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S는 나를 보자마자 울컥한 얼굴로 "내가 무작정 너희 집에 들어가지만 않았어도..."라며 자책했다. S의 말속엔 자신이 우리 집에 머물렀던 시간 때문에 오빠의 폭력이 촉발된 것 같다는 죄책감이 묻어 있었다.
나는 S의 두 손을 조용히 잡고 말했다. "우리 집의 폭력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고, S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S는 내 말을 듣고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이후 S는 이 모든 죄책감을 씻어내려는 듯, 헌신적으로 내 곁을 지키며 나를 돌봐주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서서히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갔다.
한 뼘 햇살이 지하 방에 스며든 날, 나는 S를 바라보며 "우리, 소울메이트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S는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손을 얹으며 "너를 만나서 내가 죽지 않고 살아."라고 답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지만 내 몸 곳곳에 남았던 멍은 서서히 옅어졌다. 나를 지탱해 주었던 S와의 소중한 순간들이 고통을 잊게 해 주었고, 나의 마음속에도 조금씩 회복의 기운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는 누구의 부축 없이도 혼자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을 만큼 몸이 회복되었을 즈음, 지하 방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을 열어 집으로 들어서자 약간의 먼지와 함께 잊고 있던 기억들이 불러일으켜졌다. 오빠를 다시 마주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 상처와 아픔들이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 그 아픔을 마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집안에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온몸이 굳어갔다. 이곳은 나의 집이지만, 동시에 나의 상처가 깃든 장소이기도 했다. 이 공간은 과거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그 기억들이 나를 재구성하려 했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느낌,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결핍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한동안 S로부터 연락이 없었고, 나도 연습실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몇 달 후 S의 남편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그 내용은 S의 발작이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S는 내가 함께 있을 때는 발작 증세를 조절할 수 있었지만, 나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심한 발작이 나타난다는 남편의 메시지였다.
나는 S의 남편에게 S가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남편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정신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S의 발작이 심해져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가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2000년 초반,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시 사회에서는 정신과에 가는 것에 대해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문제를 숨기고, 혼자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S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라는 낙인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나는 그 편견이 S를 더욱 고립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S의 남편에게 그녀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껴졌다. S의 남편은 그녀를 걱정하며 고민했지만, 같은 편견의 늪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상담을 받는 것이 문제가 있는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그 어둠을 조금씩 비추어주고자 했다. 우리는 S가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 두려움의 벽을 허물어 나가야 했다. S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누구도 그녀를 판단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S의 남편에게 문자를 받고 나는 S를 다시 돌보기로 결심했다. S가 나에게 그러했듯이 내 곁에서 안정을 찾으며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몇 주가 흘렀고, S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S와 함께한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S가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던 그날은 밝고 화창했다. 나는 S에게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S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한 따스한 연대감을 느꼈다. S의 손을 잡고 함께 한 걸음씩 내딛으며, 나는 S가 이 길을 혼자 걷지 않기를 바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S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날의 햇살처럼 밝은 내일이 S를 기다리고 있기를 소망했다.