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날, S는 남편의 전화기 속에서 예사롭지 않은 문자를 발견했다. 하찮은 오해로 넘길 수 없을 만큼 직설적인 문구들이 그녀의 눈앞에서 선명하게 빛났다. '일하는 동료'와 나눈 다정한 대화들, 누가 보아도 의심을 피할 수 없는 그 문장들이 가슴에 날카롭게 박혀왔다.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며, '어쩌면 아닐지도 몰라' 하는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보았지만, 이미 균열은 시작되고 있었다.
S는 결국 남편에게 사실을 추궁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미안함이나 해명이 아닌, 뜻밖의 폭력이었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신경질적으로 옷걸이를 집어 들었다. 그는 한 손으로 옷걸이를 꽉 쥐고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S를 노려보다가 거칠게 던져버렸다. 철제 옷걸이가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그 울림은 마치 방 안 가득한 긴장과 두려움을 더 짙게 물들였다. 그 순간 S는 그저 얼어붙은 채, 숨을 삼켰다. 가슴속에서 뭔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눈앞의 상황에 압도되어 그것을 깊이 느낄 겨를도 없었다. 남편은 S를 분노에 찬 듯 노려보다가, 말 한마디 없이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남편이 사라지자, 곧바로 시댁에서 들이닥쳤다. 그들은 이혼을 강요하며 S에게 압박을 가했고, S는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공포에 휩싸였다. 겨우 정신과 약과 상담을 통해 자해 충동을 억눌러 오던 S의 상태는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혼 소송은 가혹할 만큼 빠르게 진행되었고, S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무력하게 흔들렸다.
어느 날, S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작은 울음이 새어 나오더니,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 혼자 살면 이대로 죽을 것 같아서……. 잠시만이라도, 나랑 같이 살아 줄 수 있겠어?"
사라졌던 남편을 가정법원에서 만났다고 했다. 그 만남이 어땠는지 말하지 않았지만, 짧은 침묵과 이어지는 흐느낌에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날 오후, S는 이혼 도장이 찍힌 서류를 품에 안고 나를 찾아왔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끝도 없이 깊어진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나란히 앉아 있는 동안, S는 고개를 떨군 채 울음을 삼켰다. 손끝까지 얼어붙은 것 같은 그녀가 안쓰러웠다. 나는 그저 옆에 앉아 그녀가 흐트러진 숨을 고르게 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그 곁을 지켰다.
우리는 함께 살 공간이 필요했다. S와 내가 밤늦게까지 고른 곳은 새절역 4번 출구 근처, 오피스텔이었다.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밤이면 불광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도시의 불빛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싱글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꿨을 법한 아늑하고 안전한 집이었다. 그날 우리는 고민할 것도 없이 집을 계약했다. 모든 게 무너져 내려 버린 S에게 필요한 것은 안식처였고, 나 역시 그녀 곁을 지키고 싶었다. “여기서 지내면서 조금씩 나아지면, 건강하게 각자의 길을 갈 수 있겠지?”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다짐했다.
새 집으로 들어가던 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창밖으로 펼쳐진 야경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길 바랐다.
시폰 소재의 하얀 커튼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아늑한 2인용 베이지 소파가 창가를 채웠다. 여자 둘이 쓰기에는 넉넉한 화장대와 김치냉장고까지 들어오는 날, 우리는 소박한 집들이를 열었다. 친구들이 하나둘 찾아와 웃음소리와 따뜻한 대화가 채워지면서 어느새 이곳은 작은 아지트가 되었다. 잠시라도 S의 마음에 평온이 깃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가끔 S는 조용히 묻곤 했다. "나… 이혼했어?" 처음엔 그것이 단순한 자각의 과정이라 생각했다. 내가 보기엔 S가 이혼 후의 고통과 슬픔을 잘 견뎌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에 불과했다.
실상 S의 물음에는 불안이 깔려 있었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그녀에게는 아직도 무거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밝은 얼굴로 지내던 모습 뒤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와 두려움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보았던 S의 웃음은, 오히려 그 상처를 애써 가린 흔적이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녀가 견디고 있는 건 이혼의 ‘고통’이 아니라, 끝내 인정하지 못한 상실의 ‘불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