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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 에밀리 Jul 01. 2022

#5. 등린이가 한라산을 오르는 게 가능할까?

디지털 노마드의 제주도 주말 일상

전날 밤, 한라산 원정대가 꾸려졌다.

한라산에 성공적으로 오르기 위해서 술도 조금만 마셨다.

원정대 7명 중 내가 등산 실력은 일 것이다. '나는 낙오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완주를 목표로 해보자!' 


나의 등산 실력은 초-등린이.

등산 스틱도 없고 등산복도 없고 가진 등산 장비라고는 디스커버리의 세미 등산화(운동화인지 등산화인지의 경계를 넘나드는)뿐이었다. 등산이라고 칠 경력은 인왕산 야간 등산 1번, 청계산 중턱에서 하산 1번, 북한산 등산 1번, 관악산 등산 1번 정도였던 것 같다. 한라산은 왕복 9시간은 걸린다는데 대체 어떻게 하지... 하면서도 그래도 한라산도 한 번쯤은 가봐야지!라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해도 뜨지도 않은 아침.

올라가면서 먹을 간식거리를 좀 사고 가방에 작은 컵라면 하나 넣고, 한라산 입구에서 김밥 사서 올라가야지. 하고 출발했으나... 한라산 입구에 김밥을 파는 집은 문을 닫았었다. 문 닫은 지 몇 달 된 거 같은데, 우리 일행 7명 중 아무도 찾아보지 않았구나.. 하하핫... 어쩔 수 없지, 미리 찾아볼 걸.. 뒤늦은 후회를 하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보슬보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챙겨 온 우비를  입고 한라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가 오니 시원하고 좋긴 했는데 점차 비가 흠뻑 젖을 정도로 많이 내렸다. 비가 많이 와서 우비를 입으면 비가 그치고, 우비를 벗으면 비가 내리는 하늘의 장난 같은 날씨가 반복돼서 짜증이 올라올 때쯤 첫 번째 쉼터가 나왔다. 한라산을 올라가면서 쉴 수 있는 곳이 2곳 있는데 첫 번째  쉼터에서 초코바를 먹으면서 쉬다 보니 비가 좀 그쳤다. 이때까지는 오를 만하다고 느꼈다. 사람의 등산 능력은 상대적인 것 같다. 나는 초반의 코스가 더 오를만하다고 느꼈는데 친구는 초반 산행 코스를 조금 더 힘들어했다.



두 번째 코스는 점차 힘에 부쳐가는 구간이었다. 이때부터는 선발대와 중간, 후발대의 격차가 극명해졌다. 첫 번째 구간에서는 선발대가 중간중간 기다려줘서 함께 올라갔다면 두 번째 구간에선 우리를 기다리는 게 힘들었는지 저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물론 후발대였는데 중간 그룹과 자주 마주치며 함께 걸었다. 비가 그치고 나니 비가 얼마나 시원한 온도를 만들어줬었는지 깨달았다. 한라산은 비가 올 때 오르는 게 훨씬 좋은 것 같다.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하니 더워서 올라가는 게 더욱 힘들었다.


마지막 쉼터가 나왔다. 곧 정상에 도달할 것 같지만, 이제 3분의 2라니... 눈으로 보이는 정상은 아직도 저 멀리 있었다. 다시 되돌아가기엔 늦었고 앞으로 나아가면 하산하는 것은 더욱 늦어지겠지. 그렇다면 지금이 포기할 가장 빠른 순간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쉼터에 누워 자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누워서 잠이나 한숨 자고 싶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몸을 일으켜 올라갔다. 더 늦으면 마지막 입산 시간도 지날 것이고 정상에 거의 다다른 선발대를 생각하면 얼른 올라가야 했다. 그 이후로 아주 괴로운 시간들이 지나갔다. 너무 힘들었고 정상까지 가는 길은 아직도 멀었다. 나중엔 넋이 나가서 단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해주는 거의 다 왔다는 격려도 속상했다. 거짓말인 것을 다 아는데.. 아직도 저 멀리 보이는데...


어쨌든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끝까지 올라가니 너무 시원하고 좋았다. 쉽게 보기 힘들다는 맑은 백록담도 보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

사진도 찍고 나니 허기가 올라왔다. 쫄쫄 굶고 초코바 2개에 의존해 올라왔더니 너무 힘들어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아서 미니 컵라면을 깠다. 보온병에 담아온 물이 막 뜨겁지 않아서 면이 채 익지 않은 컵라면이었지만 과격한 운동 후에 먹으니 무엇이든 맛있는 느낌이었다.


3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하산의 시작. 언제 내려가나 싶었지만 풀려버린 다리와 내려가서 얼른 쉬고 싶다는 마음에 훨씬 빨리 내려왔다. 올라갈 때 5시간 이상 걸렸다면 내려올 때는 4시간도 안 걸린 느낌이었다. 하산을 하고 나면 입구에 한라산 등정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무료인 줄 알았는데 1,000원을 내야 받을 수 있고,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있어야 출력할 수 있다. (사진의 GPS를 가지고 판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숙소로 이동해서 맛있는 고기를 마구 구워 먹으며 한라산에 올라갔다 오면서 소모한 칼로리를 다시 채워 넣었다^^ 술도 술술 들어가고 고기도 술술 들어가고... 힘들었지만 뿌듯함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채운 경험이었다. 세상의 무슨 일이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마구 올라왔었다.( 이 자신감은 며칠 후 무너집니다. 다음 에피소드를 기대해 주세요 ㅋㅋ) 너무 힘들었지만 겨울에 딱 한 번만 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상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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