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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Jul 13. 2018

마당에 물주기

우리 집은 언덕배기 중간쯤 위치한 덕분에 지하실도 완전한 지하가 아니라 반지하이다. 그래서 해가 아침 저녁으로 이 어스럼한 공간에도 비쳐든다. 고등학교까지 이 반지하 공간에서 지냈다는 막내아들의 너스레는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우리가 이 집을 사기 전에 살았던 가족은 이태리 이민 후손들이다. 이 집에서만 65년을 살았다고 한다. 여기서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시집 장가 보내고 할아버지 먼저 떠나 보내고 종국에는 할머니 혼자서 마당을 찾아오는 토끼를 친구삼아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곳곳에 묻어 있는 손때의 아쉬움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에는 버거웠는지 결국 할머니는 너싱 홈으로 옮겨야만 했다. 집은 비었고, 막내 아들이 집을 수리하여 팔 요량으로 주말마다 찾아와 이것 저것 손을 보는 중에 들컥 이 집이 애들 엄마 눈에 띄어버린 것이다.


앞마당은 손볼 겨를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조금씩 손을 보기로 했다. 우리집과 옆집 경계쯤 큰 길가에 서 있는 나무는 키가 훌쩍 커서 우리집 지붕높이까지는 몸통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다. 그 위에 마치 모자를 쓴 것처럼 잔가지가 뻗어있고 그 사이사이에 잎이 나름대로 무성하다. 그러니까 이 나무는 큰 키에 비해 시야를 전혀 가리지 않는 참 착한 나무다. 이 나무의 뿌리가 우리집 앞마당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아는 이유는 이 뿌리를 경계로 길쪽은 흙이 움푹 파여있고 집쪽은 뿌리 덕분에 잔디 마당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걱정스런 눈으로 혹시 흙이 더 떨어져나가는 것은 아닌가 지켜보았다. 그럴때마다 마치 내가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는 기분이 들어 영 개운치가 않았다.  


조경회사를 수소문하여 상담을 받아보니 마당에 흙을 채워넣고 나무 몇개 심는 것 조차 집주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 욕심때문이었을텐데 시골출신이면 으례 좀 있을법한 땅욕심이 동한 까닭이다. 축대를 좀 쌓아서 거기까지 흙을 채워넣으면 제법 넑직한 마당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런데 축대를 쌓으려면 타운의 승인을 받아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로써 내 욕심은 초장부터 박살나고 말았다. 결국타운의 승인을 받지않고 할 수 있는 엉거주춤한 모양으로 결정했다.


하룻만에 집 앞의 모양새가 확 바뀌었다. 너덜너덜하던 곳은 땜방질에 잘 되어 표시도 나지 않을 정도이고 제법 감각있게 심은 나무도 아직은 싱싱하다. 축대 대신 흙을 지지하기위해 가져다 놓은 바위덩어리도 그럴싸해 보인다. 새벽에 일어나 여기에 물을 주는 것이 요즘 내 일과의 시작이다. 원래 잔디가 있던 곳은 문제없지만 새로 만든 곳은 잔디를 깔지 않아서 맨 땅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냥 보기 민망했는지 조경하시는 분들이 거기에 잔디씨를 뿌려 놓았다. 햇볕이 쨍쨍하는 한여름에 내가 아무리 아침저녁으로 물을 준들 저 히끗히끗한 씨앗에서 싹이 나올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놀랍게도 제법 눈에 띄게 싹이 튼 것이다! 그러니까 밤을 다투어 이 싹이 부지런히 쉬지않고 자라난 것이리라. 모판에서 벼싹이 자라나듯 자라난 모습이라니. 식물은 사람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자란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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