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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 Oct 27. 2024

소울메이트

#8

S는 이혼 후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자신을 파괴해야만 그 어둠이 가라앉는다고 믿는 듯, 그녀의 삶은 점점 위험해지고 있었다. S는 홍대 인디신에서 활동할 당시 조금 알고 지내던 기타리스트에게 갑자기 기타를 배우겠다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집을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또 어느 날은 속옷만 걸친 채로 ‘비키니 바’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랑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뒤틀렸다. S는 남성들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듯, 자신을 무언가로 증명하려는 듯 보였다. 몇 번이고 말려보려 했지만, S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 더 깊은 상처를 냈다. 달라지지 않는 나날들이 이어졌고, 그 위험한 동거는 무려 7년이나 지속되었다. 그리고 S는 말없이 사라졌다. 어디로 가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토록 갈구하던 고통의 끝을 찾은 걸까, 아니면 그 끝에서 다시 길을 잃은 걸까. 


나는 그녀의 정신과 주치의 앞에 앉았다. 의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보신 적 있으세요? 새우 잡이로 유년 시절에 끌려가 그곳에서 성인이 되었음에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어요. 고요 씨는 S 씨에게 꼭 그런 상황으로 학대당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S 씨의 주치의라서 말씀드리진 못했지만요.”

의사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불안감과 혼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우울증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하나는 ‘나는 피해자니까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도와줘야 한다’라는 이기적인 우울증이고, 다른 하나는 ‘나로 인해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며 마지막 숨까지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인데요,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S 씨는 전자에 속합니다.”

말이 떨어지자, 머리가 아득해졌다. “우울증이 옮는다는 말이 있죠? 그 말은 틀립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우울증은 우리 뇌에 큰 손상을 남깁니다. S 씨가 고요 씨 때문에 자살 충동을 멈춘 건 맞습니다. 우울증은 약만으로는 호전되기 어렵거든요.”

S가 함께 살던 전셋집을 빼서 그 돈을 가지고 사라졌다면, 그녀는 살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 의지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진정한 희망이었는지 의문이 남았다. “S 씨 상담받으러 안 온 지 꽤 되었습니다. 이제 S 씨 걱정은 안 하셔도 되겠네요.”

내가 S의 행방을 물으러 그곳에 왔던 이유가 무색해졌다. 생각지도 못한 정신과 선생님의 말씀에 갑자기 멀미가 나 어지러웠다. ‘학대? 내가 학대를 받았다고? 7년 동안이나?’ 고통을 함께 견뎌내고, 그녀의 곁에서 지켜주겠다는 마음으로 보냈던 세월이 이렇게 단순히 ‘학대’로 정리되다니, 그 모든 시간이 무슨 의미였을까.

S의 남편이 S에게 옷걸이를 던지고 도망칠 때 나에게 던진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 바보가 되었네.” 그의 말처럼,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마음속에 소용돌이가 쳤다. 나는 한없이 무력해졌다. 


나는 누굴 살리겠다고 나를 학대받도록 내버려 두었던 걸까? S에게서 보이는 나를 느끼며 나의 결핍을 채우고 싶었던 걸까?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맴돌았다. S가 우리 집 앞 놀이터에서 전화했던 그 새벽으로 다시 시간을 되돌려, 내가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그 새벽, 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만약 그 순간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설령 그 새벽이 응급상황이었다고 여기고, S의 발작이 멈추고 우리 집에서 S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그 이상의 호의를 멈췄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이 모든 삶의 결론은 내가 선택한 내 잘못이 아닐까? S가 떠난 집에서 오빠에게 폭행당해 응급실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겠다는 두려움에 나는 S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그 전화가 오히려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내가 나를 밀어 넣어 버린 건 아닐까? 그 순간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까? 오빠의 폭행으로 전치 4주의 진단을 받고 몸을 가눌 수 없을 때, 나는 S의 집으로 숨기보다는 아빠와 가족에게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선택이 내가 가진 고통의 무게를 더했는지도 모른다.

주체할 수 없는 생각이 생각을 낳고,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S는 나와 함께한 7년의 보답으로 내 전세 보증금을 가지고 사라졌고, S의 행방을 물으러 찾아간 S의 주치의에게서 나는 그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소환당했다. 의사의 차분한 목소리와 그의 말은 마치 나를 고발하는 듯했다. “당신이 S 씨를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고통을 함께 짊어진 것이죠.”

그녀의 고통을 함께 짊어진 대가가 결국 내가 스스로를 학대한 시간이었던 것일까? 심장 속에서 울리는 회한이 나를 짓누르며, 나는 그 자리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S가 사라진 후, 그 빈자리는 내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렇게 나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내 안의 상처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길로 임대인 아주머니에게 찾아가 같이 살던 집을 어떻게 S에게 빼 주실 수 있냐고 따져 물었다. “같이 살던 S가 고요 씨가 결혼하게 되었다던데,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 라며 도리어 임대인 아주머니는 축하한다며 나에게 예정에 없는 결혼식 날짜를 물었다. ‘내가 알던 S가 맞는 걸까? 매일 죽겠다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지?’ S를 찾고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몇 달 후 S를 허망하게 찾았다. 같이 살던 오피스텔 두 블록 건너편에 월세를 구해 살고 있었다. 3층으로 된 오래된 연립을 리모델링한 구조였는데 S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나를 마치 어제 본 듯 웃으며 반겼다. S는 양악수술을 진행한 상태여서 얼굴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S가 나와 같이 살던 전세금을 빼서 새로 얻은 곳은 마름모꼴에 형태가 애매한 원룸이었다. 창은 있지만 빛은 들어오질 않았고 화장실은 있지만 방과 화장실 구분이 묘한 구조여서 하수구에서 비릿한 이상한 냄새가 올라왔다. 


정리되지 않은 침구 위로 앉으려는 S에게 “내 전세 보증금을 돌려줘”라고 말했다. 내가 안부를 먼저 물어볼 것으로 생각했는지? 아니면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지? S는 약간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기색도 잠시 “너한테 돈을 돌려줘도 빚쟁이고 안 돌려줘도 빚쟁이니까 그리고 돌려줄 돈이 없어’라며 불분명한 발음으로 S는 나의 시선을 회피하며 말했다. 아마도 내 전세 보증금으로 양악수술을 진행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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