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버지니아 대학이 있는 몰갠타운은 우리로 치면 태백시 같은 곳이다. 애팔래치아 산맥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이곳은 석탄의 산지로 이름을 날렸고, 내가 어학 연수를 위해 산골중의 산골, 이 도시를 찾아갔을때 광부들은 2년째 파업중이었다. 1994년 1월이었던 것 같다. 이 도시의 가장 높은 건물이 바로 내가 한학기를 보냈던 기숙사 건물이었다. 역시 가장 부자는 대학교였던 셈이다. 나는 내가 다니던 회사의 연수 프로그램으로 공부하러 갔으니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웃방의 나 또래 백인과 자주 어울릴 수 있었다. 이친구는 항상 조그만 카셋테이프 플레이어를 애인처럼 끼고 다녔는데, 나는 그의 음악 취향에 대해 별로 감동을 받은 기억은 없다. 왜냐하면 그가 듣는 노래는 언제나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Sweet Home Alabama'가 그것이다.
"Sweet home Alabama/ Where the skies are so blue/ Sweet home Alabama/ Lord, I'm coming home to you"
마치 '내고향 남쪽바다' 같은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노래는 나중에 알고 보니 1974년 발표된 Lynyrd Skynyrd의 두번째 앨범에 실렸었고, 발표되자 마자 대히트를 기록했던 매우 유명한 노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것 보다는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평하롭고 낭만적인 고향땅 알라바마 정도로 생각했다.
20년 후, 2014년 알라바마를 방문했다. 알라바마는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생산 공장을 지은 곳이다. 현대 자동차와 1, 2차 협력업체등에 근무하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에 몰려들었고, 덩달아 타주에 있던 한국인들도 역시 새로운 기회를 쫓아 여기로 이주하여, 한국인이라고는 눈에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던 곳이 교민 1만여명을 바라보는 곳으로 바뀌었다.
'Sweet Home Alabama'는 Sweet 한 곳이 아니었다. 시골길 가로등은 두개 걸러 하나씩 들어오게 조작되어 있었고, 그것조차 너무 히미해서 가로등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깨진 창문에 덧댄 합판, 먼지만 날리는 주유소, 일이 없어 촛점 흐린 눈으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신호등에라도 걸리면 차문을 잠궜는지 확인하고는 왜이리 신호가 길어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렇게 힘없이 쇠락해가는 안타까움이 Sweet Home으로 포장되었는 지 모를 일이다. 혹은 노래가 발표되던 그 시절에는 실제로 Sweet 했던 것일까?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트럼프를 가장 먼저 지지한 상원의원은 제프 세션스이다. 알라바마 출신이다. 그는 그 공로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 법부부 장관에 지명되었고, 상원의원에서 사퇴했다. 그의 의원직을 승계하기 위한 보궐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공화당은 당내 경선을 거쳐 로이 무어를 후보로 선출했다. 공화당 텃밭인 이곳에서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 것은 곧 당선을 의미한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1979년 당시 14살이던 여성이 로이 무어의 성추행 사실을 공개하고 나선 것이다. 만 14세이니 이 여성은 아마 1964년 혹은 65년 생일 것이다. 로이 무어는 절대로 '법적으로' 문제될만 짓을 한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이 여성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받아 들인다. 가해자는 기억에 없을 지 몰라도 피해자는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 성추행/폭행이라고 한다.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 메케인 상원의원 등 주요 공화당 인사들이 즉각 로이 무어를 향해 후보직을 사퇴하라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도 여성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거들고 있다.
최근 치뤄진 버지니아 주, 뉴저지 주 주지사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뉴욕시장도 민주당 소속의 드블라지오가 손쉽게 연임에 성공했다. 이들의 승리 뒤에 여성표가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에 대한 여성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일까. 공화당 의원들이 좌불안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