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 날들과 주저앉는 날들

by 마리

스시집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열심히 돈을 모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은행 대출금을 갚기에는 돈이 부족했다. 불안해하며 빚을 걱정하던 내가, 당시 교제 중이던 남자친구와 가족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은행 대출금을 제때 갚을 수 있었고, 그 순간 나는 마침내 한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힘겹게 버티며 일하던 스시집을 떠날 수 있었다.


젊은 패기로, 나는 그 은행 빚을 버텨냈다.


1차 워홀의 끝자락, 호주에서의 생활이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신청했던 비자는 예정된 시기가 한참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캐나다에서 내 비자를 맡았던 사람과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시드니에 있는 캐나다 영사관을 찾아가 여권을 건네며 물었다.


“제 비자 진행 상황 좀 알 수 있을까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아무것도 신청된 게 없는데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분명 스폰서 비자으로 들어가 몇 달을 일을 했고, 내가 한국에 갔을 때 인센티브가 체크로 살던 집으로 날아와 언니가 보내주기도 했다.


명백히 일을 하고, 관련 서류도 모두 넘겼는데 아무런 신청도 되어있지 않다니.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그때도 주저앉을 시간은 없었다.


호주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가던 그때, 둘째 언니도 캐나다 유학을 마치고 호주로 와 있었다.


호주의 따뜻한 날씨와 햇살은, 내가 머물고 싶은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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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워홀 비자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1년을 더 연장할 수 있었다. 보통 농업이나 축산업 같은 ‘지정된 업종’을 ‘지정된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일하면 세컨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당시 한인 사이트들에는 서류를 위조해 돈을 받고 세컨드 비자를 연장해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겁쟁이 쫄보라 그 길은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언니를 설득해 ‘진짜 농장’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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