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 하고자 했던 것을 하지 않으려고 나는 애먼 화초 잎을 정리했다. 화분을 이리 놓았다 저리 놓았다 하며 한참 수선을 떨다가 내친김에 물을 끼얹어 베란다 청소까지 했다. 그렇게 애를 썼다. 조금만 방심하면 당장이라도 그 사람에게 인사를 건넬까 싶어.
그러면 내가 너무 아쉬워 보이니까. 너무 안 달라 보일 테니까......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베란다 바닥을 닦다가 팔에 힘이 빠져서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멀뚱히 벽시계를 바라봤다. 분침이 똑딱똑딱 거리는 게 또박또박 눈에 들어와 박혔다. 나는 꼭 대본을 외듯이 중얼거렸다.
"오랜만입니다. 어찌 지내세요. 평안하십니까. 저는 한동안 바빴습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허공에 흘리는 조금 간절한 인사.
시간이 흘러 흘러 이제는 너무 늦었다 싶은 시점에 접어들자 마음이 편해졌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핑계는 나를 자유롭게 한다.
아직 저녁밥도 들기 전이지만 나는 하루를 마감하는 나의 조촐한 의식을 거행한다. 소파 옆 동그란 협탁 위에 라벤더 향초를 켜고 내 전용 유리잔에 맥주를 반 잔 따른다. 이 시각, 오직 나뿐이다.
그러나 침묵은 기대한 것보다 감미롭지 않다. 나는 내가 바라는 대로 명상에 잠기지도 못할뿐더러 혼자 조용히 있지도 못하는 터이다. 자꾸만 분심이 올라와 나를 산란히 휘저어 놓으니... 침묵은 어느새 그 사람으로 가득 찬다.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살짝 신경질이 납니다. 날마다 궁금해서 날마다 편지를 씁니다. 못보낸 편지가 휴지통에 쌓입니다."
베란다 창문이 철컹철컹거리더니 세찬 빗줄기가 쏟아진다. 땅거미 지기 무섭게 느닷없이 퍼붓는 비바람이 새삼 고맙다. 오늘따라 더 우중충한 내 마음은 결코 내 탓이 아니다. 모두 저 별스런 날씨 탓이지.
핑계는 나를 자유롭게 한다.
“The beautiful lightening in the painting of Marcel Rieder (1862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