 달리기를 접기는 조금 부족해 보여 시청앞을 지나 브로드웨이로 나와서 커넬 스트리트 방향으로 좀 더 달렸다. 복잡하기는 하지만 못달릴 정도는 아니다. 커넬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차이나타운이 좌우에 크게 자리잡고 있다. 달리기는 여기서 그치고 이제 전철을 타고 돌아갈 차례다. 메트로카드를 스윽 긁고서 출입구 막대기를 밀치는데 철커덕하는 것이 아닌가. 헠... 잔고부족. 오마이... 지갑도 없는데... 삼성페이로? 키오스크는 피지컬 신용카드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군. 그냥 기어서 들어갈까? 다시 지상으로 나와 구글로 거리를 측정해 보니 대략 3마일 정도.. 흠... 에라 모르겠다 뛰어가자. 일단 주차시간부터 연장하자. 주차앱을 오픈하니 주차기록이 없다. 아 이런... 꼬이는구나. 주차위반 150불인데..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지금부터라도 라는 생각으로 주차비를 앱으로 먼저 처리한 다음 달리기 시작했다. 짐에 도착하여 앱을 열어보니 8마일 조금 넘게 달렸단다. 주차위반은 걸리지 않았다. 복받은 토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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